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를 정복하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미국이나 유럽의 연구실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밀림지대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AIDS바이러스의 기원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AIDS를 물리칠 백신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까닭이다. 수백만의 인명과 함께 수억 달러의 자금까지 걸린 이 과업을 위해 프랑스, 미국, 영국, 벨기에 등지에서 온 많은 학자들이 지금 밀림과 싸우면서 가혹스러울 정도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틀림없이 아프리카에서 발생
많은 반론이 있으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AIDS가 1950년대에 이 검은 대륙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사실상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 훨씬 심각하게 AIDS의 엄습을 받는 곳이 아프리카이다. 이 곳에서의 병의 전염은 비단 동성애에 의하지 않고 모든 계층의 주민에게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최근의 공식통계에 의하면 자이레의 수도인 '킨샤사'의 보균율은 7%에 이르며, 아비잔의 창녀들의 경우 평균 보균율이 34%나 되고 프랑스군 주둔지 근처의 몇몇 기지촌에서는 최고 62%에 이른다.
'코트디브와르'의 한 작은 마을에선 AIDS바이러스를 처음으로 발견한 바 있는 '프랑스와즈 바레-시누시'와 '장 클로드 셰르망'을 포함한 파스퇴르연구소(프랑스)측이 조사·연구를 진행 중인데 "아프리카의 현재 상황은 AIDS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책이 발견되지 못했을때 5년 후에 유럽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고 그 심각성을 전하고 있다.
무해한 바이러스 찾아 항체를…
AIDS바이러스가 정말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그 바이러스는 지금도 거기에 병원균이 아닌 형태로 존재할 것이라는 게 AIDS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여 백신을 개발하려는 학자들의 추론이다. 만약 AIDS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AIDS를 일으키지 않는 비병원성 AIDS바이러스를 발견하게만 되면 두 바이러스의 구조를 비교함으로써 둘 중 한쪽에만 병원성을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낼 수 있고 그에 따라 AIDS백신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프랑스에선 서부아프리카 '기니비사우'출신의 환자로부터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AIDS바이러스를 발견하여 'LAV2'라 명명한 바 있다. 거의 동시에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마이런 에섹스'는 세네갈 창녀들의 혈액에서 AIDS유사바이러스인 'HTLV4'를 발견하였다.
아프리카를 기원으로 하는 이 두 바이러스 중 'LAV2'는 병원성인데반해 'HTLV4'는 비병원성이라는 게 '에섹스'측의 주장이다. 또한 이들과 유사성을 갖는 비병원성의 제3의 바이러스가 원숭이 체내에서 발견되어 연구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F. 바레-시누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아마도 AIDS바이러스는 오래전부터 인체에 해롭지 않은 어떤 형태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 가지 변형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때 인가 병원균으로 변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동안 탐지되지 않은 몇몇 한정된 지역에서만 발병되고 있다가 탈(脫)식민지 시기인 지난 6,70년대에 국경의 개방 및 그에 따른 주민의 이동에 의해 급격히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 하에 서부아프리카에서 AIDS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들이 그 기원을 찾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인간의 바이러스로부터 원숭이의 바이러스로 계통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다. 즉 빈틈없는 고생물학적 조사를 통해서 바이러스가 병원성을 갖기 시작한 '빠져있는 고리'부분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면 그 바이러스를 다른 바이러스와 비교함으로써 현대의 이 대재앙에 책임이 있는 문제의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몇가지 희망적 가능성
이러한 기본적인 연구 작업들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는다면 AIDS를 물리칠 다음의 세가지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고전적인 백신추출법 : 병원성을 갖지 않는 시초의 바이러스가 그와 유사하나 병원성을 가진 바이러스들에 대해 효과적인 항체를 인체 내에서 만들어낼수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간단히 백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②유전학적 조작을 통해 백신을 얻는 방법 : 병원성 바이러스에서 떼어낸 한 조각을 비병원성 바이러스에 결합시키면 병을 유발함이 없이 인체 내에서 항체를 형성시키는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이 가능하려면 바이러스에 병원성을 부여하는 유전자가 확인되어야 한다. 현재 몇 가지 백신이 만들어져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 중이나 성공적인 결과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③앤티바이러스 약품의 개발 : 바이러스에 대해 완전히 파악만 되면 백신의 발견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의 활동을 중지시키거나 그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약품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파스퇴르연구소의 'F 바레-시누시'와 'J.C.셰르망'이 이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특히 바이러스의 증식효소인 '리버스 트랜스크립타제'의 생성 억제법연구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리버스 트랜스크립타제'가 면역체계의 T림프구에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물질의 발견에 열중하고 있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캔더스퍼트'가 이끄는 연구진은 인체 신경계의 화학적 물질의 하나인 펩티드T가 바이러스의 림프구 진입을 막아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아직은 동물생체실험단계인데 내년 초쯤이면 인체에의 실험이 가능할것 같다.
프랑스 '퀴리'대학의 '다니엘 자귀리'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이미 자원한 자이레인 환자들에게 또다른 물질을 실험한 바 있다. 그런데 그는 관례를 깨면서까지 자신의 작업 일체를 비밀에 붙여 다른 학자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백신이 됐든 약품이 됐든 간에 아프리카에서의 조사·연구가 AIDS의 정복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렇듯 연구진들 사이에선 악착스럽고도 치열한 경쟁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석유메이저들이 세계의 유전을 분할하듯이 AIDS바이러스를 놓고 학자들이 아프리카 영토를 분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백신의 발견은 그 발견자를 일거에 노벨상 수상자로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고용하는 회사에 연간 1억달러의 시장을 확보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점들은 경쟁을 더욱 심화시켜 한편 인류를 대재앙으로부터 구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학자들의 열의를 자극하여 새로운 발견을 촉진시켜주고 있기도 하다.
AIDS백신이 아주 가까운 장래에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일단 백신이 발견돼도 그 백신을 실험하는데에만 5년은 걸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