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모지 화성 거쳐 금성 지옥으로
지표면의 모습이 변한다. 데이비드 캐틀링 미국 워싱턴대 천문학과 교수에 따르면, 놀랍게도 그 풍경은 대기가 적은 수성이나 화성이 아니라 대기층이 두터운 금성과 비슷해진다. 우선 수소가 탈출해 사라진다. 이에 따라 수소와 결합해 물이 돼야 할 산소가 홀로 남아 암석 속 철과 결합한다. 지구의 풍경은 지금보다 더 붉어진다. 일부 산소는 탄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된다. 온실효과가 일어나 온도가 오르고 바다가 증발한다. 증발한 물은 강한 자외선에 산소와 수소로 바뀌고, 두 원소는 다시 각각 지구를 탈출하거나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물이나 얼음은 지금의 화성처럼 극지방이나 지하에만 남고 사라진다. 건조해진 지면과 달리, 대기는 습하고 두터워진다. 바다가 증발한 수증기와, 미처 탈출하지도 못하고 물이나 암석에 녹아들지도 못한 이산화탄소가 계속 누적된다. 결국 지구는 펄펄 끓는 지상과 무겁고 끈끈하며 두꺼운 대기층으로 이뤄진 환경으로 변한다.
››› 태양 품에 안기는 날 올까
태양이 최고 밝기인 1.8배 밝아질 때, 태양의 표면 온도는 최고점을 지난 뒤다. 하지만 크기가 40% 가까이 커졌고, 그만큼 뜨거워진다. 지구는 생명이 살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새롭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지역(너무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일명 ‘골디락스 영역’)은 지금의 화성 궤도쯤으로 바뀐다.
태양이 주계열성을 벗어나 더욱 밝은 적색거성이 되면 어떨까(70억 년 뒤). 500만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약 256배 크기로 급속도로 팽창하며, 밝기는 지금의 수천 배가 된다. 현재의 지구 궤도는 물론, 화성 궤도 코앞까지 이르는 크기다. 다행히 태양은 질량도 잃기 때문에 중력이 지금의 3분의 2 수준으로 낮아지고, 행성들은 지금보다 먼 궤도를 돌게 된다. 지구도 멀어져 당장 태양 안에 빠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안심하는 것도 잠시다. 회전을 멈춰버린 거대 태양은 행성의 공전도 함께 늦춘다. 원심력을 잃은 지구는 중심 방향으로 천천히 끌려들기 시작하고, 결국 태양의 이글거리는 품에 안기고 만다.
뜨겁고 건조하면서도 습기가 가득하고, 공기가 빠져나가는데도 대기는 점점 빽빽해지는 이상한 행성이 된다. 이 과정은 금성이 지금의 모습이 된 과정과 비슷하다.
››› 날마다 분수 축제 ‘지하 워터월드’
25억 년 전 화성이 그랬듯(87쪽 참조) 물이 탄산염이나 점토층을 모두 뚫고 지하로 스며든다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대기는 건조해지고 기상 현상도 사라진다. 지표의 모든 풍화 작용이 멈춰 화성처럼 과거의 지형이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수증기가 사라지므로 온실효과가 줄어들어 평균온도는 떨어진다.
해양지각은 대륙지각보다 얇기에 만약 물이 지각 아래까지 들어간다면 맨틀 상부와 닿을 것이다. 고온의 맨틀 때문에 수증기가 된 물이 지표면의 약한 부분을 뚫고 분출한다. 현재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의 남극에서는 얼음과 물이 분수처럼 수십m 높이로 치솟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차가운 대기에 닿아 물은 그대로 얼음 알갱이가 돼 지상에 흩뿌려진다. 나오는 양이 많다면 분출 지역을 중심으로 지각 표면에 얇은 얼음 층이 생긴다. 외부에서 바라본 지구는 건조하고 붉고, 부분적으로 희게 반짝이는 얼음이 덮인 화성 같은 모습이 된다.
››› ‘납작 동물, 키다리 식물’의 기묘한 세계
생명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에서 중력이 지구의 세 배인, 온통 금으로 된 가상의 행성을 상상하고 있다. 중력이 세 배이므로 생물은 중력을 지탱하기 위해 굵고 단단하고 납작해진다. 큰 몸집을 지닌 동물은 자신의 몸무게를 이기기가 쉽지 않아 살 수가 없다. 반대로 중력이 작은 행성은 지구보다 하늘하늘 키도 크고 덩치도 큰 생명체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효율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죠프리 웨스트 미국 센타페이연구소 박사는 1997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동물의 몸집이 커질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에너지물리학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예를 들어 코끼리가 기니피그에 비해 몸집이 1만 배 크지만, 에너지는 1000배밖에 더 필요하지 않다.
