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 년 전,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당황했다. 손상된 조직이나 장기를 재생시키려고 동물의 몸 안에 줄기세포를 넣었는데, 하라는 분화는 안 하고 대신 예상치 못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암세포에 달라붙지 않나, 주위 세포를 튼튼하게 만들지 않나, 지금도 하나둘 밝혀지고 있는 줄기세포 능력은 실로 다양하다. 그야말로 우리 몸의 ‘공병대’였다.
2006년 미국 번햄메디컬연구소의 프란츠 조세프 뮐러 박사는 줄기세포의 호밍 기능을 유전자 치료에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뇌종양에 걸린 생쥐에게 신경줄기세포를 주사해 봤더니 줄기세포가 종양 부위를 향해 저절로 이동하는 현상을 관찰한 뒤였다. 암세포는 급하게 자라는 과정에서 성장인자를 많이 분비한다. 신경줄기세포는 바로 여기에 반응해 자기도 모르게 암세포를 향해 이끌려 간 것이다.
혹시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오인해 공격하지 않을까. 원리상 유전자조작 줄기세포가 분열이 활발한 세포(모낭세포, 정자세포 등)나 손상된 세포를 따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암세포는 일반세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인자를 많이 분비한다. 특히 혈관성장인자는 수백 배 수준으로 나오는데, 이런 점을 이용하면 암세포만 정밀타격 하는 ‘스마트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은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진 말기 암 환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수술로 제거할 수 없는 작은 암세포를 줄기세포를 이용해 구석구석 공격하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김승업 교수와 함께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았다. 생쥐에 사람의 암세포를 이식한 뒤 4주를 기다린 다음 유전자 조작 줄기세포와 폭탄(5-FC)을 넣어주었는데, 암의 크기가 절반 이하로 급격히 작아졌다. 현재까지 폐암을 비롯해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간암, 자궁내막암 세포를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에 생긴 암세포도 줄기세포가 골라낼 수 있는지 현재 연구 중이다.
미국 만델고혈압연구센터 마시밀리아노 그니치 박사도 여기에 의문을 품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심근세포가 죽은 생쥐에게 성체줄기세포를 넣어보니 심장 기능이 상당히 개선됐는데, 이상하게도 새로 생성된 심근세포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니치 박사는 성체줄기세포가 세포 분화 말고 다른 역할도 한다고 생각했다. 2008년 그니치 박사는 성체줄기세포가 사이토카인 성장인자를 분비해 세포를 보호하고 혈관을 형성한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바로 줄기세포의 ‘주변세포 영향효과(파라크라인 효과)’다.
지난 5월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주명수 교수와 울산대 의대 신동명 교수팀은 성체줄기세포가 다른 줄기세포를 불러들이는 과정을 관찰해 ‘줄기세포와 발생’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람의 지방에서 얻은 성체줄기세포를 과민성 방광을 가진 쥐에 넣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2~4주가 지나자 방광에서 신경세포가 10배 이상 재생돼 손상부위를 회복시켰다. 재미있는 점은 재생된 신경세포가 바깥에서 넣어준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처음 넣어준 줄기세포는 곧 사그라들고, 대신 주변에서 돌아다니던 재생능력 좋은 간세포들이 몰려들어 복구에 참여했다. 줄기세포가 ‘오지랖 넓게’ 손상된 부위에 필요한 세포들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은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반대로 면역력이 과도해졌을 때는 줄기세포가 브레이크를 당긴다. 상처 부위로 들어온 외부 침입자를 막기 위해 면역세포는 유해인자를 분비하는데, 이런 물질이 멀쩡한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기도 한다. 중간엽줄기세포는 유해인자 분비를 억제해 조직손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세포자살을 막는다. 류마티스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은 B세포나 대식세포 같은 면역세포의 기능이 너무 과해서 생긴다. 이 때 중간엽줄기세포는 염증세포를 줄여 면역반응을 낮추고, T림프구나 B림프구를 통해 면역세포의 생산·분화·성숙·활성화에 모두 관여한다.
중간엽줄기세포는 요즘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경선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작년 8월 제대혈에서 분리한 중간엽줄기세포를 쥐에 이식해 장에 염증이 만성으로 생기는 자가면역질환 ‘크론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75p 그림). 아직 동물실험 단계지만, 이런 연구가 쌓이면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면역억제인자를 분비하는 중간엽줄기세포는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갔을 때 면역공격을 피할수 있어 장기이식에 응용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