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터 예술까지, 인공지능(AI)이 사회 모든 분야에 스며드는 시대다. 기상예측 분야도 다르지 않다. 최근 몇 년간 기상 전문가들의 관심을 받는 분야는 ‘기상예측 AI’다. 과연 AI는 기존의 기상예측 모델을 넘어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나아가 기후위기의 시대, 인류를 지키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아 세계기상기구와 기상청이 개최한 ‘인공지능 초단기예측 시범사업(AINPP)’ 워크숍에 참가했다.
“기상예측 인공지능(AI)은 저희 엔비디아(NVIDIA)의 중점 과제입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챙기는 전담팀이 있을 정도죠.”
9월 2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국립기상과학원 강당에서 만난 제프 아디 엔비디아 수석 엔지니어는 자신이 세계기상기구(WMO) ‘인공지능 초단기예측 시범 사업(AINPP)’ 워크숍에 참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4일부터 26일까지 2박 3일간 열린 워크숍에는 한국, 미국, 중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 세계 기상청 관계자는 물론 엔비디아, 구글 등의 빅테크 기업,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 등 공공, 민간, 학계를 망라한 70여 명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각자 개발한 AI 초단기 기상예측 모델의 성과를 발표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기상예측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기상예측 AI의 강점 ‘가볍고 빠르다’
기존의 예보 시스템은 ‘수치예보모델(NWP·Numerical Weather Prediction)’을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수치예보모델은 대기 상태와 운동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풀어 미래의 날씨를 예측한다. 기온·일조량·수증기량·지형 등 날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많은 데다, 지구 대기를 수많은 격자로 나눈 후 각각을 따로 계산해야 해 막대한 연산이 든다. 그동안 기상예측에 슈퍼컴퓨터가 쓰여온 이유다.
AI를 활용한 예보모델은 수치예보모델과 작동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레이더나 위성 영상 등을 통해 모인 수많은 날씨 데이터를 학습한 후 앞으로의 날씨를 예측한다. 연구자들은 기상예측 AI가 언어모델(LLM) 등의 일반 AI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존 가너 미국 국립과학재단 국립대기연구센터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점”을 꼽았다. “보통의 AI는 직사각형 평면의 이미지를 처리하지만, 기상예측 AI는 직사각형 이미지를 둥근 지구에 맞게 조율해야 합니다. 도전적이지만 흥미로운 과제죠.”
다른 문제는 기상 데이터가 방대하다는 점이다. 수평은 물론 고도에 따른 수직 데이터까지 고려하면 기상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인도 아대륙의 몬순 예측 작업을 진행한 구글의 쉬레이야 아그라왈 엔지니어는 “인도의 몬순 강수량 측정 데이터만 10페타바이트(PB·1015 바이트)”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개발이 쉽지 않음에도 많은 국가와 기업이 기상예측 AI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는 AI 예보모델이 기존 수치예보모델과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AI 예보모델은 학습시키고 만드는 데 많은 연산 자원을 소모한다. 그렇지만 일단 훈련이 끝나면 만들어진 모델을 실행시키는 것은 간단한 컴퓨터로도 충분하고, 빠른 속도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치예보모델은 한 번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때마다 오랜 시간 막대한 연산을 해야 한다. 반대로 AI 예보모델은 한번 만들어지면 노트북에서도 구동이 가능할 정도다. 그 결과 극한 강우 등 신속한 예측이 필요한 기상 상황에서 더욱 빠르게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한국형 AI 예보, 민간과 공공 모두가 주목
기상예측 AI는 2023년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구글 딥마인드를 비롯한 여러 연구팀에서 기계학습 기반의 기상예측 AI 연구를 발표하면서부터다. doi: 10.1126/science.adi2336, doi: 10.48550/arXiv.2304.02948 최근에는 기존 수치예보모델의 성능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평가받으며, 기상예측 선진국은 수치모델과 더불어 다양한 AI 예보모델을 이미 기상예보에 활용 중이다. 대표적인 예로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가 기존 수치예보모델의 결과물을 학습한 ‘AIFS’를 실시간 운영 중이다. 엔비디아의 ‘포캐스트넷(FourCastNet), 구글의 ‘그래프캐스트(GraphCast)’ 등 빅테크 기업들이 공개한 다양한 AI 예보모델도 있다.
