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도시. 하지만 도시도 수명이 있고, 미래의 건축물을 위해, 혹은 녹색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언젠가는 해체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초고층 건물들과 교량, 터널 등 메가 스트럭처를 철거하는 게 우선.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대한 이 건축물들을 어떻게 철거할까.
63빌딩을 없앤다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서울 63빌딩은 지하 3층, 지상 60층의 건물로 높이가 274m다. 지금은 같은 여의도에 건설된 서울국제금융센터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63빌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초고층 건물이다(2016년 8월 현재 4위). 이런 초고층 건물을 철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건물을 잘게 부수거나(파쇄 공법), 절단해서 옮기는 방법(절단 공법)이다. 각각의 공법은 다시 중장비를 이용하는 기계식 공법과, 폭약을 이용하는 발파식으로 나뉜다. 63빌딩을 예로 들어 초고층 건물의 해체법을 알아보자.
건물을 해체하는 공법을 결정할 때는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는 건물이 세워진 곳의 지리적인 조건이다. 해체해야 할 건물과 그 주변의 다른 건물과의 거리를 고려해야 한다. 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63빌딩의 경우 수많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경우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법을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 요소는 건물의 구성요소와 구조형식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인지 철골조 건물인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철근 콘크리트는 콘크리트 속에 강(steel)으로 된 철근을 넣은 건설재료다. 반면 철골조 건물은 철골과 강판으로 이뤄져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선택한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용 건물은 방마다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간에 콘크리트 벽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다. 반면 사무실 임대를 목적으로 한 건물은 철골조 건물이 많다. 사무실은 벽이 많이 필요 없고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하면 구조물의 덩치가 너무 커지게 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발파 공법을 이용해 해체하고 있다.
발파 공법을 사용할 경우, 시간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발파해 주변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화약류 vs 절단기, 어떤 것을 선택할까
대부분의 초고층 건물은 철골 구조다. 63빌딩 역시 마찬가지다. 철골조는 파쇄 공법을 적용할 수가 없다. 콘크리트와 달리 철골은 잘게 부수기 힘들기 때문이다. 높이가 200m나 된다는 점도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때문에 63빌딩은 무조건 절단 공법으로 해체해야 한다.
건물을 절단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화약을 이용한 발파 방식이 있고, 전동절단기나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기계식 절단 공법이 있다. 기계식 절단 공법은 철골조 구조부재를 부분부분 절단한 뒤, 크레인으로 절단된 철골을 지상에 내린다. 소음이 작고 진동이나 분진이 적다는 장점은 있지만 문제도 있다. 초고층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까지 중장비를 올리는 것이 까다롭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200m 가량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데 쓰는 시간 때문에 공사 기간이 길어진다.
화약을 이용해 건물을 절단할 수도 있다. 일부 층만 발파해 붕괴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계식 절단 공법에 비해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초고층 건물은 자체 중량이 크기 때문에 많은 층을 발파할 필요는 없다. 지하층과 1, 2층을 발파층으로 정하고, 그 이상의 층에 대해서는 4~5층 간격으로 발파하면 된다. 대략 15개 층만 발파해 전체 건물을 붕괴시킬 수 있다.
이렇게 건물을 절단시키는 데 사용하는 폭약은, 많이들 떠올리는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라 ‘성형 폭약(shaped charge)’이라는 특수폭약이다. 성형 폭약은 길다란 직육면체 혹은 원통형의 화약 덩어리로, 밑면이 움푹 파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움푹 파인 곳에는 금속이 부착돼 있다. 기폭 시 금속이 파괴되면서 금속의 미립자가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금속 제트(jet)가 발생한다. 63빌딩과 같은 초고층 건물의 경우 주변의 진동을 줄이기 위해 발파구역을 세분화하고 구역 간에 미세한 시차를 두는 작업을 한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소음과 진동, 분진의 범위다. 초고층 건물에 중장비를 이용한 해체공법을 적용하면 소음과 분진이 너무 멀리까지 퍼진다. 따라서 기계식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해체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건물 외부 전체에 가설 비계를 설치해야 한다. 철거 현장을 보면 건물 외벽에 푸른색의 방충망 같은 것이 설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가설 비계다.
초고층 건물의 경우 높은 곳에서 철거한 잔재를 아래로 떨어뜨릴 때 낮은 건물보다 진동의 세기가 더 세게 발생할 수 있다. 지반조건이 양호하지 않은 지역이라면 진동에 대한 대책이 더욱 중요해진다. 63빌딩이 세워진 여의도는 지반이 단단한 편이 아니다. 더구나 63빌딩에서 270m 가량 떨어진 곳에는 250세대가 사는 아파트도 있다. 진동에 대한 대책 없이는 인명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대책이 필요하다.
