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휴대폰과 같은 각종 정보통신기기에는 핵심부품인 칩이 들어있다. 그 칩의 기본단위는 트랜지스터인데, 이것의 가공기술이 정보통신기기의 크기와 성능을 좌우한다. 때문에 트랜지스터를 좋은 품질을 가지면서 작게 만들고자 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왔다.
실제로 컴퓨터의 성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는 1970년대 초반 한개의 칩에 2천여개의 트랜지스터가 내재돼 있었다. 그런데 현재 쓰이는 펜티엄4에는 5천5백만개의 트랜지스터가 있다. 집적도 면에서는 1mm2 당 1백91개에서 37만6천7백12개로 약 2천배나 늘어났다.
99.9995% 먼지 제거하는 울파필터
앞으로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 등 컴퓨터의 다양한 칩이 한개로 집적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현재 트랜지스터 가공기술은 마이크로(1μm=${10}^{-6}$m) 수준에서 나노(1nm=${10}^{-9}$m)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다. 마이크로와 나노의 경계는 0.1μm, 즉 1백nm로, 머리카락 굵기의 1천분의 1배 정도다. 현재 트랜지스터를 구성하는 회로의 선폭이 1백nm보다 작아지는 추세다.
실제로 세계적인 칩제조사인 인텔은 이미 2001년 70nm 선폭의 트랜지스터를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nm 선폭의 트랜지스터를 가공하는 기술을 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머리카락 굵기보다 수천배나 작게 물질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가공장비만이 필요한 것일까. 장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실험실의 환경이다. 나노팹에는 먼지, 압력, 온도, 습도, 공기 흐름, 진동, 빛까지도 철저하게 통제되는 클린룸이 요구된다. 이런 환경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모든 조건이 나노수준으로 물질을 가공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십nm라는 미세한 선폭을 만드는 상황에서 아주 작은 먼지는 칩 불량의 주요원인이 된다. 따라서 나노공정 클린룸에는 먼지가 유입되지 않도록 최고의 공기청정 시스템이 쓰인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필터다. 클린룸의 천장에는 1백20-1백70nm의 먼지를 99.9995% 제거하는 최고 성능의 먼지제거필터인 울파필터가 설치돼 있고 특수장비에는 대기중 화학성분을 제거하는 화학 필터를 병용해 사용하고 있다.
클린룸의 청정도를 고순도로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서 발생하는 먼지, 세균 등의 오염이 포함돼 있는 내부공기를 지속적으로 외부로 밀어내고 대신 외부의 공기를 필터를 통해 내부로 유입시켜야 한다. 따라서 내부 공기가 외부로 유출되고, 외부 공기가 내부로 유입되는 청정실 내의 공기 흐름은 클린룸의 청정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유입된 먼지로 인한 불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노공정 클린룸에서는 공기 흐름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 공기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흐르도록 한다. 이는 가장 짧은 거리만을 지나가게 함으로써 공기 중에 포함된 먼지가 최소한의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다.
빛이 통과하지 않는 유리창
한편 클린룸 내는 항상 일정한 온도인 23±1.0℃를 유지해야 한다. 나노수준으로 가공하는 장비와 가공공정에 사용되는 화학약품, 그리고 가공공정 과정에 있는 결과물들은 온도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빛을 이용해 5nm급의 선을 그려야 하는 광 리소그래피 장비일 경우에는 온도변화로 렌즈의 부피가 변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그렇게 된다면 그 공정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또한 광 리소그래피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의 경우 온도변화로 그 특성에 변화가 생겨 공정에 치명적인 에러를 줄 수 있다.
아울러 클린룸은 45±10%로 일정한 습도가 유지돼야 한다. 습도가 높으면 장비 및 시설의 결로 현상으로 가공공정에 영향을 주고, 습도가 낮으면 정전기를 일으켜 오염원 흡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먼지나 공기와 더불어 나노공정에서 중요한 제어요소는 소리와 진동이다. 나노단위의 미세공정을 진행하기 위해 구축되는 장비들은 아주 미세한 진동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문에 진동은 연구자가 원하는 실험의 방해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 굵기보다 1만배 이상 가는 선을 그리는데, 그 이상의 진동이 있다면 그 선의 길이와 방향은 잘못될 것이다.
따라서 나노연구환경의 클린룸 건축구조물에는 엄격한 진동 기준들이 필요하다. 진동은 45dB 이하의 낮은 노이즈 레벨이 필요하다. 45dB 정도면 실내에서 말을 주고받거나 TV를 볼 때의 소음 수준으로 일반적인 제조 장비와 시설이 밀집돼 있는 클린룸 내에서 이 기준에 부합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클린룸의 콘크리트 바닥은 1초에 2번 진동할 경우(2Hz) 진동폭이 3백nm를 넘어설 수 없다. 또는 주파수가 1백Hz 이상인 경우에는 진동폭이 5백nm를 초과할 수 없다. 이는 클린룸에서 발생하는 주파수가 진동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을 통제해 장비시설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음 역시 진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때문에 소음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나노공정에서 빛은 나노제품을 형상화는데 사용되는 도구로서 필요한 빛을 원하는 장소에 비치게 하는 것은 나노기술구현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유리벽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은 나노공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나노팹에 유리를 장착할 경우 광투과성이 0%에 가까워야 한다.
자유로운 이동 위한 전체적인 청정
현재 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나노종합팹은 이와 같은 나노기술 클린룸의 기준에 적합하도록 구축된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이 안전하게 나노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좀더 높은 기준들을 만족하는 연구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나노종합팹에는 2백여개의 각종 장비가 몇개의 방에 나눠져 구축된다. 이 장비들은 크기와 종류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고 언제든지 새로 개발되는 장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노종합팹은 장비의 배치와 이동이 매우 유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노종합팹의 클린룸은 특정한 장비가 운영되는 지역만 청정도가 유지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유지되는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런데 나노공정마다 다른 수준의 청정도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수십nm 수준으로 회로를 그리는 나노전자소자의 경우는 매우 높은 청정도를 필요로 하지만 나노바이오 관련 연구는 이보다는 낮은 수준이면 된다.
따라서 클린룸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클린룸의 청정수준으로 구획화할 계획이다. 연구자들은 클린룸 내에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 유연한 연구환경을 누릴 수 있다.
이와 함께 나노전자소자에서는 전자빔을 이용해 5nm급 회로를 구현해낼 전망이다. 이 공정기술은 진동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노종합팹 센터는 5nm급 이하에서도 오류 없이 나노공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엄격한 진동기준으로 만족시킬 계획이다.
한편 나노종합팹은 나노공정에 치명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오염원인 중금속이나 플루오르(F), 염소(Cl), 이산화질소(NO₂)와 같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분자들을 특별히 제거하는 장치가 설치된다. 또한 전기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정전기 방지 장치도 구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