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롱 선장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건 바로…, 페가수스 선장이었어!”
“네? 설마요! 페가수스 선장이 그런 짓을 할 리 없어요!”
딱지가 외쳤습니다.
“페가수스 선장은 겉보기와는 달리 야망이 있고 음흉한 사람이야. 페가수스 선장이 일부러 경쟁자인 해롱 선장에게 누명을 씌운 거였지.”
“백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면, 왜 신고하지 않은 거죠?”
“너도 알다시피 페가수스 선장은 빈틈이 없는 사람이야. 증거 따위를 남기지 않았거든. 게다가 신고했다가는 해롱 선장이 도깨비감투로 몰래 동료들을 감시한 사실도 드러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그 이후로 해롱 선장은 페가수스 선장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딱지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페가수스 선장이 그런 비열한 인물이라니요?!
목적지인 뜨차 행성에서 해야 할 일은 난방 연료 배달이었습니다. 정글 마을을 담당하는 배달부가 감기에 걸려 일을 못하게 된 것이지요.
“아니, 열대 기후라면서요? 무슨 난방이에요? 그리고 여기서도 감기에 걸려요?”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숨 막힐 듯한 공기에 딱지가 투덜거렸습니다.
“여기가 우리한테는 열대 기후지만, 이곳 사람들한테는 추운 기후거든. 아유, 나한테는 따뜻하고 딱 좋네. 그럼 수고해, 딱지야~.”
첫 번째 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자 두툼한 옷을 입은 집주인이 딱지를 맞았습니다.
“허, 헉. 우, 우주순찰대입니다. 여, 여기 난방…, 여, 연료요.”
“아이고, 고마워라. 덕분에 얼어 죽지 않겠네요. 저런, 추운데 고생하느라 손이 꽁꽁 얼었네. 장갑을 줄 테니 끼고 다녀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뜨차 행성 사람들은 너무나 착해서 딱지를 볼 때마다 걱정해 주었지요.
“그렇게 춥게 입고 다니면 감기에 걸려요. 이거라도 입어요.”
“에구, 이런 겨울에는 귀마개를 안 하면 귀 떨어지는데…. 자, 여기 이걸….”
딱지는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이곳 사람들이 하나씩 챙겨 준 겨울용품을 껴입어야 했습니다. 두꺼운 방한복에 장갑, 귀마개까지 하고 정글을 돌아다니니 땀이 줄줄 흘러나왔습니다. 네 번째 집주인은 딱지가 안쓰러운 모양이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옷도 얇게 입었는데, 이렇게 땀을 흘리다니요? 시원한 물 좀 드려야겠네.”
마침 시원한 물 생각이 간절했지만, 집주인이 내놓은 물은 컵라면을 익힐 수 있을 것처럼 뜨거웠습니다. 딱지는 후후 불어가며 간신히 물을 마셨습니다. 뜨거운 물을 마시니 뱃속까지 더웠습니다. 딱지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간신히 배달을 마쳤습니다.
녹초가 되어 해롱 호로 돌아온 딱지는 프로보와 마주치자 대뜸 외쳤습니다.
“뭐예요, 프로보! 저번에 해 준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서요?”
때마침 루띠도 나타났습니다.
“프로보, 네가 어디서 주워들은 얘길 해 줘가지고 딱지가 오해를 했잖아.”
“무슨 소리야. 루띠, 너도 이상한 얘기를 해 줬더만.”
거기에 용용까지 가세하며 갑자기 세 명이 말다툼을 시작했습니다.
“해롱 선장은 페가수스 선장과 삼각관계였다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왜 헛소문을 퍼뜨리고 그래? 열등감 때문이야!”
“다들 틀렸어. 음흉한 페가수스 선장에게 속은 적이 있어서 그래!”
다들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 이야기가 옳다며 큰 소리로 떠들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다들 그 얘기는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우주순찰대 은하넷 커뮤니티에서.”
“본부에 있는 친구한테서.”
“일광욕 동호회에서.”
셋이 동시에 대답했습니다.
“음, 그러면 다 소문이고, 해롱 선장님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네요?”
그때 해롱 선장이 귀를 후비며 들어왔습니다.
“뭐야, 왜 이리들 시끄러워?”
일순간 조용해졌습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자 딱지가 용기를 내서 물었습니다.
“선장님! 선장님은 도대체 왜 페가수스 선장님을 싫어하시는 거죠?”
