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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꿈의 롤러코스터

스릴과 안전, 두 마리 토끼 잡은 '괴물'

출발  소리 없는 공포의 비밀

오금이 저리다. 무릎을 굽힐 때 접히는 뒤쪽 부분, 오금. 이곳으로 다리와 발에 분포하는 혈관과 신경이 모두 통과한다. 승강장을 떠나 꼭대기로 올라가는 순간. 앞으로 찾아올 공포감이 온몸에서 발끝까지 오금을 통해 전해진다.

‘지금이라도 내릴까.’ 하지만 이 ‘괴물’은 주저할 틈마저 주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소리도 없이 하늘로 치닫는다. 잠깐 옆을 돌아보면 싱그런 봄 햇살에 한가로이 펼쳐진 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1초간의 한가로움은 앞으로 펼쳐질 3분간의 스릴과 공포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다. 56m 꼭대기에 이르러 고개를 다시 바로 하면, 오른쪽으로 꺾어지며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레일이 보인다. 움찔하는 순간 열차는 바닥으로 한없이 돌진한다.

나무로 만든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는 처음 꼭대기를 올라갈 때를 빼 놓고는 열차가 움직이는 동안 동력을 쓰지 않는다. 대부분 롤러코스터가 그렇듯 출발할 때 가장 높은 곳에서의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원리를 이용한다.

따라서 롤러코스터가 낙하할 때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가능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롤러코스터 마니아들은 열차가 최고점을 향해 ‘때깍때깍’ 소리를 내며 천천히 올라가는 순간이야말로 롤러코스터의 진정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때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T-익스프레스는 공포를 주는 소리가 없을 뿐 아니라 다른 롤러코스터보다 2배나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예상보다 빨리 올라가는 열차에 마음의 준비를 못한 탑승객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이런 ‘소리 없는 공포의 비밀’은 바로 케이블리프트 장치에 있다.

체인을 사용하는 기존 롤러코스터는 열차가 뒤로 밀리는 일을 막기 위해 올라가는 동안 톱니가 계속해서 하나씩 걸리게 돼 있다. ‘때깍때깍’ 하는 소리는 바로 이 톱니가 걸리는 소리다. 이런 체인리프트는 속도가 느리고 소음이 난다는 단점이 있다.

T-익스프레스는 체인 대신 쇠줄을 사용해 속도를 2배 이상 높였다. 그리고 소음을 줄이기 위해 열차가 역방향으로 움직일 때만 톱니가 물려 브레이크 역할을 하게 했다. 진행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톱니가 위로 접혀 있지만 역방향으로 움직이면 톱니가 자동으로 내려와 ‘철컥’하고 열차가 뒤로 밀리는 일을 막는다.
 

대부분 롤러코스터가 열차에 동력을 전달하는데 체인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T-익스프레스는 쇠줄을 사용한다. 그래서 소음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도도 2배빠르다.


낙하 고공낙하가 만드는 아찔한 4.5G

“으아아악~”

눈앞에서 레일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몸은 이미 중력에 내 맡겨져 추락하고 있다. 높이가 56m인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통나무를 붙잡고 떨어지는 느낌이 이쯤 될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괴성을 내뿜는 일 뿐이다.

세계 최대라는 77˚낙하각도는 거의 수직이라고 느껴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다가 다시 위로 솟구치려는데 위에서 짓누르는 힘에 온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다.

다시 하늘로 솟구치면서 낙타 등에 있는 혹처럼 위로 볼록 솟은 마루를 통과할 때 엉덩이가 위로 붕 뜬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무중력상태인 ‘에어타임’이다. ‘어어~’ 하지만 괴물은 순식간에 몸을 다시 아래로 낚아챈다.

