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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한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이 있어 전국 각지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 그런데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이 훨씬 더 평화롭지 않았을까? 여기,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1957년 6월 21일, 실종됐던 한 대학원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프랑스 전역에 퍼졌어. 알제리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하던 모리스 오댕이 프랑스 군대의 고문을 받다가 숨진 거야. 당시 알제리에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운동이 한창이었지.
프랑스 수학자 로랑 슈와르츠는 이런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어. 그는 모국인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고 독립을 원하는 알제리 사람들을 탄압하는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지. 또 오댕 협의회를 만들어 오댕의 사망 원인을 밝히고, 그에게 박사 학위를 주는 데에 성공해.
슈와르츠는 프랑스의 주요 잡지인 ‘르 익스프레스’에 프랑스 정부의 행위를 비판하는 글을 실어. 이 글은 프랑스인에게서 커다란 반응을 이끌어냈고, 식민 지배와 잔혹한 탄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 이 같은 활동으로 반대 세력에게 미움을 산 슈와르츠는 폭탄 테러를 당하기도 해.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고 알제리 식민 지배를 반대하는 운동을 계속 펼쳤지.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군대로 인해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 그 기억 때문인지 평화주의자가 됐지.
1966년 여름, 그는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아. 러시아 정부가 정치적 반대 세력을 감옥에 가두고 동유럽을 침공한 것에 항의한 거야. 필즈상은 40세 미만 수학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데도 말이야.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에 베트남으로 가서, 교육의 기회를 잃은 시민을 위해 강의를 펼치기도 해. 폭탄이 마구 떨어지는 위험 속에서 전쟁을 반대하며 끝까지 평화를 지지하지.
1916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교수로 일하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갑자기 해고당했어. 그가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러셀은 평화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어. 1955년에는 절친한 친구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핵무기를 폐기하고 과학 기술을 평화를 지키는 데 쓰자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문’을 발표해. 이를 계기로 핵무기와 세계 분쟁을 논의하는 ‘퍼그워시 회의’가 만들어졌어. 러셀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