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북 10쪽과 함께 보세요! 바로가기
(지난 줄거리 :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딱지. 꿈에 그리던 페가수스 호의 순찰대원이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던 찰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족 루띠를 따라 해롱 호에 탑승하게 되는데….)
“여기가 페가수스 호가 아니라고? 안 돼! 안 돼에에~!”
딱지가 외치며 눈을 떴습니다. 주위는 캄캄했습니다. 딱지는 몸서리쳤습니다.
‘휴우~, 꿈이었구나. 깜짝 놀랐네. 잠깐! 여기는 어디지?’
딱지는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때 딱지 맞은편에서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딱지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외쳤습니다.
“뭐, 뭐예요? 누구세요?”
“거봐,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니까? 깨어났네, 깨어났어.”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동시에 불이 켜졌습니다. 딱지는 방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꿈에서 봤던 루띠가 가장 먼저 보였거든요. 그 뒤에는 뱀 한 마리와 로봇 한 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인간이 한 명 서 있었는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안 돼~!”
딱지가 머리를 감싸며 외쳤습니다. 꿈이 사실은 꿈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맨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일단 깨어났으니 조종실로 데리고 와. 우주선 소개를 해줘야지.”
딱지는 이 괴상한 일행을 따라 조종실로 갔습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는 해롱 호다. 난 해롱 호를 지휘하는 해롱 호 선장이지. 인간처럼 보이겠지만, 도깨비 행성 출신의 도깨비 종족이다. 루띠 말로는 네가 실험 도중에 정신을 잃었다더군….”
“오해입니다. 저는 사실 페가수스 호에 타게 되어 있었다고요. 여기에 탄 건 실수….”
해롱 호 선장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꿈이라도 꾼 거야? 루띠 말로는 신입이라고 찾아왔다며? 사관학교 졸업 성적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꼴찌도 할 수 있고 그렇지 뭐. 이름이 뭐지, 신입?”
“아니, 저는 꼴찌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가 아니라….”
“아유, 꼴찌여도 괜찮다니까. 부끄러워하긴. 이름이 뭐라고?”
“전 수석으로 졸업했고, 페가수스 호에 배정됐습니다. 여기엔 실수로 탄 거라고요. 이름은 고딱지입니다.”
“그래, 그래. 코딱지 대원. 해롱 호에 온 걸 환영한다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푸흡. 뭔 딱지라고?”
딱지의 얼굴이 시뻘게졌습니다.
“아니라고요! 전 고딱지가 아니라 코딱지입니다!”
당황한 딱지는 그만 혀가 꼬여 버렸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 이번 신입은 딴 건 몰라도 유머 감각은 있네!”
손이 없는 뱀을 빼고는 다들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딱지는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해롱 호 선장이 웃음을 그치고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해롱 호 대원들을 소개해야겠군. 루띠는 만나봤다고 했지? 루띠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족으로, 해롱 호의 기관사야. 엔진을 비롯해 각종 장치를 담당하고 있지. 그리고 여기는 이무기 종족인 용용.”
뱀이 딱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용용은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는 항법사*야. 손이 없어서 가끔 우주선이 엉뚱한 데로 가는 건 이해해 줘.”
마지막으로 로봇이었습니다.
“이 로봇은 해롱 호의 조종사인 프로보다. 말투가 좀 부정적이지만, 오해하지 마. 성격은 삐딱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딱지는 골치가 아팠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페가수스 호로 옮겨 타야 했습니다.
띠링~, 띠링~. 그때 조종실 안에 알림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루띠가 확인하더니 말했습니다.
“선장님, 페가수스 호에서 초광속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연결할까요?”
딱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해롱 호 선장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페가수스 호 선장? 걔가 왜? 난 걔가 품위를 너무 따져서 싫은데. 그냥 나 없다고 그러면 안 될까?”
루띠가 대답하기도 전에 딱지가 뛰어들어 버튼을 눌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페가수스 호 선장과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이봐, 뭐 하는 짓이야, 신입!”
루띠가 화를 내는 동시에 앞쪽의 화면에 페가수스 호 선장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해롱 호 선장, 잘 지내고 계시는가?”
