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가 프로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프로보는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어요.
“아무렇게나 지어낸 건데 실제로 저런 종족이 있었다니….”
뿔돼지새 종족은 억울한 표정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큰맘 먹고 놀러 왔는데, 이런 누명이나 쓰다니. 꿀꿀 짹짹~.”
경찰대장이 프로보를 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어. 너는 로봇이라 내 눈빛을 보고도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딱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네 녀석을 심문해야겠다.”
딱지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범인이 아닙니다. 저는 우주순찰대 고딱지 대원입니다. 이곳 축제에 숨어든 지명수배자 삐뚤란을 체포하려고 왔습니다.”
“흥! 우주순찰대라고? 그걸 누가 믿나? 신분증은?”
딱지는 아차 싶었습니다. 사복으로 갈아입느라고 신분증을 우주선에 두고 왔거든요.
“아…, 저…, 그게….”
프로보를 바라보았지만, 프로보도 고개를 저었습니다.
“역시 거짓말이군. 이놈들을 당장 감옥에….”
“잠깐만요!”
딱지가 외쳤습니다.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딱지는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신분증 나와라, 뚝딱!”
잠시 후 코가 근질거리면서 부풀어 올랐습니다. 딱지가 손가락을 넣더니 끈적끈적한 게 묻은 신분증을 꺼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기겁했습니다.
“윽, 더, 더러워…. 저런 거 처음 봐.”
딱지는 붉어진 얼굴로 신분증을 경찰대장에게 내밀었습니다. 경찰대장은 손을 대지 않고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신분증을 확인하고 말했습니다.
“요새 우주순찰대는 신분증을 콧속에 갖고 다닙니까? 어쨌든 신분은 맞는 것 같군요.”
마음이 놓인 딱지가 다시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지명수배자 삐뚤란을 찾아 여기 왔습니다. 말캉 다이아몬드를 훔친 것도 삐뚤란의 짓일….”
그 순간 딱지의 머릿속이 반짝였습니다. 마침내 삐뚤란이 누군지 알아낸 것입니다.
딱지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경찰대장이 물었습니다.
“왜 그럽니까, 고딱지 대원?”
“방금…, 범인을 알아냈습니다.”
딱지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딱지가 고대하던 순간이었어요. 바로 임무를 멋지게 해결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아무도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경찰들이 시청 앞에 모여 있는 주민과 관광객을 둘러쌌어요. 경찰대장이 딱지를 재촉했습니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입니까?”
“범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딱지가 외치며 누군가를 가리켰습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전시 안내원이었어요.
안내원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네? 무슨 소리예요! 전 전시 안내원이라고요!”
딱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전시 안내원으로 변장한 삐뚤란이겠지요. 이제 보니 모든 게 맞아떨어집니다.”
“마, 말도 안 돼! 범인은 관광객 중 한 명이라고요!”
“바로 그겁니다. 제가 받은 정보는 범인이 이곳에 잠입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관광객으로 위장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게 실수였습니다. 범인은 그렁그렁 행성 주민으로 변장한 겁니다.”
“증거가 없잖아요!”
“한눈을 판 사이에 관광객이 몇 명 지나갔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다섯 명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만약 정말 한눈을 팔았다면, 어떻게 정확히 다섯 명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그, 그건….”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그냥 당황해서 말이 헛나온 거라고요!”
딱지는 천천히 전시 안내원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한 가지 증거가 더 있습니다. 그렁그렁 행성의 주민은 눈이 큽니다. 그래서 눈물이 더 쉽게 마르지요. 눈이 따갑지 않으려면 눈을 더 자주 깜빡여줘야 합니다. 이곳에 처음 온 저는 그게 신기했지요. 방금 사람들을 잠시 관찰했는데, 그렁그렁 주민은 1분에 평균 30번씩 눈을 깜빡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10번 정도밖에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래 눈물이 많아서 그래요!”
“과연 그럴까요? 당신은 특수 홀로그램으로 그렁그렁 행성 주민의 눈처럼 보이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당신의 눈빛에는 마법 같은 힘이 없습니다! 만약 아니라면, 아무 관광객이나 골라서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부탁을 하나 해보시죠!”
“…….”
모두가 안내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에잇!”
안내원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가면과 홀로그램 장치를 벗어던졌습니다. 그러자 명령서에서 봤던 삐뚤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래! 내가 삐뚤란이다! 이제 어쩔 거냐? 날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삐뚤란은 사람들을 밀치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놓칠 수 없다!’
딱지는 재빨리 삐뚤란을 쫒아갔습니다.
“으하하! 네가 아무리 우주순찰대라도 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난 빠르기로 유명하다고!”
갑자기 삐뚤란의 다리가 쭉 늘어나더니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안 되겠다. 밧줄 나와라, 뚝딱!”
딱지는 뛰면서 손으로는 코에서 밧줄을 잡아당겨 꺼냈습니다. 그 기괴한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서 도망쳤지요. 딱지는 눈물을 머금고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힘껏 던졌습니다.
“어엇!”
삐뚤란이 올가미에 걸리면서 휘청거리다가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딱지가 얼른 뛰어가 삐뚤란을 밧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품속을 뒤져보니 말캉 다이아몬드가 나왔습니다.
“찾았다!”
딱지가 보석을 높이 치켜들자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곧이어 경찰대장과 프로보가 도착했습니다.
“역시 우주순찰대! 범인을 잡았군요. 감사합니다. 범인은 호송대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잘 데리고 있겠습니다.”
경찰대장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삐뚤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호송대가 도착할 때까지 감옥에 얌전히 있어 주시지요!”
삐뚤란은 그 눈빛을 보고 홀린 듯이 대답했습니다. 몸부림도 멈췄어요.
“물론이죠.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고 있을게요~.”
그렁그렁한 눈빛의 위력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프로보가 딱지의 어깨를 두드렸어요.
“잘했다, 신입. 첫 임무를 완수할 확률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빨리 여기를 떠나자.”
“네? 왜요? 조금 더 있으면서 말캉도 먹어보면 안 되나요?”
하지만 딱지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그렁그렁한 눈빛을 한 주민들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우주순찰대면 친절하게 우리 부탁을 들어주겠지?”
“말캉 열매를 딸 일손이 필요한데….”
“누가 우리 아이 수학을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프로보가 얼른 말했습니다.
“저 눈빛에 넘어가면 꼼짝없이 붙잡히는 거야. 눈을 감고 내 손을 잡아!”
임무 완수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었습니다. 딱지는 눈을 감은 채로 프로보의 손을 잡고 해롱 호를 향해 달려가야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