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종합정보망 WINS는 경기결과만을 알리는 컴퓨터시스팀이 아니다.
ATRA국의 선수단 단장 민스키씨는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는 광경을 호텔방에 앉아 텔리비전을 통해 보고 있었다. 텔리비전에서는 창던지기 시합 결승이 한창 중계되고 있었다.
텔레지전 중계 아나운서는 ATRA국의 무명선수 고릴스크가 다크호스로 등장하여, 동독의 금메달 유망주 Z씨를 위협하고 있다며, 열띤 중계를 하고 있었다. 고릴스크선수는 이미 투포환에서 Z씨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모으고 있었다.
민스키씨는 선수단의 단장이면서도 호텔방에 앉아 있었다. 이 중요한 경기에.
그는 선수단 단장이자 ATRA국의 부총리였다. 그는 선수단 단장 자격으로 한국에 오기는 했으나 메달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올림픽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자국의 경제사절로서의 역할이 한층 더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선수촌에 머무르지도 않고 서울 한복판의 호텔을 거처로 정했으며, 올림픽의 경기보다는 한국의 기업체 인사내지 정부 인사와, 혹시 나중에 방문했을 때 도움이 될 만한 국가의 스포츠 인사들과 안면을 넓히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ATRA국은 초기의 공업화가 선진 외국들의 필요에 의해 약간 진척되다가, 군부에 의한 독재와 혼란 속에 점차 경제후진국 대열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 선거를 통해 어느정도 정치민주화는 찾았으나, 많은 외채와 경제적 후진성으로 해서 많은 국민이 만족하는 전체사회 민주화는 찾기 힘들었다.
ATRA국을 살리는 길은,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 경제수준을 어느 정도 올려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돈도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외국의 돈과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을 위협했던 선진외국보다는 아시아의 새로운 신흥공업국들을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민스키씨는 한국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노라 하는 기업들의 사장단과 실무진들. 그들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특히 고릴스크선수가 올림픽에 파란을 일으킨 다음부터는 훨씬일이 수월하였다.
자국에 필요한 여러분야의 사업, 원자재의 일차 가공업과 궁극적으로 전자분야의 사업들. 그러나 우호적인 것과, 확실한 언질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정부 측의 지원과 양해가 있어야 외국 진출에 자신을 가지는 듯 했다.
결정적인 키는 경제부처의 K장관이 쥐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민스키씨는 오늘 K장관과의 전화통화 및 면담을 신청해 놓고 여기 호텔방에서 회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동독의 Z선수가 다부지게 창을 들고 자리에 섰다. 잘 발달된 근육과 유연한 몸매. 그리고 우아한 폼으로 그는 창을 밀어냈다. 중계 아나운서는 세계 신기록이라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다음이 마지막 선수인 ATRA국의 고릴스크였다. 굉장한 거구에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좀 둔해 보였다. 선수단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부단장에게 그래도 메달권에 들만한 선수가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유일하게 고릴스크를 이야기했다.
힘에 있어서는 천하장사이지만, 아직 기술이 없어 미지수라고 했다. 선수단을 조직하면서, 부단장이 찾아낸 밀림의 사나이로서, 이전에는 전혀 육상경기 경험이 없고, 6개월의 짧은 훈련을 받았을 뿐이었다.
"자네 뿐일세. 우리나라를 빛내 줄 사람은. 내 비록 나가서 성원은 못하지만 여기서나마 자네의 승리를 비네"
민스키씨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고릴스크씨가 높이 창을 쳐들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그의 팔의 근육이 튕겨질 듯 일어나는 것을 보고, 창이 하늘을 날면서 다시 땅에 꼽힐 때까지, 그는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심판이 깃발을 들고 뭔가 외치고, 아나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뭔가를 크게 떠들어 댈 때,그것이 무슨 이야기인지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금메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민스키씨는 뒤를 돌아보며, 비서에게 이야기 했다.
"여보게, 우리 샴페인이나 한잔 들지 않겠나?" 그는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경륜에 맞지 않게 떨려 나온다고 생각했다.
"예"라고 대답하는 비서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민스키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WINS(올림픽종합정보망) 단말기로 다가갔다. 대통령에게 이 소식을 보고하기 위해서 였다. WINS 단말기를 두드리면서도 자꾸 글씨가 뿌여진다고 느꼈다. 저번에도 한번 그랬었지!
