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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생물학계에서 큰 일이 있었다.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팀은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라는 세균의 전체 게놈을 실험실에 있는 화학약품으로 합성했다. 연구팀이 합성한 게놈(synthetic genome)을 세균(원래 게놈은 미리 제거했다)에 다시 넣자 그 세균은 생명활동을 계속 유지했다. 합성게놈도 똑같이 기능한다는 것을 밝힌 결과다. 언젠가 게놈을 합성할 수 있을 거라고 추측은 했지만 이 정도로 빨리 그날이 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생물의 구성요소를 화학적으로 만든 다음 마치 레고처럼 하나의 생명체를 조립하는 연구 분야를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고 한다. 구성요소끼리 어떻게 이으면 어떤 생물체가 나오는지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양한 유전자 중에서 알맞은 것을 선택해 이리저리 끼우면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생체회로를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2007년 하버드 의대 연구자들은 DNA 조각으로 기억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구성해 기억회로를 합성해 내기도 했다. 더 많은 부품을 연결하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자연계에 없는 복잡한 생물시스템이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야말로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작동이 가능한 생물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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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합성생물 만들기
벤터 박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에게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합성생물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신세틱 지노믹스’라는 회사를 설립해 햇빛과 이산화탄소만으로 바이오연료를 얻을 수 있는 합성생물을 개발 중이다. 광합성 회로를 이용한 ‘에너지 공장’인 셈이다. 벤터 박사 외에도 많은 과학자들이 합성생물로 바이오 디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합성생물이 지구온난화와 석유고갈 위기를 극복할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합성생물을 이용하면 기존 화학공정보다 더 정밀하게 화합물을 만들 수 있어 특히 치료제 개발에 유용하다. 이 방법으로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는 이미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단계다. 기존 말라리아 치료제의 재료인 ‘아르테미니신(arteminisin)’은 개똥쑥 같은 식물에서 조금씩 추출한다. 그래서 말라리아 치료제의 가격은 비쌀 수 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말라리아로 많은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지만 이들에게 약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제이 키슬링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아르테미니신을 대량으로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는 먹이 속에 들어있는 당으로 아르테미신을 만드는 생물기계를 만들기로 했다.
연구팀은 우선 당에서 만들어진 물질끼리 붙여 탄소 수를 늘렸다. 이제 이 물질이 아르테미신으로 변하는 긴 생화학 반응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각각의 과정을 맡는 유전자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조사했다. 그 결과 대장균, 효모, 개똥쑥에서 각 과정에 알맞은 유전자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유전자를 차례로 연결해 생체회로를 합성했다.
호르몬, 인슐린 같이 한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은 그 유전자만 대장균에 넣으면 되지만 여러 유전자가 개입하는 복잡한 회로는 따로 게놈을 합성할 수 밖에 없다. 이 생체회로를 넣으면 효모는 먹이를 먹고 아르테미신을 생산한다. 이렇게 새 치료제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기존의 10%정도다. 새 치료제는 내년에 시판될 예정이다.
항생제인 ‘폴리케타이드’와 빈혈치료제 ‘에리스로포이에틴’, 암세포를 공격하는 항암세균도 생체회로를 합성해 만들고 있다. 또 합성유전자를 쓰는 DNA 백신도 개발돼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과학자들은 오염물질의 냄새를 맡아 경보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세균, 자랄 때는 민트향을 내다가 죽으면 바나나 향을 내는 세균, 항암물질인 ‘레스베라트롤’을 만드는 맥주용 효모 같은 다양한 합성생물을 만들고 있다. 모두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생물이다.
하버드대의 분자유전학자 조지 처치 교수는 합성생물을 이용해 ‘원세포(protocell)’를 연구 중이다. 원세포는 간단한 화합물로 구성된 유기체로 미생물보다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다. 마치 건물을 짓듯이 외관을 건설하고 안을 채우는 방식으로 조립한다. 우선 세포막의 성분인 인지질로 작은 주머니 형태인 ‘리포좀’을 만들고 여기에 염기를 하나씩 붙여 만든 합성게놈을 넣는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원세포는 DNA 복제와 번식 같은 최소한의 생명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이 과정 중에 DNA 염기서열에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도 한다. 원세포는 생명의 기원과 함께 진화 과정 연구에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합성생물학의 중요성을 인식해 올해부터 ‘지능형 바이오시스템 설계 및 합성연구 사업단’이 출범했다. 사업단은 합성생물을 만들어 바이오시밀러와 유용한 화합물을 생산할 예정이다. 합성생물은 미생물에 국한돼 있지만 점차 동물과 식물까지 그 영역이 넓어져 새로운 작물을 만들고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일 것이다.
합성생물, 아무나 만들 수 있다?
합성생물학은 최근 ‘스스로하기 생물학(DIYbio, DIY = Do it yourself)’을 통해 관심을 받고 있다. 합성생물의 재료인 다른 생물의 유전 정보가 모두 인터넷에 공개돼 있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장비도 저렴한 가격으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국제 합성생물학 경진대회인 아이젬(iGEM)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3년 MIT의 강의로 시작한 것이 올해는 세계 170여 개 팀이 참가하는 큰 규모의 대회가 됐다. 처음에 아이젬은 연구경험이 많지 않은 대학생으로 팀의 참가자격을 제한했지만 최근에는 고등학생도 참가할 수 있게 대회의 문턱을 더 낮췄다. 숫자를 세는 세균, 중금속 오염된 물을 걸러주는 생물필터, 타이타닉 호를 건져 올리는 미생물 등 기발한 합성생물을 만나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해 올해는 고려대, 울산과기대, 충북대, 카이스트 총 4팀이 참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필자가 지도한 고려대 팀이 은메달을 수상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합성생물의 이름은 ‘캡슐캅’. 비소, 아연, 카드뮴 같은 중금속을 감지하면 각각 초록색, 빨간색, 갈색으로 변하는 미생물이다. 각 중금속을 감지하는 유전자와 색이 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이은 회로를 제작해 다시 미생물 안에 넣은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생물을 캡슐 속에 넣어 휴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바닥에 고인 물이 중금속에 오염된 줄 모르고 그냥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 캡슐을 물에 풀면 물속에 중금속이 포함돼 있는지 측정할 수 있다. 우리가 직접 만든 합성생물이 여러 사람을 구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독자들은 어떤 생물을 만들고 싶은지. 차세대 게놈 클럽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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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웰컴 투 게놈 클럽
Part1. 동물 1만 종 게놈 해독한다
Part 2. 게놈 클럽 신분증 직접 만들어보다
Part 3. 합성생물, 차세대 게놈 클럽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