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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작은 차이들이 만든 다채로운 파노라마, 개구리

     

    할리퀸날개구리(Rhacophorus pardalis)

    크기: 수컷: 39~55mm / 암컷: 55~71mm
    서식지: 보르네오섬, 말레이반도, 필리핀 등 
    특징: 몸 아래쪽의 연한 녹색과 위쪽의 주황빛, 검은 무늬가 어우러진 매우 화려한 외형의 개구리다.

    이름에 붙은 할리퀸도 16세기 이탈리아 희극의 분장과 의상이 화려한 광대에서 유래한 단어다.

     

    면적이 10만 km2가 넘는 한국에는 겨우 14종의 개구리가 서식한다. 양서류 연구자로서 한국 개구리의 행동과 생태도 밝혀야 할 부분이 많지만, 더 다양한 양서류와 독특한 삶의 방식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갈증이 커진다. 그래서 보르네오섬에서 반드시 다시 방문하고 싶은 장소를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쿠바국립공원이다.

     

    편집자 주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섬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의 세 나라가 자리한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자 열대우림과 생물다양성의 보고입니다. 한국 대표 생태학자인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보르네오섬 곳곳을 탐사하며 보고 들은 생존과 진화의 경이를 전해 드립니다.

     

    ▲GIB

     

    밤의 열대우림은 개구리의 무대


    말레이시아 사라왁의 주도인 쿠칭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쿠바국립공원은 세계적인 개구리 관찰 명소다. 서울 용산구와 비슷한 22km2 면적의 이 국립공원에서 지금까지 60종이 넘는 개구리가 확인됐다. 이곳은 연못, 개울, 폭포, 낙엽이 두껍게 쌓인 숲 바닥, 그리고 식충식물인 네펜데스 군락까지 양서류의 미소서식지가 다양하다. 생활사가 서로 다른 개구리들이 공존할 수 있는 최적지다.


    이 공원은 낮에는 울창한 열대우림과 폭포가 아름다운데, 해가 지면 전혀 다른 세계로 바뀐다. 비가 막 그친 2026년 2월의 밤이었다. 큰 나무에 맺힌 물방울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후두둑 떨어져 비가 계속 내리는 듯했다. 열대우림은 비가 그치면 비로소 살아난다. 여기저기 개구리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숲은 금세 거대한 합창 무대가 된다. 


    국립공원 입구부터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주변에 큰 활엽수와 야자류가 빽빽하고, 그 사이로 작은 개울이 흘러 개구리가 살기에 알맞다.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손전등으로 나뭇잎을 하나하나 비추고 낙엽을 뒤집으며 천천히 걸었다. 개구리를 찾는 데는 눈보다 귀를 먼저 여는 것이 최고다. 근처에서 낮고 울림이 큰 소리가 들린다.


    보르네오나무구멍개구리. 몸길이는 겨우 2~3cm이지만 노랫소리는 놀라울 만큼 깊고 크다. 노래하는 장소가 아주 독특해서다. 이 개구리는 나무줄기의 작은 구멍 속 물웅덩이에 몸을 반쯤 담근 채로 노래한다. 노래주머니에서 나온 소리를 나무 구멍 전체가 공명통으로 증폭시켜서 노래가 훨씬 크게 울린다. 바이올린의 현을 활로 진동할 때 나는 소리는 매우 작지만, 바이올린 속의 넓은 공간인 공명통이 현의 진동을 증폭시켜서 크고 아름다운 소리로 울려 퍼지는 것과 같다. 작은 몸집의 개구리가 숲속 저 멀리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자연의 음향공학자인 셈이다.

     

     

    유리개구리(Feihyla kajau)

    크기: 약 20mm
    서식지: 보르네오섬 일대
    특징: 몸이 유리처럼 투명해서 나뭇잎 등에 몸의 윤곽을 감춰서 포식자를 피한다.

    크기가 작은 종이어서 관찰하기가 어렵다. 사진의 개구리는 암컷으로, 아래쪽의 투명한 배로 개구리 알이 보인다.

    알은 올챙이가 태어나면 물속에서 바로 성장하도록 개울에 드리운 잎에 산란한다.