우든코스터는 낙하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의 기본을 충실하게 구현한 1세대 롤러코스터다. 철로 만든 2세대 ‘스틸코스터’가 레일을 비꼬거나 뒤집고 휘어 공포를 ‘가공’했다면, 우든코스터는 상승과 하강의 ‘순박한’ 스릴을 제공한다. 하지만 스틸코스터의 스릴만 못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보통 놀이기구의 스릴은 속도와 탑승자가 느끼는 중력가속도 값으로 따진다. T-익스프레스의 최고 속도와 중력가속도는 얼마나 될까.

열차 6량의 무게가 6.7톤. 여기에 정원인 36명이 모두 탔다면 열차의 무게는 약 9톤이다. 이 열차가 56m 높이에서 갖는 위치에너지는 약 493만J (9000kg×9.8m/s²×56m)이다. 낙하했을 때 최저점에서의 속도를 계산하면 이론상 시속 약 120km가 나온다. 실제 속도는 떨어질 때 마찰로 소모되는 에너지 때문에 시속 104km지만 주변 나무 구조물 때문에 몸으로 느껴지는 속도는 시속 200km이상이다.

열차가 최저점을 찍고 다시 위로 솟구칠 때는 계속 아래로 떨어지려는 관성 때문에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이때 느껴지는 중력가속도는 4.5G(지구 중력의 4.5배). 우주인이 우주선을 탔을 때 느끼는 중력가속도와 비슷한 수치다.

열차가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질 때는 윗방향으로 힘을 받는다. 첫 번째 마루에서 느껴지는 가속도는 약 -1.2G다. 가속도를 받을 때는 몸속 피가 한쪽으로 몰리는데, 다리 방향보다 머리 방향으로 몰릴 때가 더 위험하다. 머리 방향에 있는 안구나 뇌가 압력에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윗방향으로 가해지는 가속도의 수치를 높게 만들지 않는다.
 

T-익스프레스를 건설하는 데 사용된 나무는 총 670톤, 이 나무를 연결하는 데 들어간 볼트는 5만 개에 이른다. 연인원 1만 명이 약 1년 동안 건설했다.


귀환 안전 책임지는 트러스 구조

왼쪽 오른쪽 8자형 커브를 몇 번 돌고, 낙타 등처럼 생긴 마루와 골을 연속해서 12번 오르내렸다. 3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탑승한 동안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서서히 탑승장으로 돌아올 때쯤 돼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목소리가 쉰 것을 보면 3분 동안 소리를 엄청나게 질러 댔음이 분명하다. 손아귀의 힘이 풀린 걸 보면 안전 바를 으스러지도록 붙잡았나 보다.

“이 놈의 괴물! 내 다시는 안탄다!”

승강장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긴장감이 풀리면서 뭔지 모를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 괴물을 다시 찾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극도의 스릴에 몸을 내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안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이쑤시개 같은 얇은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것 같은 T-익스프레스는 얼마나 안전할까.

T-익스프레스는 나무가 지그재그를 그리며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는 트러스 구조 위에 레일을 깔았다. 트러스 구조는 열차가 달릴 때 주는 충격을 흡수해 고르게 분산시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볼트와 너트로만 나무를 연결해 삐걱거릴 위험이 없고, 안전 점검이나 유지 보수도 훨씬 쉽다.

뼈대를 이루는 나무들도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보통 나무가 아니다. 우든코스터를 만드는 데는 보통 전나무나 소나무 같은 침엽수를 많이 쓴다.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조직이 치밀하고 촘촘해서 강도가 좋기 때문이다.

T-익스프레스는 레일을 받치는 부분에 핀란드 산 전나무로 이뤄진 얇은 목재 9겹을 고온고압으로 압축 성형해 만든 ‘라미네이트 우드’를 사용했다. 라미네이트 우드는 강도가 보통 목재의 7배에 이르는 특수 목재다. 강도가 거의 콘크리트 수준이다.

