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 발을 잘못 내디뎌 발목을 삐끗하는 순간 ‘앗’하는 외마디 비명이 새어나온다. 절뚝거리며 걸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욱신욱신 발목에 전해오는 통증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침 치료를 통해 통증을 다스린다.
삐끗한 발목엔 침이 최고
흔히 발목을 ‘삐었다’ ‘접질렸다’고 표현하는 발목 염좌는 실제로 발목이 골절된 것이 아니라 발목이 비틀려서 인대가 약간 늘어났거나 인대의 일부분이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발목 복사뼈의 바깥쪽에는 인대가 3개 있는데, 이 중 앞목말비골인대가 가장 약해서 발바닥이 안쪽을 향한 상태에서 무리한 힘이 가해지면 자주 다친다.
발목을 삐어서 절뚝거리다가도 침을 맞은 직후에는 발목의 통증이 사라져 걷는데 큰 불편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발목을 심하게 삐었을 때는 깁스를 하거나 필요에 따라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증상이 가벼울 때는 침 치료만으로도 통증을 충분히 완화시킬 수 있다.
이때 침을 놓는 부위는 비단 발목만이 아니다. 아픈 발목에 직접 침을 놓기도 하지만 치료 방법에 따라서 발목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손이나 팔, 정강이 부위에 침을 놓기도 한다.
부위에 따라 침을 놓는 방법은 약간씩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발목의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보면 침의 진통 작용이 직접 치료하는 부위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를 통해서도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와 두 번째 손바닥뼈가 갈라지는 부위에 있는 ‘합곡’(合谷)과 귀 부위에서 귀속둘레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부위에 있는 ‘신문’(神門) 등의 경혈에 침을 놓으면 전신의 통증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발목을 삐었을 때도 이 경혈들을 뾰족한 것으로 세게 자극하면 통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침을 놓아서 진통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침의 자극이 인체의 통증 역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치료하고자 하는 경혈에 침을 찔렀을 때 침을 가만히 두는 것보다는 손으로 좌우로 돌리거나 튕기는 등 자극을 주는 편이 효과가 훨씬 좋다.
요즘에는 손으로 주던 자극을 저주파 전기 자극으로 많이 대체하고 있다. 이것이 전침요법(Electro-Acupuncture)이다.
전침요법은 선택하는 경혈에 따라 일정한 부위 또는 전신의 통증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전침요법을 사용하면 지속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고, 자극량을 조절할 수도 있어 환자가 치료받을 때 느끼는 통증이 적고 치료 효과도 뛰어나다.
이 때문에 전침요법은 일반적인 통증 치료 외에도 내과질환과 침술 마취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침요법은 시작한지 15분가량 뒤에 진통 효과가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혈에 전기 자극 주면 마취돼
전침요법과 같이 침의 진통 작용을 이용한 대표적인 경우가 수술에서 침을 사용해 마취하는 것이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중국의 침술 마취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서 침술 마취로 수술을 받은 사람은 상하이 지역에서 5만명, 중국 전역에서는 40만명에 달했다. 침술 마취를 받을 수 있는 연령도 유아에서부터 81세 노인까지 거의 모든 연령이었으며, 수술 종류는 250종 이상, 성공률은 90% 이상이었다. 이런 사실은 침술 마취에 대한 세계 의료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침술 마취가 소개되면서 세계의 의학자들은 우선 그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침술 마취가 암시효과에 의한 최면술의 일종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월과 멜작이 발표한 ‘관문조절설’(과학동아 2006년 4월호 참고)에 의해 침술이 통증을 없앨 수 있다는 주장도 알려져 있었다.
