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빠른 유인기는 미국 록히드사의 블랙버드 SR-71이다. 1964년 도입되고 1990년 퇴역한 이 비행기의 속도는 음속의 3배가 넘는 마하 3.3. 오늘날 가장 최첨단 전투기인 F-22 랩터의 최고속도 마하 2.25보다 시속 1000km 이상 빠르다. 그런데 만약 사람이 타야한다는 조건을 뺀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는 무엇일까.
2004년 11월 마하 9.65(시속 1만 617km)의 기록을 세운 미항공우주국의 실험용 무인기 X-43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인기다. 스스로 이륙할 수 없는 X-43은 B-52 폭격기에 실려 13km 상공까지 올라간 뒤 다시 한 번 페가수스로켓의 도움으로 고도 33km까지 상승했다. 그 다음 X-43에 장착된 스크램제트 엔진을 10초 동안 가속시켜 마침내 마하 9.65라는 어마어마한 속도에 도달했다. 달에서 비행한다면 달의 중력을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빠르기다(사실 스크램제트 엔진은 대기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달에서는 비행할 수 없다). X-43은 태평양 바다로 떨어져 임무를 마쳤다. 회수 계획이 없는 1회용 실험기이기 때문이다.
스크램제트 엔진이란 현재 세계 10여개 나라에서 연구개발 중인 초음속 비행만을 위한 제트엔진이다. 그런데 이 엔진에는 단점이 있다. 엔진 흡입구로 불어 들어오는 초음속의 공기가 있어야만 추진력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초음속이 아닌 속도에서는 가동할 수 없다. X-43이 B-52 폭격기에 실려 이륙하고 페가수스 로켓으로 추진력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자체 스크램제트 엔진으로 날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스크램제트 엔진은 아직 실용화되지 못했지만 이론적으로 최대 마하 15 혹은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사람이 타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엔진이 비행기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제트엔진이어야 한다는 조건마저 빼버린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체는 X-43가 아닌 팰콘 HTV-2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만든 팰콘 HTV-2는 엄밀히 ‘로켓 글라이더’로 분류할 수 있다. 로켓 엔진의 도움을 받아 가속을 한 뒤 이후에는 활공비행을 하는 형태가 바로 로켓 글라이더다. 탄도미사일을 변형해 만든 미노타우르IV 로켓을 타고 대기권을 나간 팰콘 HTV-2는 로켓에서 분리되고 대기권에 재돌입한 뒤, 발사된 곳에서 7700km 떨어진 태평양 마셜 제도 서쪽에 떨어졌다. 그런데 팰콘 HTV-2가 기록한 최고 속도는 무려 마하 20(시속 2만 4500km). 이 속도라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30분 만에 갈 수 있다.




인공위성은 수명이 다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고장 나는 그 순간까지 지구 주위를 돌며 임무를 수행한다. 만약 고고도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무인기도 한 번 이륙한 뒤 영원히 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를 위해 개발 중인 것이 바로 태양에너지 무인기다.
헬리오스(사진➎)는 미국의 에어로바이론먼트사가 개발한 무인 고고도 태양열 비행체다. 헬리오스는 대형 항공기 보잉 747보다 더 긴 75m 길이의 날개 위 2000평방피트(183.6m2)의 공간을 태양전지판으로 빼곡하게 채웠다. 여기서 하루에 만드는 약 40kW의 전기로 14개의 프로펠러를 돌려 시속 30~50km 속도로 하늘을 난다. 보통 비행기는 이런 느린 속도로 날 수 없지만 헬리오스는 탄소섬유, 스티로폼, 케블라 등으로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 전체 무게가 600kg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다. 헬리오스는 약 30km 상공까지 올라가 비로켓추진 비행기로 가장 높이 비행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6월 헬리오스는 하와이에서 6개월 이상 장기 체공하는 비행 시험 도중 8km 상공에서 추락해 운명을 다했다.
바톤을 넘겨받은 고고도 태양열 비행체는 영국 방위산업체 키네틱사의 제퍼(Zephyr)다. 제퍼는 22.5m 길이의 날개 위에 얹은 리튬-황 태양전지로 에너지를 얻는다. 제퍼는 2010년 7월 약 20km 고도에서 2주간 연속 비행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태양전지 외에도 연료전지가 고고도 장기체공을 하기 위한 또 다른 가능성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글로벌호크 외에도 함께 검위키미디어토 중인 팬텀아이, 글로벌옵저버 모두 연료전지를 사용한다. 팬텀아이는 4일 이상, 글로벌옵저버는 5~7일 정도 한번 뜨면 착륙하지 않고 비행이 가능하다. 지난 1월 2일에는 중국 또한 연료전지를 동력으로 하는 무인기 ‘페이웨 1호’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페이웨 1호는 2km 상공에서 시속 30km 속도로 2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다.



