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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 먹고 자라는 거대에너지 태풍

열대의 뜨거움 분산시키는 자연의 몸부림

태풍이 제일 많이 찾아오는 8월이다. 생성원리에서 효과까지 태풍의 생리를 이모저모 살펴보자.

1. 왜 여름에 많이 발생할까 - 한곳에 뭉친 열에너지 흩뜨린다
 

1994년 7월 태풍이 남해안 가까이 다가온 모습.


해마다 여름이면 열대 지방에 막대한 열에너지가 축적된다. 지구는 한 곳에 모인 이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신속히 고위도 지방으로 분산시킨다. 이 에너지가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며 움직이는 현상을 태풍이라고 부른다. 즉 태풍은 지구가 열에너지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자연스런 몸부림이다.

태풍의 기상학적 정의는 북태평양 남서해상(북위 8-15도)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같은 열대성 저기압이라도 발생하는 장소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인도양과 오스트레일리아 부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경우를 사이클론, 그리고 동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경우를 허리케인이라 부른다. (그림1). 이들 중 태풍이 차지하는 비율은 38%다.

우리나라는 저기압 중심 부근에서 바람의 속도가 17m/초 이상이 될 때 태풍이라 부른다.

또 정확하게 구분짓기는 어렵지만 강도에 따라 태풍을 소형, 중형, 대형, 초대형으로 구분한다. 17m/초 이하일 경우 그저 열대성 저기압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기상기구는 33m/초 이상을 태풍이라 부르고, 이보다 약한 경우를 열대성 저기압,열대성 폭풍(17-24m/초), 강한 열대성 폭풍(25-32m/초) 등으로 구분한다. 태풍의 크기는 작은 것이라도 지름이 2백km에 이르며, 큰 것은 무려 1천5백km나 된다.
 

(그림1) 태풍, 사이클론, 허리케인의 발생 위치


토네이도(tornado)
태풍과 달리 육지에서 발생하는 회오리로 미국 중부와 동부에서 자주 일어난다. 여름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고 돌풍이 불면서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이 토네이도 현상의 일종이다. 이는 여러 날에 걸쳐 햇빛에 달궈진 땅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주위로 분산되는 과정이다. 옆으로 퍼지는 세력보다 위로 솟구치는 힘이 강하며, 미국에서는 웬만한 자동차들을 사정없이 감아올릴 정도로 위력이 강하다.
 

(그림2) 지구 위도별 바람의 명칭-태풍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무역풍이 만나는 지역(노란색)에서 발생한다.


2.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이유 - 자전 때문에 바람이 휜다


태풍이 생기는 곳은 북반구의 북동무역풍과 남반구의 남동무역풍이 1년 내내 만나는 지역이다. (그림2).

이때 엇갈리면서 합쳐진 바람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위로 솟구친다. 저기압이 형성된 것이다. 이 저기압은 적절한 조건만 갖추면 태풍으로 돌변하기 시작한다. 그 조건이란 무엇일까.

태풍이 만들어지려면 충분한 열에너지와 수분, 그리고 회전력이 갖춰져야 한다. 열에너지와 수분은 태양에너지가 오랫동안 바다를 가열함으로써 형성된다. 적도를 내리쬐는 태양이 바다물을 증발시켜 수증기를 만들고 그 수증기가 물방울로 변할 때 열(잠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려면 해수면 온도가 27℃ 이상이 돼야 한다.

태풍의 회전력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향력(coriolis force) 때문에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로켓을 쏘아 올린다고 생각해보자. 로켓은 수직 방향으로 이동하지만 지구가 반시계방향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땅에서 보기에는 로켓이 오른쪽으로 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자전으로 인해 물체에 작용하는 가상의 힘을 전향력이라 부르는데, 이 때문에 운동하는 물체가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치우치는 모습으로 관찰된다.

태풍도 마찬가지다. 태풍은 저기압이기 때문에 이상적으로는 바람이 중심부를 향해 일직선으로 분다. 그러나 전향력 때문에 부는 방향이 계속 오른쪽으로 휘게 돼 결국 반시계 방향의 나선 모양이 형성된다(그림3).
 

(그림3) 태풍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이유^다른 조건이 없다면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태풍 중심)으로 분다(A). 그러나 전향력 때문에 북반구에서 바람은 오른쪽으로 힘을 받는다(B). 이때 바람은 다시 저기압으로 진행하려 하고(C), 연이어 오른쪽으로 힘을 받는다(D).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바람은 반시계 방향으로 중심을 향해 진행한다.