그때는 어떤 기업의 회장 비서실에서 접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방을 잠시 나갔던 비서가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뛰어 들어 왔다.
"고릴스크가 금메달을 땄데요."
비서 아가씨를 졸라 텔리비전을 켰다. 텔리비전에는 참으로 귀엽기 이를데 없는, 곰과 같이 생긴 고릴스크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옆에 통역이 열심히 인터뷰 질문을 통역해 주는 데도 그는 환성만을 지르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 처럼 좀 세련되지 못하고 '민스키씨의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옆에서 종이쪽지를 전해 주었다. 그것을 들여다 본 고릴스크는 땅에 업드리며 통곡을 했다. 민스키씨는 그 종이가 무엇인지 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노친네, 잠이나 자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ATRA국의 대통령으로부터 날아온 축전이었다. 대통령은 밤늦도록(한국의 낮은 그곳의 밤이었으므로) 단말기를 두드리며 선수들의 기록을 점검하고 있었고(텔리비전 위성 중계를 할만한 국가적 처지가 못되었으므로)금메달이 확인되자 마자, WINS를 통해 축하 전신을 보낸 것이고, 접수 즉시 선수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그래, 그때도 텔리비전의 화면이 보이지를 않았었지!
대통령에게의 보고를 마쳤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비서가 문을 열자 샴페인과 조그마한 전보용지를 든 룸 서비스 요원이 들어왔다. 전보용지에는 "수고많네. 돈을 좀더 보낼테니 축하파티라도 해주게"라고 적혀 있었다.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의 단말기를 통해 민스키씨에게 WINS 축하 전신을 보낸 것이었다.
"오늘 저녁에라도 파티 장소를 하나 물색해 보게" 민스키씨는 비서에게 하는 자신의 말이 울먹이는 소리라고 느꼈다.
민스키씨가 WINS 단말기를 통해 고릴스크와 부단장을 치하하는 메시지를 끝마치자 비서는 이 호텔의 최고층 룸을 하나 빌렸다고 보고했다.
처음에는 모두 예약이 되어 있다고 거부하더니, 육상 2관왕인 고릴스크씨의 축하연이라고 하니 금방 수배해 주더라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는 다시 WINS에 앉아 선수단 전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는 호텔에 머물러야했기 때문에 모든 지시를 WINS를 통해 해왔고, 선수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WINS 단말기를 확인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그가 선수단 단장으로, 또한 실질적으로는 경제 교류의 사명을 띠고, 한국에 들어올 때에 상당히 고심을 한 부분이 상호간의 연락이었다. 거의 10시간의 오차가 나는 대통령 및 정부기관장과의 대화와, 또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 선수 및 감독, 코치와의 연락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오기 직전에 확인한 올림픽 종합정보망 WINS의 성능에 그는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시차의 문제는 일단 보낸 메시지를 보관해 두었다가 자신이 편리한 시간에 꺼내 볼 수있는 WINS를 통한 메시지 교환이 있어 해결이 가능했고, 선수들과의 연결도 WINS를 통해 어디서나 쉽게 가능했기 떄문이었다.
선수단으로부터의 매일매일의 보고도 WINS 단말기를 통해 받았고, 그의 휴대용 컴퓨터와 삐삐(페이저)를 통해 급한 연락도 항시 가능했다.
대통령에게 해외 공중통신망을 통해 WINS와 연락하는 방법을 교육시켰고, 집무실에 단말기를 설치하였다.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의 집이나 사무실에도 단말기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그리하여 그는 호텔방의 전용 WINS 단말기와 자신의 휴대용 컴퓨터로 항시 누구와도 교신이 가능한 체제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비서와 샴페인을 2잔째 비울 때 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K장관실로부터 온 전화였다. 민스키가 전환를 받았을때, 처음 들은 이야기는 "고릴스크씨의 육상 2관왕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라는 것이었다.
민스키가 자국의 사정과 자신의 면담목적, 그리고 그것이 ATRA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또한 한국의 경제에도 상당히 이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간략히 전했을 때, K장관은 대단히 환영한다면 내일 약속 시간을 정해주었다.
전화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그는 WINS 단말기의 초기 화면에 크게 그려져 있는'WINS'라는 글씨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