“아, 이런…. 흠흠. 안녕하신가, 페가수스 호 선장.”
해롱 호 선장이 코를 후비며 시큰둥하게 대답했습니다. 딱지는 화면을 향해 필사적으로 외쳤습니다.
“페가수스 호 선장니이임~!”
페가수스 호 선장의 눈길이 고딱지를 향했습니다.
“아, 거기 있었군. 그런데 그 품위 없는 표정은 뭔가?”
“왜 우리 신입한테 잔소리야?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실은 우리 페가수스 호 신입이 자네의 해롱 호에 탄 모양이야. 혹시나 해서 연락했더니 정말로 그렇군. 신입 대원을 돌려주면 고맙겠네.”
딱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제 페가수스 호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응? 아까 그 말이 사실이라고? 이 녀석이 정말 수석 졸업생이라고?”
해롱 호 선장을 비롯한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딱지를 쳐다봤습니다.
“아까부터 제가 그랬잖아요! 왜 제 말을 안 믿으시는 겁니까?”
딱지는 정말 억울했습니다.
“아무튼 고딱지 대원은 우리 페가수스 호 소속이니 돌려보내 주게나.”
페가수스 호 선장이 점잖게 말했습니다. 역시나 우아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말투였지요.
그런데 해롱 호 선장은 못마땅한 듯이 입술을 삐죽거렸습니다. 그때 루띠가 해롱 호 선장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습니다. 해롱 호 선장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습니다.
“이보게, 페가수스 호 선장. 문제가 하나 있어. 자네는 내 도깨비방망이 알지? 도깨비 행성의 최첨단 물질 조합기 말일세. 실은 그게 코딱지 대원하고 융합★이 되어 버렸단 말이야. 그래서 쉽게 넘겨줄 수가 없게 되었어.”
“자네의 도깨비방망이가 코딱지 대원과 융합을? 흠, 그거 곤란하군.”
이제 페가수스 호 선장까지 딱지의 이름을 잘못 부르고 있었습니다. 딱지는 한숨만 나왔습니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네. 우리 둘이 내기를 해서 이기는 쪽이 코딱지 대원을 갖기로 하세!”
뜻밖의 말에 루띠가 화를 냈습니다.
“아니, 거기서 왜 또 내기해요? 방망이는 이제 내 거라니까요!”
해롱 호 선장은 손을 휘휘 저었습니다.
“아, 이기면 될 거 아냐. 이봐, 페가수스 호 선장. 간단하게 주사위를 던져서 높은 수가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로 하세.”
“흠, 그런 일을 내기로 결정할 수는 없….”
“내가 먼저 던지지! 아차, 주사위가 없나? 내 도깨비방망이 어디 있지? 주사위 나와라, 뚝딱~!”
루띠가 또다시 화를 냈습니다.
“아, 진짜! 방망이가 쟤랑 융합됐다고 몇 번이나….”
그때였습니다.
딱지는 콧속이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꾸 코딱지, 코딱지 소리를 들으니 진짜 코딱지가 생겼나 보네.’
딱지는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코를 후볐습니다.
‘나와라, 얼른 나와라~. 윽, 뭐 이렇게 커!’
“야, 코딱지. 너 코딱지 파냐?”
용용이 외치자 다들 딱지를 바라봤습니다. 딱지는 얼른 손가락을 뺐습니다. 그런데 딱지의 콧구멍이 커다랗게 벌어지면서 큼지막한 코딱지가 딸려 나왔습니다. 손가락 끝에 붙어 있는 코딱지는 다름 아닌 주사위였습니다!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딱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딱지도 너무나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페가수스 호 선장이 헛기침하더니 말했습니다.
“으흠…. 이보게, 해롱 호 선장. 저런 장면은 우주에서 처음 보는군. 내 우주선에서는 저런 품위 없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네. 내가 진 거로 하세. 본부에는 내가 이야기하지. 그럼 이만.”
화면이 꺼지면서 페가수스 호 선장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딱지는 찐득찐득한 주사위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루띠와 용용, 프로보가 다가와 딱지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해롱 호에 온 걸 축하한다!”
※용어정리
항법사: 배, 비행기, 우주선 등의 이동을 추적하거나 방향을 조종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