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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식 TGV·신칸센의 신화, 곧 무너진다

왜 자기부상열차여야 하나?

국내에 고속전철이 등장할 때 쯤이면 바퀴식 철도는 이미 구식이 돼 있을 것이다.

도시내에서 우리나라의 철도가 차지하는 여객과 화물의 비중은 다른 수송 수단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그러나 도시간(間) 수송량을 가지고 얘기한다면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커진다. 더구나 서울-부산간 또는 서울-목포간 같은 장거리인 경우에는 그 점유율이 더욱 증가한다.

전국의 철도가 지난 해 1년동안 수송한 총 여객인원이 약 1억4천2백50만명인데 반해 고속도로의 총 수송인원은 7천9백만명 가량이다. 도시간 여객수송에는 아직도 철도가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그 비중은 날로 감소되고 있는 추세다. 자가용 승용차의 보급으로 고속도로의 혼잡이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는 데 반해 철도의 수송여객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1980년을 기준으로 보면 과거 10년동안 총 철도여객 수송인원은 23%가 감소했다. 그 수는 2천만명이나 된다. 이 감소추세는 경부선 철도만을 제외하고 거의 전 노선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산업의 발전이 수송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 시키고 있는데 철도만이 계속 뒷걸음치고 있다니.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중앙선 승객은 지난 10년동안 25%가 감소했고 호남선은 40%, 전라선은 무려 65%나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고속도로의 수송량은 전반적으로 폭발적인 증가량을 보이고 있다. 1980년에서 1989년 사이에 무려 42%가 늘었다. 노선 별로 보면 경부선이 20%, 호남선이 61%, 영동선이 41%나 증가하고 있다.

철도의 감소폭 보다 고속도로의 증가폭이 훨씬 큰 이유는 새로운 수송수요가 모두 공로(公路)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포화상태의 철도수송

먼저 철도가 포화되고 있는 이유부터 따져 보자. 필자는 그 첫번째 이유로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 우리나라의 주요철도들이 서울-대전 사이에서 모두 동일한 철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길이 외길이니 혼잡할 수 밖에 없다. 통일호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급행열차가 모두 이 철로를 운행한다. 이 노선 위를 경부선급행열차가 하루 58회, 호남선 15회, 전라선 10회, 장항선 12회, 모두 95회나 달리게 된다. 또 보통열차와 화물차도 함께 달린다.

고속버스의 서비스 수준을 철도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 부산이나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는 5분 간격으로 떠나지만 호남선 철도는 1시간 이상의 간격을 가지고 출발하기 때문에 경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서비스를 개선하려면 왕복횟수를 증편시켜야 하지만 현재의 철도는 그럴 여유가 없다. 철로가 포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 포화상태를 극복하자는 데서 고속철도를 부설한다는 발상이 출발하고 있다. 어차피 새로운 철도를 건설할 바에야 근래 각광 받고 있는 일본의 신칸센(新幹線), 프랑스의 TGV와 같은 고속철도를 도입하는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속전철이 현재 포화돼 있는 서울-대전간 철도의 용량을 확대하는 유일한 카드라는 데는 반론이 많다. 왜냐하면 서울에서 여주 이천을 거쳐 충주 문경 김천으로 연결하는 새 철도를 건설, 경부선과 호남선을 분리하는 방법도 실용성과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포화돼 있는 철도의 수송 용량을 고속철도로 해결한다는 정책을 이미 결정해 놓고 있다. 물론 이 결정은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바퀴로 할 것이냐 아니면 자기부상(磁氣浮上)으로 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고속철도의 역사는 1964년 일본의 신칸센이 도쿄와 오사카(大阪) 사이를 시속 2백10km 달리기 시작하면서 막이 올랐다. 그뒤 1972년 프랑스의 TGV가 파리-리용 사이를 시속 2백70km로 주파, 신기록을 세우면서 더 높은 속도를 지향하는 경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두 열차는 모두 바퀴로 레일 위를 굴러가는 바퀴방식을 택하고 있다.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면 굴림저항력 또는 점착력(粘着力)이 바퀴와 레일 사이에서 작용한다. 속도가 커질수록 이 저항치는 점차로 작아지게 된다. 이 값이 영(0)이 되면 바퀴는 더 이상 레일 위에서 구르지 못하고 그만 미끄러져 버린다. 다시 말해 바퀴로 속도를 내는데는 상한(上限)이 있는 것이다.

