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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직접교차분화, 암 뛰어넘는다

피부세포에서 바로 신경줄기세포로

Part 2. 직접교차분화, 암 뛰어넘는다

우리 몸은 약 50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모두 수정란이라는 단 하나의 세포에서 분화됐는데, 애
초부터 230여 종류의 세포로 나눠질 운명이 DNA에 ‘프로그램(program)’돼 있다. 한번 정해진 세포의 운명은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생각해 보라. 상처 난 피부에 심장세포가 자라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단단히 고정된 세포의 운명을 뒤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질병에 걸려 손상된 세포를 정상세포로 대체해 치료하기 위해서다. 프로그램을 다시 짠다는 의미에서 이를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이라고 부른다. 리프로그래밍은 DNA가 들어있는 세포핵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잘 알려진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s, 본문에서는 iPS로 표기)’가 대표적인 리프로그래밍 기술이다. 완전히 분화된 성체세포의 핵을 수정란에 넣어 핵을 바꿔치기하면, 성체세포의 핵이 수정란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 수정란을 그대로 배양하면 돌리 같은 복제동물이 되고, 초기 발생과정인 배반포 단계에서 내부 세포를 추출하면 230여 종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가 된다. iPS도 성체세포를 이용하긴 하지만, 수정란에 넣는 대신 4개의 유전자(Oct4, Sox2, Klf4, c-Myc)를 과발현시켜 세포핵을 배아상태로 되돌린다. 배아줄기세포처럼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으며(만능성), 수정란을 쓰지 않아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롭다. 2006년에 이 기술을 발표한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6년만인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훈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동
 
두 기술이 환호 받은 것은 ‘만능성’ 때문이다. 특정 세포밖에 분화할 수 없는 성체줄기세포와 달리 환자가 필요로 하는 세포를 모두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만능성’이 오히려 치료제 개발에 발목을 잡고 있다. 만능성 때문에 원하는 세포로 분화를 유도하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해진 것이다. 장점이 곧 단점인 셈이다. 혹시 손상된 조직에 만능줄기세포를 찔러 넣으면 알아서 원하는 세포로 분화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만능줄기세포는 종양처럼 무한 증식하는 특성이 있다. 미분화상태로 조직에 들어가면 암의 일종인 테라토마(기형종)를 만든다. 병을 치료하려다가 오히려 암을 만드는 꼴이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맞춤형 만능줄기세포가 아니라 맞춤형 ‘분화세포’다. 줄기세포가 아니라 신경, 근육, 피부세포 등이 필요한 것이다. 산봉우리에 오른 뒤 다른 봉우리로 이동하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자. 입구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길과 능선을 타고 다른 봉우리로 가는 길, 어느 쪽이 빠르고 편리한가? 두말 하면 잔소리다. 마찬가지로 한쪽 세포에서 다른 쪽 세포로 질러가는 길만 있다면 굳이 어렵게 만능줄기세포로 되돌아간 뒤 다시 필요한 세포로 재분화시킬 이유가 없다. 더구나 한번 분화된 세포는 암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대신 직접 환자맞춤형 분화세포를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암 가능성 원천봉쇄한 ‘직접교차분화’

최근 떠오르고 있는 세 번째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 바로 ‘직접교차분화’가 그 답이다. 예를 들어 피부세포를 신경세포로 바꾸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신경세포 분화와 관련된 유전자들을 선택해서 많이 발현시키면 만능줄기세포를 거치지 않고도 신경세포를 얻을 수 있다.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행한다고 해서 ‘직접교차분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역분화-재분화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기술적 어려움도 피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지름길을 확보한 것이다.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직행하는 기술은 놀랍게도 1987년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의대 로버트 데이비스 교수팀은 근육에서 많이 발현되는 미오디(MyoD) 유전자를 섬유아세포에서 과발현시켰더니 근육세포로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결과는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자발적으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세 갈래 길, 어디로 갈까?


 
그런데 2008년 미국 하버드대 더글러스 맬턴 교수가 직접교차분화를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뇨병에 걸린 생쥐의 췌장에 있는 외분비세포에 3개의 유전자를 발현시켰더니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로 운명이 바뀌었고, 이를 통해 당뇨병이 치료된 것이다. 맬턴 교수의 선구적인 연구로 직접교차분화의 가능성은 증명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계가 분명했다. 배아는 세 개의 줄기(외배엽, 내배엽, 중배엽)로 나눠져 본격적인 발생을 하게 되는데, 각 배엽에 속한 세포는 다른 배엽의 세포로 운명이 바뀔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변화는 엉뚱한 곳에서 왔다. 미국 스탠포드대 대학원에 다니던 1년차 학생이 마리우스 워닉 교수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실험을 제안했다. 중배엽에 해당하는 섬유아세포를 외배엽에 속하는 신경세포로 직접교차분화 시키는 실험이었다. 2010년 이 실험은 성공했고, 연이어 내배엽에 속하는 간세포도 신경세포로 운명을 직접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차츰 ‘직접교차분화가 iPS를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iPS와 달리 직접교차분화로 만든 세포에서 테라토마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러 편의 논문으로 검증되고 있었다. 세포의 운명을 성공적으로 전환했다는 연구결과도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야마나카 인자’ 도입으로 문턱을 낮추다
 
