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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어낸 서호주 아웃백

태고의 지구를 간직한 땅

호주인 대부분은 해안지역에 살고 있다. 국토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내륙지방이 매우 건조해 인간이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탓이다. 호주인들은 이 지역을, 해변을 바라보며 오지를 등지고 산다는 뜻으로 ‘아웃백(Outback)’이라 부른다. 호주 아웃백은 수십억 년에 걸쳐 지속적인 풍화작용을 겪으면서 가장 거칠고 척박한 땅으로 변모했다. 지난 1억 년 동안에는 화산활동이나 빙하의 영향 없이 자연적인 침식만 계속됐기 때문에 대륙 전체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서호주 내 국립공원지역 대부분이 기암괴석과 협곡으로 이뤄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침식작용은 해안지형까지 변화시켜 원시 생명체인 박테리아의 번식을 촉진시켰다. 서호주 북쪽의 해안에 가면 35억 년 전 지구 최초의 생명체로 알려진 박테리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서호주 아웃백으로 진정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바람이 드러낸 석회암 돌기둥

인도양을 항해하던 네덜란드 선원들은 서호주 남붕국립공원의 피너클 사막의 석회암 돌기둥을 보고 폐허가 된 고대도시로 착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까이 가서 봐도 마치 서호주 북부지방의 흰 개미집처럼 보인다. 이 돌기둥의 실체는 풍화작용으로 땅속 깊이 숨어 있던 석회암 기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돌기둥의 외형은 높이가 3~5m 정도로 뾰족한 봉우리 형태다. 돌기둥을 이루는 석회암은 오랜 기간 얕은 바다 속에서 침전된 탄산칼슘이라는 석회질 성분이 50% 이상 포함된 퇴적암이다.

피너클 사막은 한낮에 비해 온도가 낮아 쾌적한 이른 아침과 해질 무렵에 둘러보는 게 가장 좋다. 호주에 사는 야생동물들도 이때 주로 활동한다. 새벽 여명이 밝아올 무렵이면 분홍빛 코카투 앵무새 떼가 사막의 정적을 깨운다. 이 앵무새는 피너클 사막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새로 ‘목쉰 소리를 내는 새’라는 뜻으로 ‘사막의 코카투’로 불린다. 코카투 앵무새처럼 호주에만 사는 에뮤는 타조과(科) 새다. 호기심이 많아 사람이 먹을 것을 손에 들고 손짓을 하면 천연덕스럽게 다가온다. 전통적으로 호주 원주민들이 에뮤를 사냥할 때도 이런 방법으로 유인한다.

피너클 사막 부근에 있는 캥거루 포인트에는 해안 근처 숲에 사는 캥거루 무리가 자주 출몰한다. 캥거루도 주로 아침과 저녁에 활동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가야 직접 볼 수 있다. 캥거루는 뒷걸음을 치지 못해 야간에 자동차 불빛을 보면 피하지 못하고 부딪치는 사고를 자주 당한다. 서호주의 독특함은 식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호주의 봄인 9~11월이 되면 피너클 사막은 호주에만 자생하는 야생 꽃들로 화려하게 물든다. 서호주 남서부 지방에 사는 6000여 종의 식물 가운데 75%에 해당하는 식물이 호주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태고의 신비를 가득 품은 서호주는 여전히 수천 종의 동식물군이 고립된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원시 지구의 생명체 흔적, 스트로마톨라이트

35억 년 전에 살았던 생명체는 어떤 모습일까. 서호주 북쪽의 작은 해안가인 샤크 만에 가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세계자연유산이라고 표시된 안내판을 보고 화려한 자태를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수 있다. 안내판 뒤로 보이는 해안가엔 버섯 모양을 한 검은 돌 무리만 가득하다. 수심이 낮은 해안가에 몰려 있어 멀리서 보면 만을 건너기 위한 징검다리처럼 보인다. 이 바위들이 지구상에 출현한 최초의 단세포 생명체인 시아노박테리아가 기생하는 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다. 과학자들도 호주 내륙이나 캐나다 버제스 지역의 퇴적암층에서 발견된 시아노박테리아의 흔적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1961년에 서호주의 작은 해안가에서 살아 있는 시아노박테리아를 발견한 건 고생물학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이해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35억 년 전 시아노박테리아의 광합성 활동은 이산화탄소와 질소로 구성된 원시 대기를 산소가 풍부한 대기로 전환시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복잡한 고등 생명체가 등장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아노박테리아는 초기 생명체에 대한 고생물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대우 받는다. 샤크 만은 바닷물이 유입되는 입구가 좁아서 먼 바다보다 바닷물의 염도가 2배 이상 높고 물고기나 해조류를 찾아보기 힘들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천적이 없는 독특한 환경 덕분에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수십억 년 동안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티는 그의 저서인 ‘지구의 역사’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여행”이라고 비유했다.

호랑이 줄무늬의 사암 산맥, 벙글벙글

푸눌룰루국립공원 안에 있는 벙글벙글은 호주 내에서도 지형이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서호주에서 가볼 만한 지역 대부분이 그렇듯이 벙글벙글도 4륜구동 자동차로 가거나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고속도로까지의 거리가 50km 정도밖에 안 되지만, 1980년대 초까지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오지다. 이 지역은 3억 6000만 년 전만 해도 바닷가였다. 바닷물이 들어차 모래와 자갈의 퇴적물이 쌓이고 사암과 역암 층이 형성돼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벙글벙글의 암석층을 유심히 보면 빨갛고 검은 줄무늬를 두르고 있다. 이는 샤크 만에서 봤던 시아노박테리아와 관련이 있다. 빨간 부분은 사암 속에 포함된 철 성분이 대기 중의 산소와 만나 산화된 흔적이고, 검은 부분은 시아노박테리아가 붙어 화석화된 것이다. 결국 시아노박테리아로부터 시작된 산소혁명으로 형성된 지형이다.

벙글벙글은 웃는 모습을 표현한 우리말 같지만 이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인 번들번들(bundle bundle)을 잘못 발음해서 벙글벙글(bungle bungle)로 불렀다고 한다. 벙글벙글로 들어가는 입구는 세 갈래 길로 나뉜다. 가장 빨리 다녀올 수 있는 대성당 협곡은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다. 협곡을 향해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로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협곡 위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과 협곡 아래 숨어 있는 물웅덩이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호주 원주민의 영토인 이곳은 곳곳에 암각화가 그려져 있다. 운이 좋으면 캥거루과(科) 유대류인 왈라비를 만나기도 한다. 벙글벙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호주 지형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운석 크레이터가 있다. 폭이 835m, 깊이가 50m인 울페크릭 크레이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운석충돌구로, 이 지역을 횡단하던 비행사들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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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문경수 기자 l 사진 서호주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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