3. 태풍은 어떻게 생을 마감하나 - 바람 타고 북상, 육지가 종착역

태풍의 수명은 1주일에서 1개월 정도다. 태풍은 북동무역풍(북위 0-30도)과 편서풍(북위 30-60도)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쪽으로 치우쳤다가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북상한다. 태풍은 이 기간에 자신의 세력을 점점 키우다 중위도에 위치한 육지에 이르면 생을 마감한다.

무역풍들이 만나 생긴 작은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수증기를 많이 포함한 열대의 뜨거운 공기가 흘러들면 중심 부근에서 강한 상승 기류가 생긴다. 이 수증기가 대기 상층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면 주변에 많은 구름이 만들어져 큰 비가 쏟아진다. 이때 많은 양의 열(잠열)이 주변으로 방출돼 상승 기류는 더욱 강해지고 비는 더욱 많이 쏟아진다. 이런 상황이 몇번 진행되면서 태풍은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태풍이 북쪽의 중위도 육지에 도착하면 열에너지와 충분한 습기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고 육지와의 마찰 때문에 위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태풍이 해안가에서 육지로 2백40km까지 들어오면 그 세력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림4) 위험반원, 가항반원 -태풍의 오른쪽은 편서풍과 방향이 일치해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위험한 지역(위험 반원)이 되고, 왼쪽은 바람이 맞부딪쳐 배가 항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이 약해진다(가항반원).
 

4. 태풍에도 안전지대가 있다는데… - 바다에서 만나면 왼쪽으로 피한다

태풍도 약한 곳이 있다. 태풍의 눈과 왼쪽 반원 부위다.

소용돌이치며 상승하는 바람의 한가운데에는 상대적으로 공기 밀도가 적고 위력이 약한 ‘공기 기둥’ 이 생긴다. 소용돌이가 바깥으로 뻗치려는 힘(원심력) 때문에 중심 부위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이때 주변에서 상승하는 공기의 일부가 이 기둥으로 빨려들어와 밑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중심에서 상승하던 기류가 무력하게 되고 구름이 만들어질 기회는 줄어든다. 그래서 태풍의 중심에는 바람이 적고 맑게 개인 날씨가 유지되는데, 이곳을 태풍의 눈(eye of typhoon)이라고 부른다. 지름은 보통 30-50km 정도지만 큰 것은 1백km나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태풍이 움직이면서 눈에 해당하는 지역에 곧 강렬한 바람이 불어들 것이기 때문에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 없다.

한편 태풍은 무역풍과 편서풍을 타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진행하기 때문에, 북동무역풍이 불 때 태풍의 오른쪽은 무역풍과 마주쳐 세력이 약해진다. 반대로 왼쪽은 무역풍의 방향과 일치해 세력이 더 강해진다.

중위도 지역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이곳에서 부는 편서풍 때문에 태풍의 오른쪽은 강해지고 왼쪽은 약해진다. 따라서 배가 항해할 때 멀리서 태풍이 다가오면 배는 태풍의 왼쪽으로 이동해야 강한 폭풍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태풍의 왼쪽 부분을 가항(可航) 반원이라고 부르고, 오른쪽 부분을 위험 반원이라고 한다.(그림4).

이 때문에 태풍 중심이 우리나라 오른쪽으로 지나갈 때 왼쪽으로 진행되는 경우보다 피해를 적게 일으킨다.

 

태풍 정보, 주의보, 경보

현재 기상청은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민에게 태풍 정보의 주의보, 그리고 경보를 발표하고 있다. 태풍 중심이 북위20도, 동경140도 안쪽까지 접근하면 기상청은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태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이후 태풍이 점점 가깝게 다가와 우리나라에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면 주의보와 경보가 잇따라 발표된다. 기상청 관계자들은 주의보 단계에서부터 비상 근무에 들어간다. 일반인들은 정보가 발표될 때마다 131번 기상전화, TV, 라디오, 신문 등의 방송을 청취하면서 태풍에 대한 정보를 계속 입수할 수 있다. 한편 주의보가 발령되면 정부나 관련 단체에서 알려주는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표1)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 수(1904-1995)


5. 우리나라에 얼마나 자주 오나 - 1년에 평균 3개, 8월에 최다 발생

태풍은 지난 45년(1951-1995) 동안 매년 평균 27개가 발생했다. 시기적으로는 7-10월에 가장 많이 생겼다. 이 중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가 위치한 북위 32-40도, 동경 120-138도 지역에서 1904년부터 1995년까지 영향을 미친 크고 작은 태풍의 수는 모두 2백82개다(표 1). 1년에 평균 3개의 태풍이 다가온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태풍은 8월, 7월, 그리고 9월 순으로 많이 온다. 이 기간에 해당하는 태풍 수는 전체의 67%에 해당한다. 간혹 태풍이 1년 중 한번도 오지 않았던 때도 있다(1920년, 1947년, 1988년).

