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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 오른쪽 QR코드를 읽어들여 동영상부터 보자. 반투명한 고무풍선처럼 생긴 물건 안으로 빨간 물감을 주입하자, 풍선 안쪽의 혈관(?)이 드러난다. 구석구석 흐른 빨간 물감이 곧 밖으로 뚝뚝 떨어진다. 쥐 같은 작은 동물의 심장 같기도 한 영상 속 물건은 놀랍게도 시금치 이파리다. 두 번째 영상은, 이 하얀 이파리에 키운 사람의 심장세포가 실제로 박동하는 모습이다. 당신은 지금 시금치로 만든 심장을 보고있다!

동물 장기 표피·혈관계 그대로 살려 인공장기 만든다
“시금치 잎맥을 보는 순간 대동맥이 떠올랐죠. 바로 시금치 물관에 화학물질을 흘려보기로 했어요.” 논문의 제1저자인 미국 우스터폴리테크닉대 생체의료공학과 조슈아 거슬락 연구원은 이번 연구의 영감을 받은 순간을 이렇게 말했다. 

연구팀이 시금치 심장을 만든 과정은 이렇다. 먼저 시금치 이파리의 물관에 특수한 화학물질을 흘렸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우스터폴리테크닉대 생체의료공학과 글렌 가우데트 교수(오른쪽)와 조슈아 거슬락 연구원(➋).
➊은 세포를 제거한 시금치 잎에 색소를 흘린 사진이다.
➌의 어두운 부분은 시금치의 물관이고 표시한 부분은 사람의 심근세포다.

 
식물세포가 녹아 제거되면서 7일 뒤 반투명한 껍질만 남았다(위 사진❶). 잎의 구조를 지지하는 성분과 물관 등(세포외기질)으로, 주성분은 셀룰로오스다. 이렇게 만든 하얀 이파리의 물관에, 분화시킨 사람의 심근줄기세포를 주입했다. 그러자 세포들은 곧 잎의 물관을 따라 덩어리졌고, 이후 21일간 박동했다(doi:j. biomaterials.2017.02.011).

연구를 이끈 미국 우스터폴리테크닉대 생체의료공학과 글렌 가우데트 교수와 위스콘신 의학및공중보건대 윌리엄 머피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연구의 의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주 저렴한 생체재료를 사용해 유체가 흐를 수 있는 관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에게 적용할 인공장기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포를 기반으로 하는 물질을 생산하는데 중요 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아주 값비싼 제조기술을 적용해야만 만들 수 있는 미세유체기계를 대체할 가능 성도 있죠.”


면역거부반응 없고 모양·크기 다양해 가치
과연 이렇게 만든 시금치 심장을 향후 실제 인공장기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먼저 면역 문제. 연구팀은 논문 에서 “식물의 관이 사람에게 이식됐을 때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밝혔지만, 전문 가들은 대부분 면역거부반응이 없을 것으로 추정하는 분위기다. 

머피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식물 세포를 다 제거했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이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심진형 한국산업기술대 기계공학과 교수도 “면역거부반응은 주로 동물 내의 단백질이 일으키는데, 식물의 세포외기질을 이루는 셀룰로오스 등은 전부 당류”라며 “아마 면역거부반응이 없을 것”이라고 말 했다. 연구팀은 계속해서 시금치 세포외기질의 생체적 합성을 평가하는 중이다.


세포를 제거한 파슬리(➊)와 라일락 잎(➋) 위에서 자라고 있는 사람의 결합조직 (섬유아세포)이다.
이 외에도 난초, 대나무, 토란, 고추냉이 등을 쓸 수 있다.

 
연구팀은 시금치 물관을 통해 혈액도 충분히 순환 시킬 수 있음을 보였다. 미세구슬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지름이 0.01mm인 구슬은 대부분 회수됐다. 지름이 이보다 작은(0.008mm) 적혈구는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

식물의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다는 것도 유리한 점이다. 시금치 잎이 너무 작아 사람 장기로 쓸 수 있을지 걱정하는 기자에게 가우데트 교수는 “식물은 아주 작은 클로버부터 거대한 토란 잎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로 자랄 수 있다”며 “파슬리, 대나무, 난초, 심지어 안투리움 같은 거대한 열대식물 등 다양한 식물이 우리 실험에서 잘 작동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시금치 잎처럼 물관이 빽빽한 식물은 심장조직으로 활용하고, 봉선화 줄기의 원통형 구조는 동맥에, 단단한 나무 물관은 뼈 공학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식물엔 콜라겐, 엘라스틴 없는데 제대로 기능할까
한계도 있다. 최근에는 장기마다 세포외기질의 구성과 역할이 다르고 세포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피부에서 뽑아낸 세포외기질은 엘라스틴 성분이 많아 유독 쫀쫀하다. 세포가 특정 세포외 기질의 분자와 결합해야만 장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물에는 사람을 비롯한 포유동물의 세포 외기질에 있는 콜라겐이나 피브로넥틴, 엘라스틴, 히 알루론산 같은 성분이 없다. 심 교수는 “식물의 세포 외기질은 동물의 세포외기질과 구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사람 세포와 제대로 상호작용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우데트 교수와 머피 교수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포를 제거한 식물의 표면에 도파민이나 펩타이드 등을 코팅했다. 필요한 세포가 우선 붙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연구에 참여한 이재성 미국 위스콘신 의학및공중보건대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뼈의 주요 무기질을 코팅하면 줄기세포의 부착과 증식, 분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며 “특히 펩타이드는 동물세포에, 도파민은 다양한 물질에 달라붙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 코팅처리를 하지 않은 이파리보다 세포가 더 잘 붙을 뿐만 아니라 의도한 세포가 먼저 조직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doi:10.1002/adhm.201601225).

연구팀은 현재 생체적합성 연구 외에도 식물 잎을 자유자재로 조직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잎을 쌓은 뒤, 일부 잎은 혈류를 전달하고 나머지 잎은 혈액을 제거하도록 만드는 연구다. 가우데트 교수는 “재생 의학이나 생체의료기기 설계 등 각각의 응용 분야에 가장 적합한 식물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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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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