옆으로 쓰러지진 않을까
초고층 건물이 철거 도중에 옆으로 쓰러지진 않을까. 재난 영화만 봐도 도미노 쓰러지듯 건물이 쓰러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부러 옆으로 밀거나 쓰러뜨리는 방법을 적용하지 않는 한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건물 자체의 중량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2001년에 일어난 9·11 테러를 생각해보면 옆으로 쓰러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는 최고 높이가 526m에 달한다. 당시 비행기 두 대가 빌딩을 공격했는데, 한 대는 시속 790km로 제1세계무역센터의 93층과 99층 사이로, 다른 한 대는 시속950km로 제2세계무역센터의 77층과 85층 사이로 돌진했다. 당시 충돌한 비행기 위로 약 30개층이 아래층을 짓누르는데도 빌딩은 옆으로 쓰러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붕괴했다. 바람이나 충돌에 의해 좌우로 움직이는 횡력보다 중량에 의한 축력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철거는 모든 역학적 균형을 고려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옆으로 쓰러질 확률은 더 적다. 만약 한쪽만 발파를 하고 다른 쪽은 하지 않는다면 옆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 즉, 기술적인 문제로 화약이 제대로 폭발하지 않으면 순간 건물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기우뚱하게 낙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요즘 화약류의 생산기술이 워낙 발달해 있어서 이 역시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해체 공법도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모든 공법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해체하는 탑다운(Top-Down) 공법이었지만, 반대로 아래부터 해체하는 컷앤다운(Cut and Down) 공법도 있다. 일본의 건설회사 가지마(kajima)가 제안한 것으로, 2008년 가지마 본사 빌딩 해체 공사에 실제 적용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로 획기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초고층 빌딩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바람의 하중(풍하중)을 많이 받는 초고층 빌딩의 경우 하부가 모두 잘린 상태에서 바람이 크게 불면 옆으로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컷앤다운은 아래 기둥을 자르는 게 핵심인데 위에서 누르는 하중은 잭이 견디겠지만 좌우로 흔들리는 측면하중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람이나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내진 보강 공사를 한 뒤에 철거 작업을 하지만, 그 작업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초고층 건물은 건물의 사용 용도에 따라 구조가 다른 경우가 많다. 롯데월드타워만 해도 사무실로 사용하는 하부와 호텔로 사용하는 상부의 구조가 다르다. 즉, 위와 아래의 무게 중심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컷앤다운 공법은 지지 기둥을 잘라야 하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달라지면 측면붕괴의 위험성이 있다.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해 수십 년 뒤 63빌딩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철거할 방법은 없을까. 많이 거론되는 꿈의 기술은 레이저광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현재로서는 건물을 절단하려면 절단기를 이용하거나 폭약을 이용해야 하니, 여기서 발생하는 소음은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레이저광을 이용해 절단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절단 시 발생하는 많은 폐기물(슬러지)도 줄일 수 있다. 레이저광이 실현된다면 원격으로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작업자의 안전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건물 절단에 쓸 수 있을 정도의 출력을 갖는 레이저광은 개발되지 않았다.
교량 철거에는 인양 과정이 필수
높이를 줄였으니, 이제 덩치를 줄일 차례다. 도시를 잇는 다리 역시 철거 방법은 건물 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강이나 바다 위에 있는 다리는 해체 공법이 제한적이다. 교량은 기초 구조와 기초 위에 세워진 수직의 교각, 그리고 차량과 사람이 통행하는 상판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부위별로 해체방법을 다르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 해체 순서는 교량 상판, 교각과 교대, 그리고 기초부위로 탑다운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각이나 교대는 대부분이 콘크리트다. 교각을 부수는 데 발파공법을 이용할 수도 있고 절단기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발파로 파쇄하면 콘크리트 잔재가 수중에 가라앉아 수거하기가 쉽지 않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화약 성분들은 그 자체로 강이나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고, 강이나 조류의 흐름을 바꿔 여러 환경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절단 뒤 인양이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절단공법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부산 영도대교의 해체 장면(지금은 확장시켜 준공됨).
건물의 해체와는 다르게 정확히 절단돼 있는 다리의 단면이 눈에 띈다.
절단 공법에는 인력해체와 발파해체가 있다. 한강철교의 경우 서울 중심에 있기 때문에 소음 문제가 있는 발파보다는 인력해체가 좀 더 적합하다. 사람이 직접 트러스를 절단하는 공법으로, 절단된 트러스 구조물을 육상으로 운송할 바지선이 필요하다. 바지선에는 사람이 트러스를 절단하는 동안 구조물을 잡아줄 크레인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크기가 커야 한다. 트러스 해체가 끝나면 상판과 교각을 해체하는데, 방법은 건물과 비슷하다.
철거란 없다, 재활용만 있을 뿐
터널은 어떨까. 터널은 철거를 하지 않는다. 장수호 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안전한 곳이 터널일 정도로 안정적인 구조물”이라며 “오히려 철거를 하면 터널 상부구조가 무너져 내리면서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터널도 건축물이기 때문에 수명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수백 년 정도로 길다. 때문에 터널을 철거한 사례는 아직 없다.
노선이 바뀌어 용도가 사라진 폐 터널은 터널의 특징을 살려 다른 목적으로 이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폐 터널 92개 중 16곳이 재활용되고 있다(2015년 ‘매일경제’ 조사 결과). 재활용되는 터널은 자전거 길이나 조명건축물을 전시하는 용도로도 쓰이지만, 무엇보다 와인저장고로 많이 쓰인다. 터널의 서늘한 기온을 이용한 것이다. 1905년 경부선 철도로 개통됐지만 급한 경사 때문에 1937년 폐 터널이 된 경북 청도군의 남성현 터널은 감와인 저장 창고로 쓰인다. 경남 사천시의 솔티 터널 역시 와인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또 하나 유용한 방법은 데이터 센터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대용량 서버와 저장 장치, 네트워크 장치 등 여러 전자 기기가 모여있는 데이터 센터는 서늘한 온도가 생명이다. 실제 데이터 센터의 내부 온도는 20°C 안팎으로, 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서버 운영에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추가로 사용한다. 별다른 장치 없이도 12~17°C를 유지하는 터널은 데이터 센터를 설치하기에 유리한 장소다. ‘위키리크스’는 스웨덴의 지하 벙커에 데이터 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폐 터널은 아니지만 유사한 구조를 가진 곳이다. 디지털 자산 전문은행인 SIAG는 스위스 지하 벙커에 데이터 센터를 만들었고, 미국과 영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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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 국내 최장 해저터널 건설현장을 가다
PART 3. 거대 도시가 사라지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