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는 풀밭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습니다. 그러자 포근한 풀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딱지는 그 상태에서 마치 통나무처럼 몸을 옆으로 굴렸습니다. 울타리에 부딪히면 또 다른 방향으로 데구르르 굴렀습니다. 그렇게 빠진 곳 없이 몸을 굴리고 있을 때 옆구리에 따끔한 느낌이 났습니다.
‘아얏! 찾았다!’
딱지는 얼른 일어났습니다. 옆구리를 살펴보니 초록색 바늘이 허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재빨리 바늘을 위로 쳐들며 외쳤습니다.
“찾았습니다!”
드론이 날아와 확인했습니다.
“고딱지 대원, 바늘 확인. 31번째로 통과.”
“휴우~.”
다행히 첫 번째 경기에서 떨어지는 건 면할 수 있었습니다.
탈락한 사람들이 고개를 떨구고 물러나자 인공지능 컴퓨터 ‘깊은 생각’이 두 번째 경기를 안내했습니다. 두 번째 경기장은 첫 번째와 비슷하지만 좀 작았습니다. 바닥에 총 32개의 네모칸이 있었고, 참가자는 한 명씩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에 들어가자 사방에서 가림막이 올라와 다른 사람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준비가 끝나자 깊은 생각이 말했습니다.
“로꾸꺼 행성의 여울기귀 종족은 모든 말을 거꾸로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말을 빨리 알아듣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주순찰대라면 어떤 말이라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 이제부터 여울기귀 종족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선착순으로 절반만 다음 경기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만 들려드리니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딱지는 여울기귀 종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었습니다.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다른 참가자를 볼 수 없으니 더 긴장됐습니다. 그때 드디어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라러불 를세만 서면르오어뛰 가다았앉 로발 두 시다 뒤 뛴 번 열 로이깽깽 발왼 가다꼈 짱팔 에뒤 돈 퀴바 한 로으쪽른오 고리내 손왼 서서어일 가다았앉 려그쪼 고들 손왼.”
딱지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말을 거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억지로 한 글자씩 외운 뒤에 머릿속에서 거꾸로 읽어야만 했습니다. 뛰어난 기억력과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지요! 딱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시키는 동작을 해나갔습니다.
‘왼손을 들고 쪼그려 앉았다가…, 그다음이 뭐더라….’
머리 위에서 쳐다보는 홀로그램 관중들 때문에 집중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디선가 “로렌스 대원 통과!”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헉! 로렌스 선배는 벌써 성공했구나. 지지 않겠어!’
여기저기서 통과했다는 선언이 들려와 집중을 방해했지만, 딱지는 간신히 기억을 떠올리며 동작을 완수했습니다.
‘…만세를 불러라. 됐다!’
“고딱지 대원 통과!”
“휴~.”
세 번째 경기를 진행하기 전에 휴식 시간이 있었습니다. 딱지는 루띠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루띠?”
“오, 고딱지! 생각보다 잘하던데? 수석 졸업이라더니 진짜였나 봐?”
“아, 그거 정말이라니까요! 아직까지도 안 믿고 있었어요?”
프로보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이제 네가 우승할 확률은 코딱지를 파서 튕겼는데 마침 지나가던 참새에 들러붙어서 참새가 더러워서 닦으려고 마침 지나가던 대머리 아저씨 머리 위에 내려앉을 확률 정도로 높아졌다.”
“여전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소리잖아욧!”
딱지는 몇 마디 더 티격태격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응원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이거 원…. 아, 선배?”
마침 로렌스 선배가 지나가서 딱지가 반갑게 불렀습니다.
“어, 딱지야. 여기까지 왔구나, 축하한다.”
“선배도 축하드려요. 아, 페가수스 선장님하고 일하는 건 어떤가요? 분명히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지요?”
“그, 그렇지.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건 사실이야. 힘들기도 하지만.”
“사실 저는 여기서 우승해서 페가수스 선장님의 선택을 받고 싶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려고요.”
딱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말했습니다. 그런데 로렌스 선배의 눈빛이 확 달라졌습니다.
“뭐? 우승? 네가? 안 돼! 우승은 내 거야! 어딜 감히….”
“서, 선배, 왜 그러세요? 전 그냥 정정당당히 겨루고 싶을 뿐인데….”
“아, 미, 미안하다. 내가 요새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네 말대로 서로 열심히 하자.”
그러고는 몸을 휙 돌려 가버렸습니다. 딱지는 로렌스 선배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세 번째 경기의 배경은 미끌윈드 행성입니다. 그곳에는 대단히 특이한 지형이 있습니다. 마찰력이 매우 적어서 굉장히 미끄러운 지형이지요. 그곳에 잘못 들어가면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면 여러분은 그곳을 지나 건너편에 있는 골인 지점까지 가야 합니다. 역시 선착순으로 절반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준비!”
딱지는 다른 15명의 경쟁자와 함께 출발선에 섰습니다. 앞쪽에는 하얗고 매끄러운 빙판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었고 그 너머에 골인 지점이 보였습니다. 딱지는 이미 전략을 세워놨습니다.
‘골인 지점까지의 거리는 약 50m. 하지만 마찰이 거의 없다고 했으니 뛰어가는 건 불가능할 거야. 출발선 뒤에서부터 최대 속도로 달려서 엎드린 채로 미끄러져 가는 거다!’
“준비!”
딱지는 뒤로 슬쩍 물러났습니다. 뒤에서 출발한다고 반칙일 리는 없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의아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출발!”
그와 함께 딱지는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출발선에 이르자 두 팔을 앞으로 쭉 편 채로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좋았어!”
예상대로였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발라당 넘어질 때 딱지는 혼자 앞으로 쭉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이대로라면 1등으로 통과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바람이었습니다. 앞쪽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며 딱지를 다시 뒤로 돌려보냈습니다. 딱지가 허겁지겁 발버둥을 쳐봤지만,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미끌윈드 행성은 강한 바람이 많이 불기로도 유명합니다.”
깊은 생각이 말했습니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해 주냐고!’
딱지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시 출발선으로 밀려왔습니다. 바람은 강할 뿐만 아니라 방향도 수시로 바뀌어서 선수들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습니다. 서로 부딪치느라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렸지요.
‘이래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겠는걸.’
하다못해 손톱으로 바닥을 긁어보아도 속절없이 미끄러질 뿐이었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우산 같은 거라도 있으면 바람을 받아서…. 아!’
딱지는 입고 있던 윗도리를 벗었습니다. 드론이 날아와 도구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할까 싶어 눈치를 보았지만, 드론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딱지는 마치 돛처럼 윗도리를 넓게 펼쳤습니다. 바람을 받아 옷이 부풀며 빠르게 미끄러졌습니다.
‘됐다!’
딱지는 골인 지점을 향해 바람이 불 때는 옷을 펼쳤다가 다른 방향으로 불 때는 옷을 접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선수들도 각자 옷을 벗어들었지만, 딱지가 한발 빨랐습니다.
“고딱지 통과!”
딱지는 1등으로 골인 지점을 통과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로렌스 선배의 눈빛을 본 딱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너무나 무서운 표정으로 딱지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