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게놈지도의 완성을 계기로 유전자 연구에 한층 가속도가 붙게 됐으며 그 경쟁 또한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립보건원(NIH)의 유전자 연구 예산이 3.4억달러(4천8백억원)에 달하며, 독일은 3년간 8.7억마르크(5천억원)를 유전자 연구에 지원하고 있다. 일본 또한 인간게놈 연구에서는 미국에 뒤졌지만 게놈 정보를 실용화하는 포스트게놈 연구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겠다며 생명과학 분야에 문부과학성에서만도 8백억엔(8천4백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대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현재 포스트게놈 연구로 많은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단백질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생명체 내의 모든 정보는 유전자 내에 들어 있지만 실제로 세포 내에서 기능을 수행하는 주인공은 유전자로부터 합성되는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백질이 세포 내에서 과다하거나 과소하게 발현하는 경우와 기능에 이상이 생길 때는 질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제약 회사들도 단백질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포에 존재하는 많은 종류의 단백질 중에서 프로테오믹스 연구에 특히 중요한 단백질은 질병과 관계된 단백질이다. 질환 단백질은 유전적 또는 환경적 변화로 인해 단백질 일부분의 구조가 변형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백질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이는 곧 질환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질환 유발 단백질과 생체 내에서 중요한 생리 작용을 조절하는 단백질은 치료제의 표적이 된다.
신약 표적의 절반 이상은 막단백질
현재 시판되고 있는 약물의 표적 단백질을 생화학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단백질을 분해·합성하거나 단백질의 특정 부위에 인산 등을 붙여 일정한 기능을 하게 만드는 단백질(protease, kinase, phosphatase)이다. 이들이 전체 질환 관련 단백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30%. 이에 비해 두번째 부류에 속하는 수용체(receptor)나 핵수용체(nuclear receptor), 이온 통로(ion channel) 등은 50%가 넘는 부분을 차지한다. 이들 단백질 대부분은 세포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포와 외부를 구분하는 세포막 속에 존재한다. 즉 질환 관련 단백질의 대다수는 세포막에 존재하는 특수한 단백질인 것이다. 이들을 세포 내부에 존재하는 수용성 단백질과 구별해 ‘막단백질’(membrane protein)이라 부른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는 두겹으로 구성된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세포막을 구성하는 성분은 크게 지질(lipid)과 단백질이다. 지질이 약 50-70%, 단백질이 약 30-50%를 차지한다. 지질은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의 탄화수소 사슬 부위와 인산, 글리세롤 등의 친수성 부위가 동시에 존재하는 분자로서 이들의 집합체는 수용액 상에서 이중 지질막을 이룬다. 막단백질 또는 세포막 단백질은 이런 지질막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통칭한다. 막단백질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지질막의 외부에 노출된 부위인 친수성 부위과 지질막 내부에 존재하는 소수성 구조를 동시에 갖고 있다.
세포가 살아가는 위해 많은 요소를 필요로 한다. 세포를 우주선에 비유하면 유전자는 우주선의 설계도에 해당하며 당분, 지방 등은 연료, 단백질은 우주선의 주요 부품과 기관에 해당한다. 특히 우주선 부품 중에서 관제소와 교신에 필요한 송·수신 장치나 태양열 발전 장치, 그리고 우주선에 필요한 물품을 받아들이거나 송출하는 물질 수송 장치 등에 해당하는 것이 막단백질이라 할 수 있다. 좀더 전문적으로 표현한다면 막단백질은 세포가 필요한 물질의 투과와 외부 환경에서 오는 신호의 수용 및 전달 그리고 세포가 에너지로 활용하는 분자인 ATP의 합성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
세포가 갖고 있는 전체 단백질의 종류를 분석해보면 막단백질의 종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추정할 수 있다. 대장균의 경우 4천2백88개에 해당하는 유전자 중 세포막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단백질은 전체 단백질의 약 30%에 해당하는 1천2백-1천4백여개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막단백질 중에서 기능이 알려진 것은 불과 20% 내외다. 나머지 80%의 막단백질 경우에는 그 기능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같이 기능이 밝혀진 막단백질의 수가 적은 이유는 세포 내부의 수용성 단백질에 비해 막단백질 연구가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단백질의 기능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형태로 정제한 후 이들의 물리·화학적 성질을 밝힌다. 수용성 단백질의 경우 유전공학적 방법을 이용한 대량 생산이 비교적 용이하며 생산된 단백질을 정제하는 기술이 잘 확립돼 있다. 그러나 막단백질의 경우 아직 대량 생산 방법이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발현이 잘 되는 소수의 막단백질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주로 수행해왔다.
또한 막단백질을 정제하기 위해서는 수용성 단백질과 달리 적절한 계면활성제가 필요하다. 막단백질은 자신이 살던 세포막 내부처럼 적절한 소수성 공간이 아니면 안정된 구조를 잃고 금방 분해돼버린다. 이때 계면활성제는 세포막처럼 이중 지질막 구조를 막단백질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막단백질이 살던 세포막 내부의 환경을 인간이 그대로 흉내기는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너무나 다양한 조건과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 조건들 때문에 그동안 막단백질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단백질 구조 규명 분야를 예로 들면 수용성 단백질은 약 2만종 이상의 입체 구조가 규명돼 있지만 막단백질은 불과 20여 가지 종류만 그 구조가 밝혀져 있다.
늦은 시작 불구 경쟁력 높아
많은 종류의 막단백질 중에서 지금까지 관심을 갖고 연구된 종류는 수용체와 이온통로들이다. 수용체는 외부 신호가 세포에 전달될 때 그 신호를 최초로 인식하는 단백질이다.
주로 세포 표면의 세포막에 존재하며 세포의 성장과 분화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이들 수용체에 문제가 생기면 암을 비롯해 심혈관 질환, 뇌 질환, 대사성 질환, 면역 질환 등의 질병이 생긴다.
실제로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판매 순위 1백위 약물 중 16개가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고 있는 약물이며 연간 5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막단백질 연구 현황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최근 발족된 프로테오믹스 사업단의 질환치료제 표적 단백질 연구는 막단백질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질환 표적 단백질의 상당수가 수용체나 막단백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막단백질 연구는 생명공학 선진국에 비해 시작이 늦었지만, 프로테오믹스 기술을 활용하고 제반 연구를 통합한다면 우리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용체를 비롯한 막단백질 연구는 신약 개발과 직접 연관된 분야이므로 우리 손으로 우리 체질에 맞는 신약개발을 위해서라도 막단백질 연구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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