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부터 국내에서 중년여성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있다. 눈가의 잔주름을 펴준다는 레티놀이 바로 그것. 마치 의약적으로 효능이 있는 것처럼 인상을 풍겨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팔렸다. 한 화장품회사에서는 발매 5개월만에 약 3백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레티놀은 비타민 A의 화학명이다. 피부가 딱딱해지는 것을 막는 기능이 있어 주름살을 막는 화장품에 이용된 것이다. 하지만 밤눈이 어두워지는 야맹증 치료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비타민은 흔히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우리 몸에 필요한 유기물질이다. 그러나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같은 유기물질과 달리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 또 비타민은 외부에서 섭취해야 한다는 점에서 호르몬과 다르다. 하지만 호르몬으로 만들어지는 동물도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비타민 C를 섭취해야 하지만 토끼는 몸에서 합성할 수 있다.
20세기 초까지 동물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물 등 5가지라고 생각돼 왔다. 그런데 생화학을 창시한 영국의 의학자 프레드릭 홉킨스(1861-1947)는 1906년 부가적인 식품요소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홉킨스가 비타민을 발견하기 전인 1883년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에이크만(1858-1930)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이 각기(脚氣)를 앓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각기는 다리가 붓고 손발에 감각이상이 오는 병으로 갑자기 발병해 구토를 일으키다가 심하면 1-3일만에 죽음으로 몰아간다. 에이크만은 그 병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현미를 먹는 사람은 걸리지 않고, 백미를 먹는 사람들이 주로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후에 각기는 비타민 B1이 모자라 일어난 병으로 밝혀졌다. 백미에는 비타민 B1이 없었던 것이다.
홉킨스와 에이크만이 발견한 새로운 물질은 1911년 폴란드 화학자 카시미르 풍크(1884-1967)가 비타미네(vitamine)라고 이름지었다. 이 물질 안에 들어있는 아민(amine)과 라틴어로 생명을 뜻하는 ‘vita’라는 말을 합성한 것이다. 그러나 비타민 중에는 아민이 없는 것도 발견돼 1920년부터 ‘e’를 빼고 비타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초기 비타민의 이름은 발견 순서에 A, B, C로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화학명을 붙였다. 비타민 A는 레티놀, B1은 티아민, C는 아스코르브산, D는 칼시페롤, E는 토코페롤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비타민은 10여종.
비타민이 중요한 까닭은 부족해도 안되고 많아도 안되는 물질이기 때문. 예를 들어 비티만 C가 부족하면 괴혈병이 걸린다. 이것은 오랫동안 배를 타는 선원들에게 잘 걸리는 병으로, 잇몸에서 피가 나고 심한 악취를 풍기며 빈혈과 무기력증을 동반한다.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배를 타고 오랫동안 항해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괴혈병의 원인이 비타민 C 결핍증이라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서 밝혀졌다. 1928년 센트-되르디(1893-1961)에 의해 비타민 C가 분리되기 전까지 선원들은 민간처방으로 오렌지와 같은 과일을 먹었다.
비타민 A의 경우 부족하면 야맹증에, 심하면 안구건조증에 걸린다. 그렇다고 많이 먹게 되면 피부가 노랗게 변하고 구역질이 나며 머리가 빠진다. 영아들은 성장이 느려지고 신경이 과민해질 수 있다. 구루병(척추나 뼈가 굽는 병)을 막아주는 비타민 D도 많이 복용하면 중독돼 식욕부진, 구역질을 일으킨다. 이런 사람의 손톱이나 눈속을 보면 노란색 침착물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비타민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많은 노벨상을 배출했다. 1928년 비타민 D의 구조를 밝힌 독일의 빈다우스(1876-1959)가 화학상을, 1929년 비타민 발견의 공로로 홉킨스와 에이크만이 생리의학상을, 1937년 비타민 C의 구조결정에 관한 연구로 영국의 하워스(1883-1950)와 스위스의 카러(1889-1971)가 화학상을, 같은 해 비타민 C를 발견한 헝가리 출신의 미국 생화학자 센트-되르디가 생리의학상을, 1938년 비타민 B2를 합성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리하르트 쿤(1900-1967)이 화학상을, 1943년 덴마크의 담(1895-1976)과 미국의 도이지(1893-1986)가 비타민 K의 발견으로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노벨상 수상자 중 비타민을 연구했던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