     

    광대부터 낙엽까지 가능한 적응력


    개울을 따라 올라가며 나뭇잎 위에서 유리개구리 암컷을 발견했다. 등의 녹색 색소가 보석처럼 빛난다. 유리개구리는 몸이 작고 투명한 편이어서 잘 보이지 않아, 보통은 수컷의 노래를 듣고 찾아낸다. 그래서 암컷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배 부분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배안에서 산란을 기다리는 알들이 뚜렷이 비쳤다. 유리개구리의 투명한 몸은 포식자 방어와 관련이 있다. 투명성이 몸의 윤곽을 흐려서 나뭇잎과 개구리 등의 녹색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므로 위장 효과가 크다. 게다가 낮에는 적혈구를 간에 숨겨서 투명성을 유지한다. 이 개구리는 작은 개울 위로 드리운 잎에 산란한다. 알이 부화하면 올챙이는 그대로 떨어져 물속에서 자란다.


    한참 오르니 보르네오 탐사자들에게 유명한 ‘개구리 연못’이 나왔다. 밤이면 번식하려는 개구리 무리가 이 작은 연못에 모인다. 연못가의 데크를 걸으며 다양한 개구리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날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종은 할리퀸날개구리다. 이곳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개구리다. 이름의 ‘할리퀸(Harlequin)’은 16세기 이탈리아 희극 속의 광대에서 유래한 단어로, 화려한 색채를 뜻하기도 한다. 몸 아래쪽의 연한 녹색과 위쪽의 주황색에 검은 무늬까지 어우러진, 매우 화려한 이 개구리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얼굴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눈은 만화 캐릭터처럼 보인다. 이 개구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주황색 물갈퀴다.


    열대우림은 숲 바닥보다 나무 위에 훨씬 많은 먹이와 번식 장소가 존재하는 3차원 공간이다. 높이라는 수직 차원이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는 나무를 한 그루씩 오르내리는 이동법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이 날개구리는 물갈퀴를 이용해 나무 위아래를 편하게 움직인다.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물갈퀴를 활짝 펴 낙하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조절해서 나무와 나무 사이의 수십 미터를 활강하며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덕분에 날개구리는 굳이 땅에 내려오지 않고 대부분의 삶을 숲의 상층부에서 보낸다. 이 개구리는 유난히 큰 눈도 매우 인상적인데, 활강할 때는 이 눈이 많은 시력 정보를 제공할 듯하다. 

     

    장이권의 탐험 노트: 미소서식지
    미소서식지(microhabitat)는 한 생물이 사는 아주 작은 규모의 환경이다. 같은 숲도 개울가, 낙엽 아래, 나무 구멍에 고인 빗물, 바위틈은 온도와 습도, 먹이, 포식자의 위험이 모두 다르다. 개구리는 종마다 다른 미소서식지에서 번식, 생활한다. 숲속 미소서식지가 다양할수록 여러 생태적 지위의 종이 공존할 수 있고, 종 다양성도 높아진다. 사진은 숲 바닥에 매복하는 포식자인 말레이뿔개구리다.


    닭 다리 맛이 난다는 개구리 다리


    쿠바국립공원의 수많은 개구리를 둘러보다, 다른 개구리보다 몸집이 상당히 크고, 다리도 유난히 굵은 개구리를 만났다. 보르네오닭개구리다. 닭개구리의 이름은 이곳 원주민이 오래전부터 이 개구리를 식용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추측한다.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는 대형 개구리를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이용해 왔다. 닭개구리라는 특이한 이름도 이 개구리가 닭을 먹어서가 아니라, 개구리 다리 살의 맛과 식감이 닭고기를 닮아서 붙었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대부분의 야생동물을 먹어보곤 “닭고기 맛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개구리나 닭의 다리처럼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근육은 대부분 백색근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색근은 혈액 공급이 적은 대신 에너지가 저장된 글리코겐이 풍부해, 짧은 시간에 높은 점프나 급한 가속을 하는 데 적합한 근육이다. 반면 오래 걷거나 계속 헤엄치는 데 사용하는 근육은 혈관과 미오글로빈이 풍부한 적색근이다. 참치나 다랑어에는 붉은 살이 많은데 이 적색근이 많아서다. 결국 ‘닭고기 맛’이라는 표현은 우연이 아니라 근육의 생리학에서 비롯된 감각이다.


    보르네오닭개구리를 촬영한 사진을 확대해 현장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 닭개구리 입 위에 모기가 내려앉아 피를 빨고 있었다. 양서류도 흡혈곤충의 숙주가 된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줬다. 사진만으로는 이 모기의 정확한 종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열대우림에는 개구리 같은 양서류가 주된 숙주인 모기들이 알려져 있으며, 반대로 사람을 비롯해 다양한 척추동물을 흡혈하는 종들도 존재한다.

