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넷째네 집은 어디?
"에휴~. 경성 최고의 멋쟁이가 이렇게 시간만 때우고 있다니…. 뭐 재미난 일 없을까?"
허름한 커피숍에서 식은 커피를 놓고 잡지를 읽던 허풍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이건! 이 책이 사실이었다고? 믿을 수가 없군. 내가 만약 필리어스 포그처럼 세계일주를 하면…. 으하하~! 난 경성 최고의 유명인사가 될 수 있어. 조선 최초의 세계일주 여행가가 되는 거야!"
경성 최고의 잡지인 '선데이 경성'에 실린 필리어스 포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대한 기사를 보고 기대에 찬 목소리를 내는 허풍. 그는 커피숍을 박차고 나와 '선데이 경성' 잡지사로 달려갔다.
"나도 필리어스 포그처럼 세계일주를 할 수 있소. 여행담을 적은 여행일지를 모두 '선데이 경성'에 줄 테니 여행 경비만 후원해 주시오!"
다짜고짜 찾아온 허풍을 본 편집장은 당황했지만 허풍쟁이로 유명한 허풍을 내보내기 위해 건성으로 말했다.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오시오. 당신이 세계일주를 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세계일주를 했다는 증거만 가지고 온다면 그 때 잡지에 실어 주겠소."
편집장의 말을 들은 허풍은 들뜬 마음으로 여행계획을 짜고 여행담을 기록해줄 조수를 구하기 위해 모집광고를 냈다.
며칠 후. 많은 지원자가 공고문을 보고 모였다.
"음. 지금부터 조수 선발을 시작하겠소. 세계일주를 하려면 체력은 물론 뛰어난 문제 해결력이 있어야 할 것이오. 경성에 유명한 부자 네 쌍둥이가 있소.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첫째이고 막내인지 구분하지 못하오. 쌍둥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쌍둥이 집 문에 있는 문살모양의 규칙을 알아내 넷째네 집으로 가시오. 거기서 두 번째 문제를 내겠소."
허풍의 말이 떨어지자 지원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자들은 이미 정답을 풀고 남들 몰래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다.
2. 어느 곳에 말을 놓을까?
잠시 후 지원자들의 일부는 정답을 찾아, 일부는 포기한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모두가 사라진 마당에 웬 꼬마 하나가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지 않은가!
"어이, 꼬마~.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흠~. 왠지 수상해 보이는데…. 정말 뽑히면 세계일주 하는 거 맞아요?"
" 이 허풍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냐? 날 뭘로 보고. 넌 탈락이야!"
"아~. 죄송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는 거다. 어서 문제나 풀어."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꼬마는 문제를 이미 풀어놓은 듯 곧바로 넷째네 집을 향해 뛰어갔다. 문제를 푼 사람들이 넷째네 집 정원에 모여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허풍은 바닥에 고누판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두 번째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창살고누 판이오. 여기에 말을 서로 번갈아 가며 놓는데, 새로운 말은 반드시 말과 말 사이에 놓아야 하오. 그리고 새로 놓는 말의 양옆에 있는 두 개의 말은 가지고 가야 하는 규칙이 있소. 더이상 말을 놓을 곳이 없게 만들면 이긴다고 할 때, 이 고누판 어느 곳에 말을 놓아야 단 한 번에 이기겠소?"
허풍이 문제를 내자 사람들은 서로 먼저 풀기 위해 고누판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그런 광경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허풍의 눈에 멀찍이 떨어져 팔짱을 끼고 있는 꼬마가 보인다.
3. 보물 상자를 열어라
"꼬마야, 문제는 풀지도 않고 뭐하는 거냐?"
"다 풀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서…."
"정말 다 풀었다고? 답이 뭔지 아느냐?"
"그럼요. 그런데……. 저기 정원과 고누판이 비슷하지 않나요? 제가 보기엔 나무와 돌의 위치가 고누 말의 위치와 같은 거 같아서…."
꼬마는 정원나무와 돌들이 위치를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음~. 정답의 위치가 여기니깐. 아~! 이것 보세요. 여기 뭔가 파묻은 흔적이 있어요."
꼬마는 한 삽 한 삽 열씸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꼬마는 무엇인가 꺼냈다.
"와~! 보물 상자다! 근데 어떻게 여는 거지. 음~. 열쇠구멍도 없고 이 조각은 또 뭐지?"