지난 해 TGV가 시속 5백km를 순간적으로 기록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이 근처의 값이 바퀴로 빨리 구를 수 있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속도가 커지면 공기저항이 커진다. 동시에 점착력도 커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작아지기 때문에 속도의 한계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터널 속을 달릴 때는 공기저항이 무척 커지기 때문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없게 된다.

더 높은 속도에 도전하는 학자들은 자연히 바퀴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자기부상(磁氣淨上)이다.

1970년대부터 독일은 트랜스래피드(Transrapid)라는 자기부상열차를 선보였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리니어모터카-마그레브'라는 이름의 자기부상열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트랜스래피드는 상온(常溫)에서 전자석을 레일과 차량에 설치함으로써 반대 자극사이의 흡인력을 이용, 차량이 가이드웨이 (자기부상열차의 레일) 위로 1cm 가량 부상(浮上)하도록 했다. 차량과 레일이 서로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열차를 타면 마치 비행기처럼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열차를 앞으로 진행시키는 추진력은 가이드웨이에 함께 설치한 리니어 모터(linear motor)를 통해 얻어진다. 독일의 엠슬란드(Emsland)에 있는 전장 31.5km의 시험노선에서 트랜스래피드는 이미 시속 4백km의 속도를 내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승객을 태운 채로. 최근에는 영업용 차량이 설계되었고 최고시속 5백km를 낼 수 있도록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도 기본적으로는 독일과 동일하게 자기력으로 부상하지만 몇가지 다른 점도 있다. 첫째로 차량에 탑재한 전자석은 초전도현상을 이용, 더욱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 둘째 트랜스래피드가 자석의 흡인력을 활용하는데 반해 반발력을 이용해 부상한다. 10cm 가량 떠서 내달리는 것이다.

'마그레브'를 7km에 이르는 미야자키(宮崎)실험선에서 44인의 승객을 태우고 질주, 그 놀라운 속도를 과시했다. 원래 설계속도는 한시간당 5백km를 달리게 돼 있지만 실험선의 길이가 짧아서 실험열차는 시속 4백20km로 주행했다.
 

탄환열차의 신기원을 연 일본의 신칸센. 지난 1964년 이 레일 위를 시속 2백10km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


두가지 문제점

우리의 고속열차는 서울과 부산간을 시속 3백60km로 달리도록 계획돼 있다. 또 기존 열차의 역사(驛舍)를 공동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 역사문제 때문에 대도시 주변에서는 지하에서 천천히 (20~30km) 주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결과 전체 건설길이의 42%를 지하터널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또 언덕길의 경사도는 3%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 9월 말까지 외국의 고속열차생산 메이커들의 기술제안서를 접수했으며 이것을 검토해 우리의 여러 요구에 가장 가까운 외국회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예산은 궤도건설에 약 4조6천억원을 투입하고, 전동차 구입에 1조4천억원을 쏟아부을 작정이다. 우리가 현재 채택할 수 있는 기술은 바퀴방식과 자기부상방식, 둘 뿐이다. 두 경우 모두 외국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 공통된다.

현재 자기부상방식으로 상업운전(商業運轉)을 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당장에 사올 수 있는 기술도 아니다.

우리의 철도는 극심한 포화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형편이다. 철도의 포화로 인해 서비스(자주 다녀야 한다는)를 향상시킬 수 없다. 그 결과 고속도로나 국도 등 공로 의존도가 아주 높아져서 대도시 주변에서는 극심한 혼잡과 정체를 나타내고 있다. 어떻게든 철도의 여객수송 능력을 시급하게 향상시켜야 이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바퀴기술이라도 사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이 바퀴 고속전철이 완공돼 상업운전을 시작하는 1998년을 상상해 보자. 그때 쯤이면 자기부상열차가 상업운전을 이미 시작했거나 한참 시도하고 있을 시점이다.