현재 침의 진통작용에 대해서는 관문조절설 이외에도 β-엔돌핀과 엔케팔린 등 신경내분비물질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발표돼 침술 마취가 단지 최면술이나 암시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
침술 마취의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수술할 때 절개하는 부위의 좌우 피부 부위에 침을 놓고 여기에 100헤르츠(Hz) 이상의 전류를 흐르게 해 국소 부위의 통증을 줄인다. 이어서 수술할 때 절개하는 부위와 같은 척수신경이 지배하는 척수분절 부위에서 진통과 관련된 경혈에 침을 놓고 마찬가지로 전기 자극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수술 부위와 관련 없이 전신 진통 작용이 있는 경혈을 자극한다. 앞에서 얘기한 ‘합곡’이 대표적인 경혈이다. 다만 이때는 1~3Hz 정도로 진동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 자극을 준다. 이렇게 저주파 자극을 주면 엔돌핀을 비롯한 각종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촉진돼 전신의 통증 역치가 상승한다.
침술 마취에서 충분한 마취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득기’(得氣)와 수술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침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득기란 침을 맞을 때 경혈 부위를 중심으로 느껴지는 시큰하거나 무직하며 저릿한 감각을 얻는 것으로 경락감전(PSC, Propagated Sensation along the Channel)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어 합곡에 침을 놓아 전신의 통증 역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 부위에 득기, 즉 PSC 현상이 느껴질 때까지 정확히 침을 찔러 자극을 줘야 한다. 그리고 득기 후에도 손으로 침을 계속 자극하거나 전침 요법으로 지속적인 자극을 줘야 한다.
붓기 적고 회복 속도 빨라
침술 마취는 특히 갑상선 수술에서 성공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갑상선 전문 외과의사인 이노우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973년부터 5년 동안 600차례의 갑상선 수술에 합곡과 손목 앞쪽 부위에 있는 내관(內關)의 경혈을 이용해 침술 마취를 사용한 결과 100%에 가까운 성공률을 보였고, 마취보조제를 필요로 한 경우는 불과 0.4%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침술 마취를 이용한 수술은 문제점도 몇 가지 있다. 개인의 차이에 따라 침술 마취가 불완전할 수 있고, 개복수술을 할 때 근육의 이완이 충분하지 않아 내장 근육의 수축으로 인한 통증이 생길 수 있으며, 복근이 긴장돼 수술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침술 마취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침술 마취가 세계 의학계에 기여한 점은 침의 진통 작용을 확실히 인식시켰으며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 통각의 기전을 밝히는데도 일부 공헌했다.
중국에서 침술 마취를 개발한 가장 큰 동기는 당시 중국의 의료 상황 때문이었다. 비싼 기구나 약제를 사용할 수 없었던 중국에서는 침술 마취처럼 경제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현재 침술 마취의 가장 큰 장점은 수술 뒤 경과가 좋다는 것이다. 침술 마취는 양의에서 사용하는 국소 마취에 비해 수술 뒤 통증과 부종의 정도가 가볍고, 수술 부위의 치유 속도가 빠르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코나 쌍꺼풀 수술과 같은 성형외과 수술에서 국소 마취와 함께 침술 마취를 병행한 결과 국소 마취만 사용한 경우에 비해 수술 뒤 부종과 통증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생활약탕기
발목을 삐었을 때는 먼저 골절여부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다면 재빨리 얼음찜질을 하고 발목을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에도 걸을 때는 별다른 이상이 없지만 발목의 통증이 계속된다면 침을 놓는 경혈을 손가락으로 눌러 마사지를 해주면 좋다.
우선 발목의 복사뼈 바로 앞과 아래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서 가장 아픈 부분, 즉 ‘아시혈’에 자극을 준다.
또 인기(引氣), 즉 통증을 느끼게 하는 기운을 반대쪽으로 옮긴다는 개념을 이용해 발목 반대쪽에서 그에 상응하는 부위를 눌러서 똑같은 자극을 준다.
무엇보다도 발목을 삐었을 때는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되도록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침을 맞은 뒤 통증이 없다고 발목에 무리를 주면 회복이 더딜 수 있다.
통증 역치
인체가 자극을 받으면 수용체가 반응해 어느 수준까지는 통증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 상태까지를 통증 역치라고 말한다. 이 상태 이상의 자극이 오거나 축적되면 세포에 자극이 전달돼 통증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