한국 기상청은 초단기 예보모델 ‘나우알파(NowAlpha)’를 개발해 운용 중이다. 국립기상과학원은 2019년 인공지능예보연구팀을 신설해 한국의 기후 특성에 맞는 AI 예보모델 연구에 착수했고 2024년 7월 나우알파를 공개했다. 나우알파는 레이더 영상 이미지를 학습해 앞으로 6시간까지의 초단기 강수 예측을 진행한다. 특히 강수 영역을 예측하는 데 강세를 보인다. 나우알파 개발과 분석에 관여한 이현경 국립기상과학원 인공지능기상연구과 연구사는 “2024년, 나우알파가 3~4시간 후의 예측에서 기존 수치예보모델보다 강수를 더 효과적으로 예측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2~4시간 사이의 초단기 예보에 나우알파를 활용 중입니다. 기존 수치예보모델과 AI 예보모델이 서로를 보완하도록 활용하고 있죠.” 다양한 모델을 사용해 예보의 정확도를 전체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기상청이 만든 기상예측 AI ‘나우알파’
기상예측 AI가 기후정의 실현시킬까
“저희는 기상 예측에 소셜미디어도 활용합니다. 다양한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이나 영상을 분석해 어느 지역에서 토네이도가 생겼는지 확인하죠.”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나요? 데이터가 정제되지 않았을 텐데요.”
24일 오후, 국립기상과학원 강당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연구자들의 열띤 발표와 토론이 진행 중이었다. 극한 기상현상이 점점 늘어나는 기후위기 시대, 빠른 예보를 통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AI 예보모델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민간과 공공을 포함한 수많은 곳에서 AI 예보모델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AINPP 워크숍은 세계 연구자들이 AI 예보모델의 성과를 발표하고 비교 검증하는 자리다. 더불어 비교 검증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도 이뤄진다. 이를 통해 더 좋은 AI 예보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 보니 상호 비교 속에 ‘실력’이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이 가진 자부심과 경쟁심, 서로 얽히는 이해관계가 워크숍 중간중간 펼쳐지는 뜨거운 논쟁 사이에서 느껴졌다.
워크숍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한국 기상청의 AI 예보모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기상청과 꾸준히 협업을 진행 중인 엔비디아의 아디 수석 엔지니어는 “한국 기상청이 가진 AI 기술의 높은 수준과 정교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모델 분야에서도 한국 기상청은 세계 정상급”이라 밝혔다.
“당연히 가장 잘하고 싶죠.” 나우알파 개발에 참여한 이혜숙 국립기상과학원 인공지능기상연구과장은 말했다. 더 좋은 기상예측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선할 점이 많다. 기상청과 함께 기상예측 AI 고도화 연구를 하고 있는 유재훈 KAIST 전산학부 연구원은 “앞으로는 기상 레이더 이미지는 물론 기온, 습도 등의 기상 데이터를 조합해 더 높은 정확도의 모델을 만들 예정”이라 밝혔다.
AINPP 워크숍을 개최하고 전세계 관계자를 한 자리에 모은 WMO의 또 다른 목표는 추후 개발될 AI 예보모델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워크숍이 미래세대를 위한 공공선과 기후정의를 실천할 주춧돌인 셈이다.
유키 혼다 WMO 통합 처리 및 예측 시스템과 과장은 “기상과 기후 예측 기술이 낙후된 국가가 있는데, 이런 격차를 줄이는 것이 WMO의 목표”라며, “AI 예보모델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 만든 AI 예보모델을 개발도상국에서 활용할 수 있다면 극한 기상 상황에서의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국은 이 기후정의에 어느 정도로 참여할 수 있을까. “아직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AI 예보모델 기술을 선도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여러 국가가 한국이 개발 중인 AI 예보모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더 좋은 모델을 만들어 한국 기술력으로 더 많은 국가의 기상예측을 돕고자 합니다.” 이 과장은 기상예측 AI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력과 GPU만 충분히 있으면 한국도 2~3년 안에 세계 최고 성능의 AI 모델, 만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