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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생일 축하해, 티라노사우루스

파충류의 속사정 6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부지역에는 백악기 후기 때 형성된 지층인 헬크릭층이 넓게 분포한다. 이 지층은 범람원 또는 삼각지에서 형성된 점토암과 이암, 그리고 사암으로 이뤄져 있는데, 66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만큼 공룡시대 막바지에 살던 동물의 흔적이 많이 묻혀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갑옷공룡 안킬로사우루스와 거대 오리주둥이공룡 에드몬토사우루스, 머리가 단단한 돔머리공룡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이 층에서 발견되며, 이 밖에도 수십 종의 소형 파충류와 포유류가 발견된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온 가장 유명한 화석생물은 바로 공룡의 왕, 티라노사우루스다.

 

거대한 타조공룡? 몸이 가벼운 뿔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이 처음 학계에 보고된 것은 1890년이다. 하지만 발견된 부위는 고작 골반 일부와 발바닥뿐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연구한 미국 예일대의 오스니엘 마시는 이 화석의 주인이 무시무시한 육식공룡인 줄 몰랐다. 그는 이 발바닥 화석이 오르니토미무스라고 불리는 타조공룡(타조처럼 생긴 공룡)의 발바닥과 비슷하기 때문에, 화석의 주인공도 거대한 타조공룡이라고 추정했다.

마시가 골반과 발바닥 화석을 연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이 발견됐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언덕에서 화석사냥을 하던 고생물학자 에드워드 코프는 풍화를 받아 훼손된 티라노사우루스의 목뼈 두 조각을 발견했다. 발견된 목뼈는 마치 벌집처럼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하지만 코프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더구나 이 화석지에서는 뿔공룡의 뼈 파편도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는 이 화석의 주인이 가벼운 척추 뼈를 가진 거대한 뿔공룡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존재가 제대로 확인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였다. 당시 미국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였던 바넘 브라운은 미국 몬태나주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온전한 골격화석을 최초로 발견했다. 발견한 뼈들은 곧바로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브라운의 상사였던 박물관장 헨리 오스번이 이 화석들을 연구했다.

몸길이가 12m 정도인 티라노사우루스는 당시까지 발견된 육식공룡 중에서 가장 몸집이 컸다. 브라운과 오스번은 이 공룡을 이용해 박물관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계획을 세웠다. 두 사람은 이 거대한 육식공룡의 학명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오랜 고심 끝에 고대 그리스어로 ‘폭군 도마뱀’이란 뜻의 티라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을 지었다. 발음하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쉬운,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학명이었다. 티라노사우루스를 소개한 논문은 1905년 10월 5일에 출간됐고, 두 사람의 예상대로 박물관은 티라노사우루스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굼뜬 괴수에서 재빠른 경보선수로

1947년, 미국 예일대 피보디박물관은 화가 루돌프 잘링거가 5년에 걸쳐 완성한 벽화를 공개했다. 길이가 34m인 ‘파충류의 시대(Age of Reptiles)’라는 제목의 이 벽화는 지질시대를 따라 생물과 환경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었다. 여기에는 브론토사우루스와 스테고사우루스 같이 중생대를 대표하는 공룡들도 등장했지만, 벽화 속 공룡 중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티라노사우루스였다.

하지만 잘링거의 티라노사우루스는 오늘날 과학자들에 의해 복원된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볼록한 배에 두툼한 뒷다리, 무엇보다도 몸을 수직으로 세우고 꼬리를 끌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시의 티라노사우루스가 이런 모습으로 복원된 이유는 바로 파충류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악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은 파충류라 하면 반드시 굼뜨고 꼬리를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에 복원된 공룡들은 모두 몸을 수직으로 세우고 꼬리를 질질 끌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러한 굼뜬 모습은 1970년대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공룡이 오늘날의 포유류처럼 활동적인 항온동물일 것이라는 가설이 이때 등장했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꼬리를 들고 등을 수평으로 눕힌 날렵한 자세로 변해갔다. 당시 존스홉킨스대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바커는 다른 육식공룡에 비해 기다란 티라노사우루스의 다리에 주목했다. 그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이 긴 뒷다리를 이용해 시속 70km의 속도로 빠르게 달릴 수 있었을 거라고 봤고, 이런 아이디어는 영화 ‘쥬라기 공원(1993)’에 그대로 반영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뛰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몸무게가 최대 9t까지 나갔는데, 이 정도의 몸무게를 겨우 두 다리로 견디며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재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뛰지는 못하고 빠른 속도로 걸어 다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베를린자연사박물관 하인리히 말리손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티라노사우루스는 긴 뒷다리를 이용해 1초에 약 8m를 걸어서 이동했다. 빠르게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티라노사우루스는 뛸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뇌 속까지 사냥꾼