여기에 장마철에 나무가 물을 흡수해 물러지거나 썩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한 화학처리를 했다. 먼저 나무를 고압에서 쪄내 나무속에 있는 물기를 모두 빼낸 뒤 압력을 가해 구리, 크롬, 붕소를 섞어 만든 약품을 나무에 흡수시켰다.

구리는 나무의 물이 있던 자리에 대신 들어가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한다. 물이 들락거리면 나무의 조직이 탄성을 잃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붕소는 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 같은 해충을 막는다. 그리고 크롬은 이 두 물질을 코팅해 나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

이 밖에 열차의 속도와 경로가 정상범위를 벗어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센서가 레일 곳곳에 설치돼 있으며, 이상이 생겼을 경우 열차를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T-익스프레스가 앞으로도 재미와 안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길 기대한다.
 

T-익스프레스는 레일을 받치는 부분에‘라미네이트 우드’를 사용했다. 라미네이트 우드의 강도는 보통 목재의 7배에 이른다.


T-익스프레스 안전 책임지는 임관웅 대리

기계와 전기 설비를 담당하는 임관웅 대리는 탑승객의 안전에 매우 민감하다. T-익스프레스의 안전장치 대부분을 직접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T-익스프레스 열차가 잠깐 멈춘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놀란 적이 있었죠. 탑승객들이 많이 불안해했지만, 사실 안전장치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생긴 일이었어요.”

레일 주변에는 수많은 센서가 있는데 운영 초기라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작동을 멈추게 설정해 놨다는 설명이다.
당시 탑승객 가운데 누군가 흘린 소지품이 센서를 건드렸던 걸로 추정하고 있다.

임 대리는 “T-익스프레스는 열차끼리 일부러 충돌시키거나 후진하게 하는 일이 기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만큼 안전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T-익스프레스를 타고 즐거워 할 때 가장 보람있었다는 그는 이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의 코스터를 직접 만드는 꿈이다.

기쁨을 선물하는 건축 엔지니어 박명구 과장

“T-익스프레스는 세계적인 놀이기구 제작사인 스위스의 인타민(Intamin)이 설계를 맡았어요. 그런데 그들이 보내온 복잡한 설계도를 보니 눈앞이 깜깜하더군요. 일단 생소했거든요. 용어부터 공부했습니다.”

토목건축을 담당한 박명구 과장은 T-익스프레스를 건설하기 시작한 2007년 봄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거대한 놀이기구를 설계하거나 건설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설계도와 재단된 목재를 갖고 그대로 조립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도면 전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공사 초기에는 기둥을 계속 세우고 연결하면서도 ‘이게 정말 튼튼할까’ 걱정했단다. 하지만 수개월 동안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공사를 하다 보니 전체 도면에서 볼트 하나 위치까지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박 과장은 이제 코스터 달인이 됐다.

“우든코스터를 짓는 일은 가장 의미있는 건축 가운데 하나일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건축물이니까요.”

상상력으로 무장한 파크플래너 김환태 과장

“파크플래너라니, 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이죠? 새로운 놀이기구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총괄해요. 엉뚱한 상상력은 저의 가장 강력한 무기죠.”

T-익스프레스라는 ‘괴물’을 용인 에버랜드에 키우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내고 이를 현실로 만든 이가 바로 파크플래너 김환태 과장이다. 2000년 이후 세계적으로 스틸코스터보다 우든코스터가 더 많이 지어지고 있다는 흐름을 재빨리 파악한 결과였다. 자연친화적이면서 탑승객에게 극도의 스릴을 줄 수 있는 세계적인 롤러코스터를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현실이 됐다.

개장한 날 첫 탑승객을 태운 열차가 승강장으로 돌아왔을 때 탑승객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김 과장은 “그동안 세계의 수많은 롤러코스터를 돌아봤지만 탑승객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는 매일 마지막 열차를 탑승객과 함께 타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느 탑승객과 마찬가지로 박수를 치며 승강장으로 돌아오는 것은 물론이다.

200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고승범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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