미국은 이 자기부상열차의 상업운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검토를 하고 있다. 거리가 4백~6백 떨어진 미국의 대도시 사이의 여객수송을 현재는 비행기가 거의 전담하고 있다. 미국의 철도전문가들은 고속열차가 달리게 된다면 시간이나 에너지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비행기보다 훨씬 경쟁력이 앞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속 5백km의 자기부상고속열차라면 공항까지 드나드는 시간까지를 감안했을 때 비행기보다 오히려 더 빠를 수 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시속 5백km의 상업운전은 자기부상열차 이외에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다. 더욱이 초전도 전자석을 만드는 기술이 현재 괄목할만한 수준에 있기 때문에 염가의 자기부상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초전도기술은 곧 보편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꿈의 기술이라고 불리는 이 초전도 기술과 결부되는 고속열차라야 21세기가 돼도 뒤떨어진 기술이라는 평가를 면할 수 있다. 기술적 변혁이 눈 앞에 보이고 있는 이때 천문학적인 돈으로 낡은 기술을 사오는 것은 장래를 위해서도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고속열차의 수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TGV나 신칸센 탄환열차를 도입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 정부의 계획은 너무 성급하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이것이 첫번째 문제점이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3% 이상의 기울기를 가지면 바퀴로 올라가는 것이 무리이기 때문에 기울기를 감소시키기 위해 전 노선의 42%를 터널공사로 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속열차의 터널주행은 여러 가지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로 열차에 대한 공기저항이 터널 속서는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주행연료비가 50% 이상 더 소요된다. 둘째로 공기가 압축됨에 따라 승객들이 귀의 통증(耳痛)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열차를 비행기처럼 완전 밀폐시켜야 한다. 터널공사비도 평지보다 더 드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악조건에서 시속 3백60km의 상업주행을 한다는 계획이다. 이 속도는 신칸센이나 TGV의 평상시 속도가 아니라 마음 먹고 기록을 낼 때나 작성되는 속도다. 실제로 프랑스의 TGV는 전 노선에 터널이나 지하궤도를 전혀 설치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기부상열차는 기울기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기부상기술을 발전시키면 극단의 경우 수직 엘리베이터의 실현까지 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처럼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많은 지형적 조건에는 바퀴기술보다는 자기부상기술이 더 적합하다. 이것이 자기부상열차를 건설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다.
 

실험주행에 성공한 일본의 자기부상열차 ML500.시속 5백km는 거뜬하다.


10년 공들이면 우리 손으로도

만일 정부가 충분한 시간을 주고 지원을 한다면 10년 정도면 우리도 자기부상기술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맨하탄프로젝트와 같은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기부상열차 기술은 크게 나누어 세가지다. 첫째는 부상기술이고, 둘째는 리니어모터기술이다. 세번째는 우리나라와 같은 지형에 적합한 토목·건설기술의 개발이다. 이 세 기술 모두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고속열차개발건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우리 손으로 개발해야 하는 기술이다.

물론 이러한 기술이 쉽게 얻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련 기술들을 잘 조직하고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분명히 성취할 수 있다. 서독 일본 등도 지난 10여년의 기간동안 연구에 매진, 이제 상업운전 직전상황까지 도달했다. 우리나라에도 기술인력이 충분히 확보돼 있다. 이들에게 기회 한번 주지 않고 모든 것을 수입해 버린다면 우리의 21세기는 여전히 외국기술에 매달리는 의존기술 수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바퀴에서 자기부상으로 기술이 옮겨가고 있는 시대다. 이 기술은 매우 첨단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조직적인 지원이 있으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 곧 구식이 될 바퀴기술을 서둘러 비싼 돈 주고 사오는 것 보다 우리 손으로 이루는 큰 보람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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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병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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