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가 문을 넘어가는 순간 페가수스 선장이 나타나 호통을 쳤습니다.
“무슨 그따위 실력으로 범인을 잡겠다는 건가?”
진짜 페가수스 선장이 아니라 환상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딱지는 도저히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겨우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잠시 후 해롱 호 일행이 모두 모였습니다. 다만드러 공장장도 자다 말고 뛰어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수상한 사람이 제어실 안으로 들어갔단 말이지?”
“네. 우주순찰대라고 하니까 놀라면서 도망쳤어요.”
“안에서는 여전히 답이 없습니다.”
다만드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여러모로 보아 저 안에 숨은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롱 선장이 폼을 잡으며 선언하듯이 말했습니다.
“네, 확실히 수상하지요. 그런데 어떻게 유령이 보이게 했을까요? 어떻게 자신은 괜찮을 수 있었을까요?”
해롱 선장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뿜뿜이 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딱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딱지야, 그 사람한테 뭐 특이한 점 없었어?”
루띠가 물었습니다.
“음…, 딱히요. 그냥 평범하게 작업복 입고…, 안전모 쓰고…. 아! 안전모!”
딱지는 안전모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이상하게 무거워 보였습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전자파로 사람의 뇌를 조작해서 유령이 보이게 만든 걸 거야. 공장장님, 안전모 좀 잠시 줘보세요.”
다만드러의 안전모를 살펴본 루띠가 말했습니다.
“이건 초경량 아나파 플라스틱으로 만든 안전모야. 이걸론 전자파를 막을 수 없지. 아마 그 사람이 쓴 건 금속으로 만들었을 거야.”
루띠는 재빨리 공사장에 굴러다니는 금속판으로 안전모를 보강했습니다.
“이걸 쓰면 유령이 보이지 않을 거야.”
루띠의 기술을 믿기는 했지만, 뿜뿜이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딱지는 심호흡을 한 뒤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 뒤를 나머지 일행이 따라왔습니다. 몇 걸음 디뎠는데도 유령, 아니 환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통방통했지요. 점점 용기가 났습니다.
“가요!”
해롱 호 일행은 제어실 문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해롱 선장이 문을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우주순찰대다! 순순히 문 열어!”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꾸가 없었습니다.
“안에서 잠근 모양이에요.”
다만드러가 말했습니다.
“내가 볼게요.”
루띠가 문을 살피더니 딱지를 향해 말했습니다.
“클립 나와라, 뚝딱!”
딱지의 코가 근질거리더니 둥근 금속 클립이 나왔습니다.
“아, 정말! 미리 말 좀 하고 하라고요!”
“너랑 다니면 도구함이 없어도 돼서 좋아. 히히.”
루띠가 클립을 길게 펴더니 잠금장치 틈에 밀어 넣었습니다. 곧 문이 열리고, 다들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 퍼졌습니다.
“끼야악! 모래 괴물!”
“꾸애액! 얼음 싫어!”
“크헉! 뭐 이런 달력 귀신이!”
용의자가 문 옆에 숨어서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의 안전모를 재빨리 벗겨 버렸던 것입니다. 모두가 기습에 당해서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용의자는 그 틈을 타 밖으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어딜!”
용의자가 뭔가에 걸려 풀썩 쓰러졌습니다. 바로 고딱지였습니다. 딱지가 들어가지 않고 맨 뒤에 남아있다가 도망치는 용의자의 발을 걸었던 겁니다. 용의자는 넘어지면서 안전모가 벗겨지자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으악! 흡혈귀다! 헉! 치킨 귀신에 달걀 귀신까지! 으앙, 고양이 귀신도! 저리 가! 알레르기 있단 말이야!”
딱지는 발버둥치는 용의자를 간신히 붙잡아 수갑을 채우고 안전모를 다시 씌웠습니다.
“이렇게 유령을 무서워하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쯧쯧….”
어지러운 상황이 정리되고 나자 용의자의 자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흑흑. 저는 무서브라라고 해요. 직업은 퇴마사입니다. 은하계를 돌아다니며 유령을 퇴치해주는 일을 해요. 그런데 요즘 너무 손님이 없어서 유령 소동을 일으킨 거예요. 그러면 손님이 좀 늘지 않을까 해서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도둑질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슨 퇴마사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귀신이 많아요?”
딱지가 어이없어서 물었습니다.
“워…, 원래는 없는 건데 눈앞에 보이니까 무섭잖아요!”
“뭐야, 이 사람. 그냥 사기꾼이네! 아까 겁나서 죽을 뻔한 걸 생각하면 어휴!”
해롱 선장이 흥분해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딱지는 왠지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범인을 잡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니 생각보다 시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령은 어떻게 보이게 한 거지?”
루띠가 기술자다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모르는 사람한테 받은 거예요. 정신을 조작하는 장치랬어요. 사람이 가까이 오면 그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유령처럼 보여준다고 했어요.”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라. 사람의 내면을 분석할 수도 있군. 잠깐! 선장님, 아까 달력 귀신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달력을 가장 무서워하는 거였어요?”
루띠가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 해롱 선장을 보며 웃었습니다.
“시, 시끄러! 공휴일 없는 달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푸하하! 일하는 게 가장 무섭다니! 아이고, 웃겨라. 무서브라 씨 계속 얘기해 봐요.”
“아, 네. 저한테 일꾼으로 위장해 여기 와서 피라미드 안에 설치해 두기만 하면 공짜로 주겠다고 해서 그만…. 원래 며칠만 소동을 벌이다가 가려고 했는데, 우주순찰대가 왔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장치를 도로 가지고 가려다가 저 대원에게 걸린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저한테 그 장치를 준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겼네요.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무서브라가 딱지를 가리켰습니다. 그때, 딱지는 갑자기 누군가가 떠오르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넓은 마음!’
지난번 플래닛 5종 경기에서 스쳐 지나간 얼굴과 마누팩토 행성에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다만드러 공장장님! 그러고 보니 제어실 안에서 일하던 로봇들은 어떻게 됐지요?”
“로봇들이요? 지금은 멀쩡합니다.”
“‘지금은’이라고요?”
“네, 다들 유령 소동이 있던 기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아마 유령을 보이게 한 전자파가 영향을 끼쳤나 봐요. 지금은 다 멀쩡합니다.”
딱지는 불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넓은 마음,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