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타는 생태학자의
흥미로운 눈높이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
대만에서 미국까지, 수관층 생태학자의 일곱 나무 이야기
란융샹 지음│강영희 옮김│사계절│352쪽│2만 6000원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는 숲속 거대한 나무에 오른 순간, 새로운 진로로 나아간 생태학자의 에세이다. 저자는 대만 출신의 수관층(canopy) 연구자인 란융샹 미국 오리건주립대 농대 박사후 연구원이다. 수관은 가지와 잎들이 무성한 나무 윗부분, 즉 나무 꼭대기를 뜻한다. 그래서 한자로도 나무(樹)가 쓴 갓(冠)이다. 수관층은 숲에서 나무들의 수관이 모인 영역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저자가 20여 년간 대만과 미국에서 수관층 생태학자의 길을 ‘오르며’ 만난 일곱 나무 꼭대기의 이야기다.
대만편백나무와 대만가문비나무를 오르며 수관층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저자는 산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미국 오리건주립대 박사 과정에 입학하면서 미국 각지의 나무에 오른다. 그중 캘리포니아 세쿼이아-킹스캐니언 국립공원의 자이언트세쿼이아, 알래스카 시트카섬에서 이름을 딴 시트카가문비나무도 있다. 특히 대만가문비나무로 석사 논문을 쓰며 가문비나무에 애정이 깊어진 저자는, 이 섬 외에도 미국, 중국 등에서 이 속의 여러 나무를 만나고 오른다. 수관층에서 숲을 내려다보듯 나무를 보는 저자의 시야가 넓어진 셈이다. 그는 더 나아가 개솔송나무와 같은 개별 나무 종들의 산림 병해를 연구하는 동시에, 거대한 한 그루가 결국 끝나면 비로소 작은 나무들이 시작하는 자연의 순환에 주목한다. 나무 꼭대기에 오르며 시작한 여행은 자연스럽게 고사와 성장이 펼쳐지는 숲의 바닥에 닿는다.
책에서 저자가 오르는 나무들이 바뀌는 내내, 그의 수목 등반과 수관층 연구의 방식은 변함이 없다. 오전부터 동료들과 숲 깊은 곳에 들어가 거목에 로프를 걸어 수관까지 등반하고 시료를 채취해서 하강하면, 다시 도시로 돌아와 연구실에서 시료를 분석하며 다음 등반을 준비한다. 이처럼 나무를 오르내리는 저자의 이색적인 활동과 연구자로서의 진지한 일상과 원칙이 조화를 이룬 덕분에, 독자들도 저자의 시선처럼 나무라는 생물을 점점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 이 책이 생태 에세이로서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땅부터 하늘 높이 솟은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도 나무가 얼마나 입체적인 생물인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대만 치란산의 대만편백나무로 시작한 책을 20년 만에 다시 만난 같은 나무로 끝내며 “비로소 다시 새로운 산”을 만났다고 말한 저자처럼,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우리가 만날 나무는 앞으로 점점 더 새로워질 것이다.
새로 그려야 하는 한국의 미래 회로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중국 첨단 지능화의 허와 실,
그리고 한국의 대응 전략
권석준 지음│사이언스북스
692쪽│2만 9500원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책이 이렇게 두껍다고?” 처음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을 보고서 든 생각이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이나 이 분야에서도 예외가 없는 중국의 성장세를 생각하면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검증된 전문가의 단행본은 무척 시의적절하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대체 얼마나 깊이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인지 조금 궁금했다.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공정 기술의 전문가인 권석준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의 신간이다. 권 교수는 한국, 중국, 일본을 축으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재편 방향을 분석한, 전작 ‘반도체 삼국지’로 반도체 전략가로서도 이름을 알렸다. 그런 까닭에 책의 분량에 대한 궁금증은 읽기 시작하니 이내 정리가 됐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란 항상 미국과 한국의 기술적·정치적·군사적·경제적 쟁점이란 사실이 치밀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전개되는 덕분이다.
권석준 교수는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에서 중국 특유의 산업 전략과 미국의 역학 관계가 결합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역동적인 흐름을 한국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 책은 중국 반도체가 2000~2010년대에 성장한 배경에는 정부의 경쟁적 투자, 기술·정치·군사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정책 같은 중국의 산업 전략과 함께, 생산 기지이자 투자처로서 중국의 산업적·경제적 가능성에 주목한 미국 기업과 금융의 적극적 투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현재 중국의 반도체와 AI 역량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서 중국의 잠재력을 간과한 과거 미국의 오판, 이에 근거했던 미국의 직간접적 기술 이전 및 공급망 심화의 역할을 깊이 살펴본다.
이제 반도체는 한 기업이나 산업은 물론, 한 국가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 미국, 중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긴밀한 역할 분담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들, 이제는 그 성과들이 국가들 간의 긴장감·불안정성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현재의 상황이 반도체와 AI의 본질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런 까닭에 한국과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모색하려면 중국의 현 좌표가 왜 중요하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가장 정확히 짚어주는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은 중국과 반도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연의 경이를 포착하기 위한 아름다운 노력
그림이 과학 연구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과정과 ‘과학 그림’이 그려지는지는 과정을 소개하는 책이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최초의 생태학자로 인정받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데이터 사이언스에 한 획을 그은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 화석 속에서 고생물의 생태를 밝혀낸 메리 애닝 등 그림과 과학의 만남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또한 남계우의 나비, 신사임당의 정원까지 과학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한 한국의 역사도 만날 수 있다.
그림 그리는 과학자 | 이동주 지음│위즈덤하우스│304쪽│2만 2000원
‘과학혁명의 구조’가 남긴 마지막 질문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 발전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으면서 과학철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쿤은 자신의 후기 철학을 담은 저서를 미처 완성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쿤이 생의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공약불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보여주는 초고와, 1980년대부터 그가 사망한 1996년까지의 과학철학적 궤적을 담은 논고들이 수록돼 있다. 이 책은 쿤의 완성하지 못한 과학철학의 결론을 추론할 수 있는 핵심적 단서다.
토머스 쿤의 마지막 원고 | 토머스 쿤 지음│보야나 믈라데노비치 엮음│홍성욱 옮김│까치│436쪽│2만 5000원
복잡한 세계의 따뜻한 양자역학
영국이 사랑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30년 넘게 양자역학을 탐구해 온 물리학자 짐 알칼릴리의 양자역학 입문서다. 양자의 의미와 철학부터 미래 기술의 혁신까지 양자역학의 모든 것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특히 이 책은 양자역학의 기원, 수많은 해석과 철학, 양자기술의 막강한 위력 등을 아울러서 독자 스스로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돕는 점이 돋보인다. 복잡한 양자이론을 쉽게 설명하면서도 그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저자의 절묘한 균형도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양자 책 | 짐 알칼릴리 지음│김성훈 옮김│윌북│376쪽│2만 2000원
화학 물질로 인간 의식을 재구성한다면?
화학의 매력을 알리는 데 진심인 장홍제 광운대 화학과 교수가 이번엔 가장 예민하면서도 흥미로운 주제, 향정신성 물질을 다룬다. 장 교수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감정은 정교한 연쇄 화학 반응의 결과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이란 시스템을 지배하는 강력한 매개체, 아편·모르핀·코카인·펜타닐 등 향정신성 물질을 주인공 삼아서 전혀 다른 화학 서사를 전개한다. 인간을 생화학적 시스템으로 보면 ‘인간 의식의 재설계’가 가능하다는 이 책의 주장은 과학을 향한 지적 쾌감을 자극한다.
예민한 날엔 화학을 삼킨다 | 장홍제 지음│휴머니스트│300쪽│2만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