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환경문제 해결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에서의 모든 생활은 환경문제와 직간접의 연관을 맺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서부터 중요한 정책결정에 이르기까지 환경문제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행동할 수 없는 독일은 환경보호에 관한한 모범국가임을 자부한다.
올해 유행할 자동차 모델을 선보이는 자동차 전시회가 지난 3월 라이프치히에서 열렸다.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높은 독일인들이 이 전시회를 많이 참관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서는 최신형 모델 못지 않게 눈길을 끄는 일이 벌어져 신문 한 귀퉁이를 장식했다. 전시장 내부에 진열된 차량 사이에서 한 소년이 '자동차로 해마다 1만1천명이나 죽어갑니다'라고 쓰여진 검은 십자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고, 바깥에서는 몇명의 어린이들이 '1만1천'이라는 숫자만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있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한 잡지에서 실시한 어린이들의 환경의식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6살에서 14살에 이르는 독일 어린이들 중 40% 이상이 지구 생존 자체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환경파괴와 자연파괴로 인해 다가올 자신들의 시대에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느냐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전시장을 점검한 어린이들은 이러한 우려를 행동으로 옮겨놓은 것일 뿐이다.
철저한 경험과 실천중심의 환경교육
어른들 못지 않은 아이들의 환경문제의 자각과 실천 뒤에는 지난 70년부터 체계적으로 실시되어온 독일 환경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 교육자 노조와 독일 노조연합의 제창으로 시작된 독일의 환경교육은 현재 제도 교육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매체와 언론 등 사회교육 매체를 통해 평생 교육적인 차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교육은 교육, 환경, 노동, 보건사회부 등 정부기관과 대학을 중심으로 한 각종 연구기관들, 그리고 민간 환경운동단체들의 협조체제 아래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받으며 진행되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다소 늦게 출발하기는 하였지만 선두 국가들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경험과 실천 중심의 교육 원칙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환경과의 직접적인 접촉 경험을 통하여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환경문제에 직면하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다는 환경교육의 목표는 다음과 같은 원칙 위에 수행되고 있다.
1) 조그마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2) 교사는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니다. 직접 행동에 동참한다.
3) 부모도 학교의 환경교육에 동참해야 한다.
4) 환경프로그램은 교육을 받는 주체에 맡기며 각종 단체들과 공동으로 교육한다.
5) 학습에 소요된 재정지원에 대해서도 정확한 출원을 밝혀준다.
6) 각종 환경 관련 행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원칙들이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가는 몇몇 사례들을 통해 접할 수 있다.
3학년 한 학급의 환경 수업시간이다. 오늘은 모두들 선생님과 함께 그 지역에 마련되어 있는 생태계 교육 장소를 가기로 하였다.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또 걷기도 하면서 도착한 장소에서 어린이들이 처음 마주친 것은 빨간 사과가 달린 사과나무, 채 여물지 않는 배가 달린 배나무 등이었다. 옆으로는 시냇물이 흐른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사과도 따고, 과일 밑에 숨어있는 달팽이도 찾으며 온몸으로 자연을 경험한다.
모두 눈을 가리고 교육장소에 준비돼 있는 감각놀이함에 손을 집어넣고 그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아맞추는 놀이를 한다. 손으로 만져지는 흙의 느낌, 송진의 진득함을 통해서 자연의 감각을 체험해간다. 눈을 가린 채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을 다니며 냄새와 소리로 자연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자연이 교사가 된다. 선생님 역시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자연을 설명하며 같이 자연을 느낀다.
교육시간에 지역환경 문제 해결방안 모색
환경교육의 장은 이곳만이 아니다. 각 도시마다 마련되어 있는 자연 박물관이 곧 교실이 된다. 자연에 존재하는 식물 및 동물들의 이름을 익히고,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익히고, 환경을 변화시켜온 기술에 대해서도 배운다. 보고 듣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직접 환경을 조성하여 그 변화를 관찰하고 인간이 환경에 가하는 영향도 직접 관찰해 본다.
