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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당하면 두뇌는 육체적 고통 느낀다

연인과의 이별, 데이트 거절도 마찬가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이른바 ‘왕따’ 학생이 있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소속된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의 두뇌는 마치 무릎을 찌었을 때나 정강이가 차였을 때와 똑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10월 10일자에 발표됐다.

마음의 상처는 실제 상처다


따돌리는 행동은 두뇌 측면에서 실제 육체적인 폭력과 똑같을 수 있다.


미국 LA소재 캘리포니아대(UCLA)의 나오미 아이젠버거 박사팀은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따돌림을 당했을 때 두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조사했다. 실험대상자들은 두뇌 영상이 촬영되기 위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fMRI)에 들어가야 했다. 이 좁은 공간 안에서 따돌림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연구팀은 비디오게임을 선택했다.

비디오게임은 3명이 서로 볼을 패스하는 게임이었다. 실험대상자에게는 다른 2명과 게임을 즐길 때 두뇌 영상을 촬영한다는 정보만 주었다. 그러나 실제 비디오게임은 컴퓨터로 조정이 돼서 실험대상자에게 공을 점점 건네지 않았고, 결국 게임에서 완전히 제외된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들었다. 실험 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공을 건네지 않아 제대로 게임을 하지 못했다”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비디오게임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두뇌 영상을 분석한 결과 두뇌는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는데 관련된 대뇌의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실제 육체적인 고통을 느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부분은 게임에서 더 많이 소외될수록, 즉 따돌리는 강도가 커질수록 여기에 비례해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

따돌림을 당하면 전방대상피질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데 이어 시간차를 두고 전두엽 대뇌피질(prefrontal cortex)도 활동적으로 변했다. 이 부분은 육체적인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는 대뇌 부위다. 즉 대뇌는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방어 메커니즘을 가동하는 것이다.

아이젠버거 박사는 “연인과 헤어지거나,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하거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인 따돌림이 이와 같은 육체적 고통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에 속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우리의 대뇌가 이런 육체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흔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가슴을 칼로 째는 듯한 큰 아픔을 준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은 신체의 고통이란 마음이 느끼는 슬픔의 9가지 형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말들이 결코 허언은 아닌 셈이다.

만성적인 고통 호소하는 경우 많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fMRI)로 촬영한 결과. 따돌림을 당하 면 두뇌의 전방대상피질(왼쪽)과 전두엽 대뇌피질이 활동적으로 변 2 했다.


사회집단에서 개인을 따돌리는 왕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점점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국무총리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지난 8월 2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 10명중 1명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 31.5%의 학생이 집단 따돌림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42.5%의 학생은 집단 따돌림을 받는데는 당하는 아이에게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왕따를 당하는 학생 중에는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고경봉 교수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은 소외감, 배신감, 공포,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면서 “이처럼 극단적인 감정을 정신적으로 억제하는 과정에서 육체에는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왕따 학생 가운데는 두통, 소화장애 등 만성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자라나는 청소년기에는 학교를 중심으로 또래집단과의 친구관계 형성은 두뇌의 발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래집단은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정서적 기반이 되며 활동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다 보면 제대로 된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된다. 실제 왕따 학생의 우울증 비율은 일반 학생들보다 5배 정도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지난 10월 15일 언론에 소개된 미국 어린이범죄예방단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은 6명 가운데 1명꼴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심각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경우 삶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왕따는 청소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편 왕따 피해학생뿐 아니라 가해학생도 행동이나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되며, 이로 인해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왕따를 주도한 가해학생이 24살 이전에 범죄에 가담할 확률은 무려 60%나 됐다.

왕따를 하는 학생은 따돌림 당하는 학생이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당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왕따의 원인이 당하는 학생의 성격적 결함에 있다고 하더라도 따돌림 자체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두뇌의 관점에서 보면 왕따를 하는 행동은 칼로 찌르는 행동과 똑같은 의미일 수도 있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겉으로 멀쩡해 보이더라도 두뇌는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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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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