이유는 상대적인 혈관 크기. 몸집이 커도 모세혈관 크기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몸 속 구석구석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효율이 높아진다. 중력이 강해지면 몸집을 키우는 데 제한이 많으므로 이런 법칙도 무용지물이다. 현재의 지구에 비해 효율성이 높은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중력이 약한 행성이라고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은 아니다. 중력이 아주 약한 행성은 기체를 붙잡는 능력이 떨어진다. 달이나 수성처럼 대기를 잃어 애초에 생명과는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도 높다.
››› ‘컬러풀 지구’의 탄생
지구의 ‘색’이 바뀐다. 검은 열대우림, 보라색 대나무 숲 등, 식물의 색 자체가 달라져 있다. 낸시 키앵 NASA 고다드우주연구소 연구원이 2007년 ‘우주생물학’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구에 도달할 때 태양빛에는 파장이 560~590nm인 노란 광자가 가장 많다. 하지만 오존과 수증기 등이 일부 파장을 흡수해 실제로 지상에서는 빨간색인 685nm 파장이 가장 많이 도달한다. 현재 지구의 식물은 여기에 적응해 이 파장의 빛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엽록소(클로로필 a와 b)를 지니고 있다.
만약 태양이 밝은 푸른 빛을 내는 별이고 생명이 태어날 수 있게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하자. 지상에서 가장 많이 측정되는 빛의 파장은 450nm 정도가 될 것이다. 이 파장은 푸른 빛이다. 이런 상태의 지구에서 식물은 강한 푸른 빛을 반사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색소를 지닐 수 있다. 이 색소는 청록색과 비슷한 색을 띠기 때문에 이때의 식물은 산뜻한 맛이 없는 음산하고 침침한 모습이다.
태양이 적색왜성이 됐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별은 에너지가 부족하다. 아무리 거주가능 지역에 위치한다고 해도 태양에너지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식물은 빛을 최대한 받아들여야 한다. 반사되는 빛이 없으므로 검은 빛을 띤다. 적색왜성 초기라면 자외선이 강렬하다. 지구가 이런 별을 돌고 있다면, 식물은 육상에 살지 못한 채, 바다 속에서 조용히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더웠다 추웠다 정신 없는 지구
다연성계의 행성은 물리학적으로 오직 몇 가지 한정된 안정 궤도만을 돌 수 있다. 두 개의 별이 도는 쌍성의 경우, 둘 중 하나의 항성(별)만을 도는 행성(이를 ‘S 타입’이라고 한다)과 두 항성의 바깥을 도는 행성(이를 ‘P타입’ 또는 ‘쌍성주위행성’이라고 한다) 두 가지가 있다. 쌍성 태양계의 지구도 이 가운데 하나의 궤도를 택할 것이다.
문제는 항성의 온도가 서로 달라 공전 위치마다 온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구는 더웠다 추웠다 정신 없이 환경이 바뀐다. 2009년 세계 최초로 P타입 쌍성계 행성을 발견한 이재우 한국천문연구원 창의선도과학본부 박사는 “우리가 발견한 처녀자리 행성의 경우, 두 별이 각각 3만℃와 3000℃였다”고 말했다. 쌍성의 공전 주기와 행성의 공전 주기가 다를 때 차이는 더 커진다.
이 박사는 “처녀자리 쌍성은 2.5시간마다, 행성은 9~18년마다 공전을 한다”며 “행성에서는 거의 10여 분마다 온도가 극단적으로 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석력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구에서 받는 달과 태양의 중력이 조석력이다. 조석력이 강한 행성이나 위성에서는 행성 내부의 물질을 움직여 마찰열을 일으킬 수 있다. 마치 빨대로 스무디를 저으면 얼음 알갱이끼리 부딪혀 내부 온도가 올라가 녹는 것과 같은 원리다. 실제로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는 근처의 형제 위성 디오네의 조석력 때문에 내부 온도가 수시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현상은 지각운동도 강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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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6가지 가정으로 예측해 보는 ‘만약에 지구가’
Part 2. 나만의 지구를 설계한다면? '지구설계사무소'
Part 3. 우리은하가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한다면?
Epilogue. 완벽한 지구는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