모두 가만히 페가수스 선장만 바라봤습니다. 해롱 선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말하기 싫은데, 거짓말을 못하는 도깨비의 습성 때문에 어쩔 수가 없군.”
다들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관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어. 식당에서 페가수스와 부딪쳤는데, 살짝 방귀 소리가 난 거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어. 내가 아니라고 태연한 표정을 지었는데, 다들 ‘해롱이 방귀를 뀌었네’라고 수군거리더군. 아무도 페가수스가 뀌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야. 도대체 왜?! 그래서 한동안 나는 해롱이 아니라 ‘해뿡’이라고 불려야 했어! 뽕도 아니고 뿡! 실제로는 뽕 수준도 안 되는 소리였는데!”
딱지는 허탈했습니다.
“페가수스 선장님도 순간 창피해서 아무 말 안 했나 보죠!”
그러자 해롱 선장의 표정이 미묘해졌습니다. 그걸 눈치챈 루띠가 물었습니다.
“그 방귀, 페가수스 선장이 뀐 거예요?”
“아…, 아니. 내가 뀌었지. 으아~, 왜 난 거짓말 못하는 도깨비로 태어났을까!”
“뭐야, 그럼 애초에 선장님 탓이잖아요.”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다가 한 마디씩 물었습니다.
“그럼 라일락 국장과 삼각관계가 아니었단 겁니까?”
“라일락? 걘 나한테 숙제도 안 보여 줬는데, 삼각관계는 무슨!”
“씨름 대회는요?”
“그게 뭐야? 씨름 대회 같은 건 한 적이 없는데. 했다면 내가 우승이었겠지만.”
“그럼 누명은요?”
“누명은 또 뭔 소리야? 다들 나에 대해 무슨 소리를 떠드는 거야? 다들 일이나 하러 가!”
딱지는 그때까지도 큭큭 웃고 있었습니다.
“딱지, 너도 빨리 가. 새로운 임무다! 얼음 행성에 가서 산딸기 찾는 일이야!”
해롱 선장은 모두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끝이 없을 듯한 임무의 파도도 결국에는 끝이 났습니다. 겨우 숨을 돌린 딱지는 마지막 일을 끝내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거의 이틀 동안 잠만 잤습니다. 마침내 배가 너무 고파 잠에서 깬 딱지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우주순찰대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언젠가 페가수스 호로 갈 수 있기는 할까? 확 때려치워 버릴까?’
그때 딱지의 방문이 열렸습니다. 루띠였습니다.
“야, 고딱지! 택배선이 왔는데, 은하넷 쇼핑을 도대체 얼마나 한 거야? 네 것 챙겨가!”
이상했습니다. 딱지는 임무가 너무 바빠서 물건을 살 시간도 없었거든요. 얼마 뒤 딱지의 방에 상자가 한가득 쌓였습니다. 딱지는 상자를 하나씩 열어봤습니다.
첫 번째 상자에서는 로셀리나와 디프레의 3D홀로그램이 떠 있는 우주선 모양의 장식품이 나왔습니다. 손글씨로 쓴 편지도 함께요.
“우주순찰대원님들 덕분에 결혼식을 할 수 있었어요. 감사의 뜻으로 기념품을 보냅니다.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도 커서 우주순찰대 대원이 되면 좋겠어요~!”
두 번째 상자에서는 땅고양이 인형과 홀로그램 영상이 나왔습니다. 영상 속의 아이는 땅고양이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세핀이 새끼를 낳았어요. 임신해서 예민했었나 봐요. 덕분에 무사히 새끼를 낳아서 안부 전해드려요~.”
또 다른 상자를 열자 두툼한 모자와 장갑, 장화, 귀마개 같은 방한용품이 잔뜩 나왔습니다. 역시 홀로그램 영상도 있었는데, 뜨차 행성의 정글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었어요. 우주는 말도 못하게 춥다는데, 부디 따뜻하게 지내길 바라요~!”
딱지는 다른 상자도 하나하나 뜯어봤습니다. 전부 고맙다는 인사가 담긴 선물이었습니다. 딱지는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피커로 해롱 선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딱지 어딨어? 빨리 조종실로 오도록. 출동이다!”
딱지는 심호흡을 하며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방을 가득 채운 선물 더미를 한 번 쓱 쳐다본 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외쳤습니다.
“네, 곧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