     

     

    보르네오구리뺨개구리(Chalcorana raniceps)

    길이: 수컷: 28~34mm / 암컷: 33~42mm
    서식지: 보르네오섬 일대
    특징: 눈 뒤부터 고막을 거쳐 뺨까지 이어지는 구릿빛 또는 황금빛 띠가 있다.
    사진은 할리퀸날개구리 암컷(아래)과 이종포접을 시도하는 보르네오구리뺨개구리 수컷이다.

    이종포접은 번식기에 서로 다른 생물종 간에 시도되는 짝짓기를 뜻한다.

     

    서식지의 다양성이 종의 다양성으로


    작은 공간에 매우 많은 개구리 종이 함께 살아가다 보니 예상 못한 현상도 발생한다. 개구리 연못 주위에 불빛을 비추다가 나뭇가지 위에서 포접(짝짓기) 중인 두 마리를 발견했다. 포접은 늘 관심의 대상이므로 가까이 다가가니 놀랍게도 할리퀸날개구리 암컷과 보르네오구리뺨개구리 수컷의 이종포접이었다. 먼저 보르네오구리뺨개구리는 이름처럼 눈 뒤부터 고막을 거쳐 뺨까지 이어지는 구릿빛 또는 황금빛 띠가 특징으로, 보르네오 열대우림 저지대의 개울가에 흔하다. 


    이종포접은 번식기인 서로 다른 종의 개구리 간에 시도되는 행위로 번식 성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종포접 대부분은 결국 번식에 실패하므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지만, 종에 따라서는 드물게 잡종이 번식해 유전자 교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특히 번식기가 절정에 이르면 암컷을 먼저 확보하려는 수컷들의 경쟁이 치열한 탓에, 여러 종이 한데 모인 번식지와 같은 조건에서는 수컷들이 다른 종 암컷을 붙잡는 일이 드물지 않다. 개구리 종 다양성이 세계적으로 높은 쿠바국립공원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종이 동시에 번식하므로 이런 번식 행동의 혼란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개구리는 물만 있으면 어디서나 사는 동물이 아니다. 종마다 번식 장소와 생활 방식이 매우 다르다. 어떤 종은 고인 연못에, 어떤 종은 빠르게 흐르는 개울의 바위 밑에 산란한다. 보르네오나무구멍개구리처럼 나무 구멍에 고인 빗물을 이용하는 종도 있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개구리 중 하나인 네펜데스개구리는 벌레잡이식물인 네펜데스 안의 빗물에서만 올챙이를 키운다. 숲 바닥에 깔린 낙엽층은 뿔개구리 같은 매복 포식자의 무대이고, 나무 꼭대기의 수관층은 날개구리들이 활강하며 사는 공간이다. 이런 미소서식지의 차이가 개구리에게는 삶의 방식을 좌우하는 결정적 조건이다. 좁은 공간에 수많은 작은 세계가 공존하는 쿠바국립공원은 다채로운 개구리가 펼친 거대한 파노라마와도 같다. 즉 서식지 다양성이 종 다양성을 높이는 핵심이다.


    열대우림은 겉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숲이지만, 개구리의 눈으로 보면 수백 개의 작은 세상이 모여있다. 연못은 연못대로, 개울은 개울대로, 나무 위와 낙엽 속은 또 다른 세계다. 그래서 쿠바국립공원에서는 불과 몇 시간의 야간 탐사에서 10종 이상의 개구리를 만나는 일이 흔했다. 작은 국립공원이 세계 양서류 연구의 성지가 된 이유다. 


    야간 탐사를 마치고 숲을 내려오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개구리의 다양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숲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작은 환경들이 개구리들이 나아간 다양한 진화의 오솔길이었다. 쿠바국립공원은 그 진화의 흔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필자 소개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진화적인 관점에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소리를 이용해 의사소통하는 곤충, 개구리, 새 등의 연구에 관심이 많다. 일반 시민들과 연구자가 협업하는 시민과학에도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동참해 오고 있다. 저서로 ‘지금 자연은’ ‘하마는 왜 꼬리를 휘저으며 똥을 눌까’ 등이 있다. jangy@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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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9월 과학동아 정보

    •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 사진

      이원재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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