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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나 돼지나 몸은 약 3분의 2가 물이고 나머지는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로 이뤄져 있다. 최근까지도 당뇨병 환자들이 맞는 인슐린 주사의 인슐린은 돼지에서 추출해 그대로 썼다. 그럼에도 사람을 다른 동물과 차이 나게 하는 이유, 즉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도‘도덕적 충격’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의 능력 때문이다. 이런 능력은 아이가 자라면서 저절로 습득된다. 사람은 ‘언어 본능’을 갖고 태어나는 셈이다.
유전적으로 말 더듬는 사람들
가계를 분석해 특정 형질(키, 성격, 질병 등)의 유전적 특성을 밝히는 집단유전학자들 가운데 몇몇이 1990년 ‘KE’란 약칭으로 불리는 가계에 주목했다. 구성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언어장애를 보였는데, 3대에 걸친 분석결과 이 장애가 우성유전이고 남녀 차이가 없어 보통 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의 변이 결과라고 추정했다. 그 뒤 연구자들은 KE 가계의 ‘유전자 사냥’에 뛰어들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있는 사람들의 유전체를 비교해 변이가 있는 유전자를 찾는 일이었다.
1998년 이 유전자가 7번 염색체의 짧은 다리 쪽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2001년 마침내 유전자의 실체가 밝혀졌다. ‘FOXP2’로 이름 지어진 이 유전자는 아미노산 715개로 이뤄진 전사인자를 암호화하고 있었다. 전사인자란 다른 유전자의 앞부분에 달라붙어서 그 유전자가 발현되도록, 즉 전사되도록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이다. 전사인자 하나는 보통 수십~수백 개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FOXP2 유전자 하나에 변이가 있는 사람들은 입과 혀의 움직임이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내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문장이나 문법을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보통 네 살짜리 아이들도 이해하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쩔쩔맨다.
1. 매일 나는 플람해. 2. 어제 나는 __했다.
‘플람’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1번 문장을 토대로 2번의 ‘__’에는 ‘플람’이 올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런 ‘공식’을 처리하는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편 변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도 정상 유전자가 하나는 있으므로 정상 FOXP2 단백질이 절반은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언어장애가 나타나는 걸 보면 이 단백질은 매우 정교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유전자 쌍 모두 돌연변이인 경우는 어떻게 될까. 아예 말을 하지 못하게 될까.
KE 가계에서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 유전자가 완전히 고장 나면 태아발생 과정에서 죽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FOXP2는 언어 유전자 이상의 기능을 하는 게 아닐까. 즉 동물의 진화에서 뇌의 전반적인 회로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사람에서 언어회로를 만드는 역할을 추가로 맡은 게 아닐까.
그 뒤 연구자들은 다른 동물의 유전체에서 사람의 FOXP2에 해당하는 유전자를 찾았다. 예상대로 FOXP2 유전자는 사람뿐 아니라 침팬지, 쥐같은 다른 포유류에도 존재했다. 그렇다면 사람에서만 언어능력과 관련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스반테 파보 박사팀은 여러 종의 FOXP2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했다.
사람 유전자 받은 쥐, 찍찍 소리 바뀌어
좀처럼 변화하지 않던 유전자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갑자기 두 곳이나 바뀐 것이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자리는 단백질이 작용을 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로 추정됐다. 결국 이 돌연변이로 인해 사람의 FOXP2는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됐고 그 결과 사람 태아의 뇌조직은 독특한 회로를 갖추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 결과가 발표되자 흥미로운 카툰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돼지를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저 녀석이사람의 유전자를 받은 돼지야”라고 말하자 옆에서 지켜 보던 돼지가 “저녁 메뉴가 뭐죠? 설마 전 아니겠죠”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돼지까지는 몰라도 침팬지의 FOXP2 유전자를 사람의 유전자로 바꿔치기하면 이런 엽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침팬지의 유전자를 조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답을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올해 5월 29일자 생명과학 저널 ‘셀’에 쥐를 대상으로 사람의 FOXP2 유전자를 바꿔치기한 실험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사람의 유전자를 받은 쥐는 초음파 영역에서 내는 ‘찍찍’거리는 소리가 바뀌었고 뇌 기저핵 부분의 신경회로가 변화됐다. 바뀐 아미노산이 실제로 단백질의 기능을 변화시켰음을 암시하는 결과다.
기저핵은 대뇌반구의 안쪽과 밑면에 해당하는 부위로 이곳의 회로는 언어처리와 관련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 책임자인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 류학연구소 볼프강 에나드 박사는 “이 연구는 인류의 진화에 관련된다고 보이는 단백질을 동물 모델에 치환한 최초의 사례”라며“여기서 관찰한 현상은 FOXP2 변이가 인류의 언어 능력 획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 언어 능력 왜 떨어졌을까
그렇다면 사람의 FOXP2 유전자를 정말 ‘언어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 걸까. 2007년 네안데르탈인의 FOXP2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이 현생인류의 것과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만일 FOXP2 유전자가 언어 발달을 총괄한다면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와 비슷한 언어능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약 2만 4000년 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힘도 셌고 뇌용적도 더 컸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현생인류에 비해 의사소통, 즉 언어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화석을 비교해 보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발성기관의 해부학적 구조에서 차이가 난다. 즉 후두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혀와 인두의 미묘한 조절을 통해 자음과 모음으로 변형돼야 하는데, 네안데르탈인은 인두와 후두가 너무 가까이 있고 혀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다. 그 결과 이들이 내는 소리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들이 옹알거리는 걸 보면 알겠지만, 사람은 말을 하려는 본능적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도 빵을 굽거나 맥주를 만들거나 글을 쓰려는 본능적인 경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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