독일의 한 북쪽 주에서는 여러가지로 이런 수업방식을 실시하였다고 한다. 그 주에서는 학생들을 몇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학교 마당에 생물지대 만들기, 조그마한 연못과 습지 생물지대 만들기, 알루미늄 폐기처리장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실천해 보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프로그램은 전 학년에 참가한 '물의 오염'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다. 각 학년마다 하나씩 과제들이 설정된다.
즉 1학년 학생들은 '우리의 물'이라는 내용의 커다란 그림을 공동으로 그린다.
2학년은 '지구상에서 물이 사라져버린 하루'라는 가상의 상황을 묘사해본다.
3학년은 기름, 비누, 소금, 산으로 오염된 물을 주어서 겨자씨를 배양한다.
4학년은 이러한 물을 필터를 사용해서 거른후 이 물로 같은 씨를 배양한다.
5, 6학년은 학교나 집에서 우리가 어떻게 물을 절약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공동으로 조사한다.
7학년은 길거리에 나가 '물이 오염된 상태를 경험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정리한다. 가능하다면 정수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8학년은 담수조사에 나선다.
9, 10학년은 숲과 나무라는 주제하에 지하수, 침식, 기후 등이 나무에 미치는 영향을 같이 조사한다.
11~13학년은 비, 안개, 대지, 지하수에 스며든 독성물질의 문제점을 조사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들을 놓고 전체가 모여서 물을 둘러싼 환경문제에 대해 다같이 토론을 벌인 후, 환경의 날 행사에 참가하여 각 학교별로 발표를 하는 것이다.
환경교육 시간에는 또한 학생들에게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의 해결방안을 연구해보는 과제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서 항공노선 확대 계획이 발표되어 지역 주민들 사이에 소음피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고 하자. 그러면 학교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예상되는 질문들을 작성하게 하고, 그에 관한 답변도 작성해보게 한다. 즉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를 스스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효과적 교육 위해 정부가 중심과제 부여
경험과 실천 중심의 교육은 교과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처음 학교교육을 접하게 되는 독일 어린이가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난방 기구의 효율적인 사용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가와 집에서 기르는 식물들, 거리의 나무들은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배운다. 왜라는 질문에 앞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기를 배우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환경이란 무엇인가, 환경은 왜 보호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연과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배우게 된다. 이제는 자기와 직접적으로 접해 있는 집이라는 공간을 넘어 대도시 환경문제, 지구 환경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독일은 국민학교 5학년이 되면서 인문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학교로 나뉘는데, 교과서를 통한 교육내용 역시 달라지게 된다. 인문계 학교의 경우 물리, 화학, 생물 등의 자연과학 시간에 핵발전 및 독성성분 등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환경오염의 사회경제적인 배경을 접하게 된다. 한편 실업계에서는 일반적인 지식 외에 노동자로서 받게 될 환경오염에 의한 피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생산자로서 원자재의 효율적 사용이 왜 필요한가 등을 배우게 된다.
환경교육은 이러한 제도권 교육으로서 제한된 기간 내에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 교육의 장소는 일상생활 공간 전체여야 하며 그 기간은 삶의 기간 전체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대상에 있어서도 모든 직업, 직종을 망라한 일반인 전체여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직종을 포함한 집단에 대한 교육에서는 참가자들의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경험과 문제 해결에 대한 실천 위주의 교육방식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 독일 연방정부는 교육연구기관에 중심 과제로 부여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방식의 하나로 매체를 통한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헤센 지방에서는 지난 81년부터 자체 프로그램 '대체 에너지' '생태계' '삼림이 죽어간다' 등을 제작, 방영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기획물들의 내용 또한 보충 개선되었다고 한다.
비록 여건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독일 환경교육의 실천적이고 경험 위주의 교육원칙은 걸음마 단계의 우리 환경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