"꼬마야, 보물 상자를 들고 뛰어."
"예? 뛰라고요?"
"그냥 뛰라니깐! 잔말 말고 뛰어!"
허풍은 꼬마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꼬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허풍에게 끌려갔다. 얼마쯤 뛰었을까….
"헥헥~. 갑자기 왜 뛴 건가요?"
"에휴~. 이유는 묻지 마. 큰일 난다. 크크크~"
허풍은 똘똘한 꼬마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꼬마면 어른보다 여행경비도 적게 들고 여러모로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따돌리기 위해 넷째네 집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꼬마야. 보물 상자를 봐. 여기 자물쇠 모양 보이지? 상자를 열려면 일곱 개의 조각을 맞춰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야 해. 한번 해봐."
꼬마는 땅에서 나온 일곱 개의 조각을 앞에 놓고 노려보고 있었다.
"음~. 이 조각 왠지 낯익어. 이건 유객판!"
꼬마가 자신있는 표정으로 조각을 맞추기 시작하는데….
4. 세계일주의 첫 여행지는?
"오오~, 열렸다. 열렸어! 이건 뭐지?"
조심스레 열어 본 상자 안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꼬마는 살며시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그것은 왠지 모르게 낯익은 그림이었다.
"이건 코흘리개 시절 밤마다 이불에 그렀던…. 크기로 봐서는 전날 밤에 불장난을 크게 한 것이 분명해. 보통 양이 아니야!:
"하하하~. 꼬마야. 그게 아니야. 이건 세계 지도라는 거야. 우리 조선의 생김새는 물론 온 세상의 생김새를 그려 놓은, 말하자면 이 땅의 얼굴을 그린셈이지."
허풍은 흐뭇하게 꼬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계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지도를 잘 보는 거야. 세계 지도에서 나라의 크기를 봤을 때 노르웨이보다는 작고 독일보다는 큰 나라를 찾아봐. 그래 그건 바로 일본이야. 세계일주의 첫 번째 여행지지. 설마 아직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건 아니지?"
"아~. 여기 찾았어요. 우리나라와 정말 가까운 곳에 있네요. 그런데 여기 있는 나라를 다 여행하는 건가요? 제가 상자 안에 있는 물건을 가져 왔으니 제가 같이 여행을 가는 거죠?"
"진정해. 아직 마지막 문제가 남아 있어. 이 문제를 통과하면 이 몸의 조수로 임명해 주겠다. 자, 그럼 문제를 내도록 하지. 잘 들어봐. 일본의 크기는 세계에서 □번째로 큰데 이 수는 3으로 나누면 1이 남고 7로 나누면 5가 남고 13으로 나누면 9가 남는 최소수라고 해. 그럼 일본의 크기는 세계 몇 위냐?"
문제를 듣자마자 꼬마가 땅바닥에 숫자를 적기 시작하는데….
허풍의 사악한 음모
"아! 다 풀었어요. 마지막 문제라 그런지 제법 어렵네요."
마지막 문제까지 풀어낸 꼬마의 이름은 나도형! 허풍과 도형은 지도를 보며 이야기한다.
"크크크, 제법인걸. 앞으로 우리는 이 지도에 나와 있는 나라를 여행하며 우리의 이름을 알리게 될 거야. 필리어스 포그처럼 말이지. 어때 가슴 벅차지 않아?"
"네~. 두근거려 밤에 잠도 못 이룰 것 같아요."
"크하하, 촌스럽긴. 일단 서양 문물에 적응해야겠군. 일단 이걸 입어라!"
"이 옷은 뭔가요? 알록달록하고 이상한데요?"
"이 옷은 저 먼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즐겨입는 삐에로 복장이야. 그 곳 사람들은 큰 잔치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이 옷을 입는다고 해. 오늘은 굉장히 기쁜 말이잖아. 이 옷을 입고 축하잔치를 하는 거야."
"아! 그렇군요. 와~! 그러고 보니 잔치 분위기인데요? 춤이 절로 나와요! 에헤라 디아~♬"
아무것도 모르는 도형은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이 허풍은 중절모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길거리 공연에 대한 돈을 받고 있다. 엥? 도형을 정말 조수로 뽑은 거 맞아? 어쨌거나 조선 최초의 세계일주! 허풍과 나도형의 파란만장한 모험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