요즘은 환자를 위해 개발된 CT(컴퓨터단층촬영) 기법을 이용해 공룡의 뇌를 복원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물론 공룡의 뇌는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하지만 뇌가 들어 있던 뇌실(braincase)은 남는다. 이 뇌실의 내부(공동)는 안에 들어 있던 뇌의 모양과 거의 일치하는데, 공룡의 뇌를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들은 보존된 뇌실을 CT로 찍어서 연부조직인 뇌의 모양을 복원한다. 이렇게 3차원으로 복원된 뇌의 모양을 보면 공룡의 감각이 어땠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2009년, CT단층촬영기법으로 복원된 티라노사우루스의 뇌가 공개됐다. 그 결과 티라노사우루스에게는 엄청난 크기의 후신경구(뇌에서 후각을 담당하는 부위)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크기 비율로 따져 보면 1km 상공에서 냄새로 먹이를 찾는 칠면조독수리와 비슷했기 때문에, 티라노사우루스 또한 뛰어난 후각을 가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늑대와 같은 오늘날의 활동적인 맹수들은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멀리 있는 먹잇감의 위치를 추적한다.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대의 로렌스 위트머 박사는 CT촬영을 통해 얻어낸 티라노사우루스 머리뼈 속 내이(內耳,몸의 직선 운동 및 회전성 운동을 감지하는 평형기관과 소리를 지각하는 청각기관) 구조를 해석했다. 그 결과 티라노사우루스는 저음파(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동물이었음이 밝혀졌다.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초식공룡들은 저음파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했는데, 티라노사우루스는 이들의 대화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 있게끔 진화한 것이다.



무자비한 포식자인가 따뜻한 로맨티스트인가?

무시무시한 포식자인 티라노사우루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큰 이빨이다. 이빨 끝에서 뿌리까지의 길이는 약 30cm에 이른다. 그 어떤 육식공룡의 이빨보다도 거대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빨뿌리가 전체 길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위 사진➋). 보통 육식공룡의 이빨에서는 뿌리가 전체 길이의 절반을 차지한다. 게다가 전형적인 육식공룡의 납작한 이빨과는 달리,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은 상당히 두껍다.

이렇게 다른 이빨 구조를 가지게 된 이유는 이들의 먹이를 먹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얇은 이빨을 이용해 고기만 뜯어먹는 다른 육식공룡들과 달리 티라노사우루스는 튼튼하고 두꺼운 이빨을 이용해 먹잇감의 뼈까지 씹어 먹었다. 미국 몬태나 주에서는 오리주둥이공룡의 꼬리뼈, 뿔공룡의 골반, 그리고 갑옷공룡의 머리뼈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씹어서 생긴 상처들이 발견됐다. 초식공룡의 뼛조각들이 들어있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배설물 화석도 발견됐다.

이빨 외에도 티라노사우루스에게는 거대한 턱과 발톱이 있다. 딱 한 가지 작은 게 있다면 귀여울 정도로 작은 팔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팔은 사람의 팔과 비슷한 크기인데, 몸집에 비해 너무나도 짧아서 박수도 치지 못할 정도다. 게다가 이 짧은 팔은, 달린 손가락도 두 개뿐이라 쓸모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한동안 과학자들은 이 앞다리가 퇴화 중인 흔적기관이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의 사라 버치 박사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티라노사우루스는 이 작은 팔을 이용해 끌어안는 동작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배우자를 끌어안을 때 사용했다는 말이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시대 최고의 포식자이면서 동시에 이성의 마음을 녹일 줄 아는 로맨티스트였는지도 모른다.
 

201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대중을 위한 고생물학 자문단’ 독립연구원
  • 에디터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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