태풍이 우리나라에 오는 경로도 매달 다르다. 7월과 8월의 태풍은 대만 부근과 서해를 거쳐 우리나라를 가로지르며 이동한다. 이에 비해 9월의 태풍은 남쪽 해상에서 일본 남부와 동쪽 해상을 지나면서 이동한다(그림5).


태풍은 중위도에 이르면 일본 남동쪽에 자리잡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한다. 즉 고기압의 중심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진행하는 것이다.

만일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돼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미치면 저기압인 태풍은 이를 피해 중국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져 일본 부근까지만 미치면 태풍이 우리나라로 ‘무리 없이’ 찾아온다.
 

(그림5) 월별 태풍의 경로


6. 남녀 이름 번갈아 붙이는 이유 - 여성 이름만 사용하면 명백한 남녀차별

7월 현재 북상하고 있는 태풍 이름은 ‘이브’(EVE)다. 이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고 누가 붙이는 것일까.

태풍 이름은 괌섬에 위치한 미국 태풍합동경보센터가 지정한 양식에 따라 붙여진다. 새로 태풍이 생길 때마다 (표 2)의 각 조에 있는 순서대로 이름을 붙인다.

각 조는 23개의 이름으로 구성되며,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남성과 여성 이름이 교대로 사용된다. 1978년 이전에는 여성 이름만 사용했지만 여성운동가들이 피해를 크게 입히는 태풍에 여성 이름만 붙이는 것은 남녀차별이라고 주장해 이듬해부터 남성 이름도 함께 사용하게 됐다.

각조의 마지막 이름 다음에는 다음조의 첫번째 이름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제1조의 ‘제인’ 다음에 발생한 태풍 이름은 ‘에이블’ 이다. 또 해를 넘기면 전년도에 이어 계속 순서대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1996년의 마지막 태풍이 2조의 ‘티나’라면 1997년의 제1호 태풍은 ‘빅터’다.

그러나 이 표의 이름들은 계속 바뀌어 왔다. 만일 한 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태풍이 있었다면 그 나라는 태풍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나중에 피해를 다시 입더라도 같은 이름의 태풍으로 피해받고 싶지 않아 태풍 이름을 변경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북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협의해 그 태풍 이름을 없애고 새로운 이름을 설정한다.
 

(표2) 태풍 이름(1996.1.1 시행)


7. 인간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 때 잘맞추면 가뭄에 단비 내리는 효자


보통 태풍의 에너지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0만배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에너지는 태풍 자체의 바람 순환을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에너지는 전체의 10% 정도다.

태풍이 해안에 접근하면 각종 시설물이나 선박이 쉽게 파괴된다. 특히 태풍이 접근하는 시간이 밀물 시간과 일치하면 해수면이 더욱 상승해 심한 해일이 일어난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도 피해가 큰 것은 마찬가지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나무가 뿌리채 뽑히고 농토가 침수되는 불행한 일들이 쉽게 발생해버린다.

지난 92년간(1904-1995) 태풍 때문에 사망하거나 실종한 사람은 9천2백37명이었고 재산피해액은 3조7천4백55억원이었다. 매년 1백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4백억원의 손해를 입은 셈이다. 1959년 9월 17일 우리나라 남동해안을 강타한 태풍 ‘사라’는 8백49명의 사망(실종)자, 2천5백33명의 부상자, 1천6백27억원의 재산 피해를 입힌 엄청난 재앙이었다.

하지만 태풍이 우리에게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태풍은 여름철 폭염이나 심한 가뭄이 있을 때 많은 비를 내리게 해 폭염을 사그러지게 하고 가뭄을 해결하는 효자 노릇을 한다.

1994년 여름 우리나라가 심한 폭서와 남부의 가뭄으로 고통받을 때 제13호 태풍 ‘더그’ 는 지그재그 형태로 이동, 남해에서 서해로 옮겨가면서 영남과 호남지방에 50-1백mm 이상의 비를 내렸다. 또 남해에서 오랫동안 계속되던 적조현상이 태풍이 몰고 온 강풍과 강우로 인해 말끔히 사라졌다. 덕분에 양식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많은 어민들은 한시름 놓게 됐다.


원자폭탄 10만배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태풍은 인간에게 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 정효상 예보관실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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