그래도 아직 2% 모자랐다. iPS 연구자들은 직접교차분화가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선뜻 진입하기 어려워했다. 유전자 때문이었다. iPS는 ‘야마나카 인자’만 있으면 만들 수 있었다. 야마나카 교수는 배아줄기세포에서 많이 발현되는 4개의 유전자 조합(야마나카 인자)을 선별해 체세포를 역분화시키는 데 이용했다. 직접교차분화 기술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목적세포의 특이 유전자를 골라냈는데, 문제는 목적세포가 워낙 많았다. 즉 특이 유전자가 세포마다 제각각이었다.
 
iPS에서 쓰던 야마나카 인자를 그대로 가져오는 방법은 없을까. 필자가 속해있던 스크립스연구소의 쉥 딩 연구팀(현재는 글래드스톤 연구소로 옮김)은 2011년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계기는 우연한 관찰에서 비롯됐다.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 야마나카 인자를 발현시켰는데 가끔씩 심장근육세포처럼 박동하는 세포가 관찰된 것이다. 이 일을 진행하던 연구원과 함께 필자는 이 현상을 좀더 파고들었다. 연구 끝에 야마나카 인자를 짧은 시간동안만 발현시키고 적절한 배양 조건을 가해주면 목적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결과로 피부세포를 심장근육세포로 바꿀 수 있었으며, 중배엽성의 섬유아세포를 외배엽성의 신경줄기세포로 직접교차분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개혁(iPS)이냐, 혁명(직접교차분화)이냐

예상외의 사건이라 과학계에서는 초기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적당히’ 조건을 조절해주면 만능줄기세포까지 가지 않고도 필요한 세포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현실험과 후속실험에서 인정을 받았고, 
최근에는 혈관내피세포, 췌장세포, 간세포로 직접교차분화가 가능함이 나타났다. 우리가 쓴 방법이 직접교차분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정착된 것이다.
 
산봉우리 비유를 다시 생각해보자. 다른 봉우리로 이동할 때 매번 능선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오던 길을 살짝 내려와 갈림길을 찾는 게 더 빠를 수 있다. 야마나카 인자를 이용해 직접교차분화를 하면 다양한 세포로 전환할 수 있을 뿐더러, 줄기세포 혹은 전구세포를 만들기 좋다.

최근 필자는 직접교차분화를 통해 신경줄기세포와 도파민성 신경전구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신경줄기세포는 실험실 환경에서 증식이 가능해 치료에 필요한 양만큼 충분한 많은 세포를 만들 수 있다. 도파민성 신경전구세포는 한발 더 나아가 파킨슨병 같은 신경질환 치료에 직접 이용할 수 있다. 도파민성 신경세포를 바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치료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전구세포는 여러 차례 세포분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앞으로는 이 전구세포를 대상으로 직접교차분화 연구가 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는 직접교차분화 기술이 대세
 
야마나카 교수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처음 발표한 2006년 논문은 현재까지 약 1만 번에 이르는 인용횟수를 자랑하고 있다. 그동안 매일같이 평균 3~4편의 인용문헌이 발표된 것으로 지난 8년 동안 엄청난 연구 및 개발이 이루어져 왔음을 의미한다. 직접교차분화 기술도 연구할 점이 무궁무진하다. 첫째로 좀 더 다양한 세포로 리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다. 둘째로 직접교차분화의 기전을 연구해 전환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셋째는 몸 안에서 직접교차분화를 유도하는 것, 넷째는 몸에 있는 세포와 기능적으로 좀 더 유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포의 운명을 좀 더 간편하게 바꿀 수 있는 ‘지름길 기술’인 직접교차분화, 앞으로 유도만능줄기세포 이후의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주도할 것이다.


이동률 교수
“99.99% 이상 분화시켜서 극복할 겁니다.”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에서 테라토마가 생길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동률 교수는 ‘정면돌파’를 말했다. 복제배아줄기세포의 분화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려서 미분화세포를 없앤다는 각오다.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부소장인 이동률 교수는 지난 4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들긴 했지만, 이 때는 기능세포로의 분화가 덜 된 상태인 태아의 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이 교수는 분화가 완료된 성인의 피부세포로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해,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에 한걸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우석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복제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우리나라 연구진이 다시 도약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 교수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아주 못할 것은 없었다”며 넉살좋게 말했다. 학생 때 주전공이 ‘정자와 난자’였던 이 교수에게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운명일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 7건밖에 없는 (수정)배아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연구 중 하나를 맡고 있다(망막 질환). 이 경험을 살려 복제배아줄기세포도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세포독성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빠르면 2~5년 이내에 임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볼 계획입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21세기 시시포스의 도전 줄기세포
Part 1. 줄기세포 치료제 언제 나오나
Part 2. 직접교차분화, 암 뛰어넘는다
Part 3. 줄기세포가 ‘분화’만 하는 줄 아니?


인포그래픽 :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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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장환
  • 자료출처

    유타대
  •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 에디터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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