유인정찰기나 전투기에서는 공중급유가 이미 흔한 일이 됐다. 공중급유에 처음 성공한 것은 90년 전인 1923년이다. 그런데 공중급유가 무인기 사이에서도 가능할까. 공중급유가 가능해진다면 한 번 뜬 무인기는 더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며 임무를 펼칠 수 있고, 기존엔 갈 수 없던 더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조종사가 타지 않는 무인기의 공중급유는 더 어렵다. 유인비행기는 비행사의 숙련된 기술에 의지할 수 있지만 무인기는 모든 과정을 컴퓨터에 맡겨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전파를 주고받는 장치인 ‘비콘’뿐만 아니라, 유인조종사가 눈으로 보는 대신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토대로 거리와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는 영상분석 기술이 무인기 공중급유의 필수 기술이다.
지난 2012년 10월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기획국(DARPA)와 NASA 드라이덴 비행연구센터, 노스롭 그루먼사는 2대의 개량형 글로벌호크를 13.7km 상공에서 9m까지 근접 비행시키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공중급유만 하지 않았을 뿐 호스를 늘였다 줄였다하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검증도 마쳤다. 짐 맥코믹 DARPA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기 공중급유사업(AHR) 관리자는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기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계속 하늘을 날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NASA는 오래 전부터 화성 탐사를 위한 무인항공기 연구를 진행했다. 아레스(ARES)라는 무인기를 화성에 보내 약 수백 km 구간에 이르는 화성의 표면을 탐사하는 게 목적이다. 지상에서 바퀴로 이동하는 탐사 로봇(로버)에 비해 무인비행탐사선은 날아서 이동하기 때문에 넓은 지역의 영상과 자기장 자료, 과학실험 결과 등을 얻을 수 있다.
화성 상공을 날아서 탐사하는 무인기를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우선 어느 정도의 속도로 비행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화성의 대기 밀도는 지구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중력은 지구의 약 3분의 1 정도여서 지구에서 비행할 수 있는 비행체가 화성에서 비행하려면 지구 비행 속도의 약 6배가 되거나 덩치가 6배로 커져야 한다.
조종하는 데 필요한 신호를 받기까지 시간 지연은 어떨까. 지구에서 화성까지 거리가 가까울 때 약 5460만km, 멀 때는 4억km나 된다. 5000만km만 되어도 전파 도달 지연시간이 167초나 되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무인항공기를 조종하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미리 정해진 방식의 비행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율화, 자동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탐사한 결과를 탑재 컴퓨터에 내장하고 지구와 통신이 가능한 시간대에 전송해야 한다. 또 지구에서와 같은 GPS 장비를 사용할 수 없으니 화성의 대기에 적합한 고도계, 속도계를 장착해야 한다. 화성의 중력장에 맞추어 보정을 한 중력 및 관성센서와 이 센서들의 값을 이용한 자동 비행 프로그램도 화성 표면의 물리적 특성을 감안해 설계돼야 한다.
무인비행탐사선의 안전성과 신뢰성 검토도 필요하다. 우주에 있는 행성에 무언가를 보낼 때 가장 고민스러운 점은 탑재물의 부피와 무게다. 날아서 움직이는 비행체는 보다 복잡한 시스템이 요구되기 때문에 더 무거워진다. 때문에 우주발사체 안에서 탑재 공간과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비행체를 최소한의 크기로 접었다 펼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주탐사를 위한 무인기는 이미 연구되고 있다. 탐사 대상 행성의 대기 조건과 중력 및 기타 비행에 필요한 물리적 조건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얼마든지 설계해서 시험할 수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가능하고 비슷한 환경의 고고도 시험을 통해 개발할 수도 있다. 사람보다 더 똑똑한 ‘살아 있는’ 무인항공기가 이제는 지구의 하늘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의 하늘도 지배하는 미래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PART 1. 글로벌호크, 한반도에 뜰까
PART 2 무인기와 유인기가 맞짱을 뜬다면?
BRIDGE. 대한민국 무인기는 ‘트랜스포머’
PART 3 백두산이 폭발하면 초소형 무인기가 뜬다
PART 4. 영원히 착륙하지 않는 무인비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