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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날아라 고구려 공룡

고생물 역사 뒤흔든 만주 화석

옛 고구려 땅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시헤툰(四合屯) 지역은 지난 1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석이 산출된 곳이다. 이곳은 원시깃털공룡인 중화용조가 1996년 발견돼 ‘네이처’ 1998년 1월호에 발표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중화용조는 공룡이 깃털을 가졌다는 최초의 증거였으며, 새가 공룡에서 진화했다는 이론에 쐐기를 박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이곳에서 중화용조를 시작으로 프로트아르케옵테릭스(Protarchaeopteryx), 카우딥테릭스(Caudipteryx) 등 더 진화된 깃털을 가진 깃털공룡이 잇따라 발견됐고 마침내 1999년과 2000년 현생 새의 비대칭 깃털을 가진 신오르니토사우루스(Sinornithosaurus)와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가 발견됐다. 이들은 깃털이 공룡에서 단계적으로 진화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깃털이 공룡에게 매우 보편적인 특징임을 입증했다.

필자는 이러한 발견이 가지는 의미를 과학동아 2002년 5월호에 ‘깃털공룡이 말하는 조류 진화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글로 소개했다. 2002년 이후 현재까지도 랴오닝성 지역에서 더 놀랍고 새로운 화석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1998년 이후 네이처에 발표된 고생물학 논문의 약 80%가 이곳에서 발견된 화석들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랴오닝성의 학술적 중요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필자는 2002년 이후 이곳에서 발견돼 공룡의 진화사를 뒤흔든 중요한 화석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몽골에서 발견된 대형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루스. 공룡의 왕 티라노사우루스의 조상은 아시아에서 기원했다.


깃털 달고 사냥 나선 육식공룡

고구려 땅에서 발굴된 가장 흥미로운 공룡 화석은 2003년 발표된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 gui)다. 미크로랍토르는 전체 길이가 77cm로 가장 작은 육식공룡에 속한다. 놀랍게도 이 공룡의 뒷다리에는 비행성 비대칭 깃털이 발달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고생물학계는 새가 어떻게 하늘을 날게 되었는가에 대해 두가지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었다. 하나는 땅 위를 빠르게 달리다 하늘을 날았다는 ‘이륙’(ground-up)설과 공룡이 나무 사이를 날다람쥐처럼 활공하다 날게 되었다는 ‘활강’(tree-down)설이다.

미크로랍토르는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공룡의 깃털은 분명 활공에 적합하지 땅 위를 빠르게 달리기 위한 구조는 아니다. 뒷다리의 깃털은 빠른 달리기를 방해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미 있는 공룡은 2004년 발견된 원시 티라노사우루스류인 딜롱(Dilong paradoxus)의 화석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후기 백악기 말에 북미대륙을 지배했던 육식공룡이다. 이들의 조상은 아시아에서 기원했다. 몽골의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는 티라노사우루스보다 조금 일찍 살았고 이들의 조상은 태국, 일본, 중국에서 발견된다.

흥미로운 것은 딜롱이 원시깃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깃털 달린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영화 ‘쥬라기공원’에 익숙한 일반인에게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룡학자들은 진화된 육식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가 깃털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추정해 왔다. 가장 원시적인 육식공룡에서도 깃털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에 모든 육식공룡이 원시깃털을 갖고 있었다고 믿은 것이다.

딜롱의 발견은 이 예견이 맞았음을 보여준다. 딜롱의 몸은 원시적인 깃털로 싸여 있다. 그렇다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도 깃털로 덮혀 있었을까? 최소한 새끼 때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 공룡이 깃털을 발달시킨 첫 목적은 하늘을 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육식공룡은 변온동물이 아니라 항온동물이라는 주장이 많다). 몸 크기가 작은 새끼 티렉스는 얇은 솜털로 자기 체온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크기 12m의 어른 티렉스는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몸집이 큰 항온동물은 몸 안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것이 더 힘들다. 현생 포유류 중 가장 큰 코끼리가 털을 거의 갖고 있지 않는데다 귀로 부채질하며 자기 몸을 식히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77cm 크기의 육식공룡 미크랍토르. 이 공룡의 뒷다리에 비행성 비대칭 깃털이 달려 있다.


육식공룡의 피는 따뜻했다

공룡이 어떤 자세로 잠자는가를 처음 보여준 메이(Mei long)의 화석도 중요하다. 2004년 보고된 메이는 트로오돈류에 속하는 육식공룡인데 머리를 앞발 속에 넣은 채 화석이 되었다. 이 자세는 날개 안에 머리를 넣고 자는 현생 새와 너무나도 닮았다. 죽는 순간의 자세가 카메라에 찍힌 것처럼 화석으로 남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곳에서는 가능하다.

메이는 화석이 폭발하면서 화산재에 순식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메이가 잠자는 자세는 육식공룡이 항온동물이었음을 암시한다. 새가 열을 보존하기 위해 날개 밑에 머리를 집어넣는 습성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2001년 갑옷공룡도 발견됐다. 랴오닝고사우루스(Liaoningosaurus paradoxus)는 지금까지 발견된 갑옷공룡 중 가장 작아 전체 길이가 34cm에 불과하다. 2002년 아주 특이한 오비랍토르(Oviraptor) 종류도 발견됐다. 인시시보사우루스(Incisivosaurus gauthieri)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비랍토르와 달리 앞니가 아주 독특하게 발달해 있다. 이 공룡의 이름도 쥐처럼 발달한 앞니의 특징에서 지어졌다.

이 공룡의 연필 같은 앞니는 안쪽으로 매우 닳아 있어 이 공룡이 식물을 먹었음을 암시한다. 초창기에 우리는 오비랍토르를 알을 훔쳐 먹는 공룡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들의 뱃속에서 도마뱀의 잔해가 발견됨에 따라 작은 동물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제 이들의 조상은 식물을 먹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는 과거 수각류가 무조건 육식을 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수각류인 테리지노사우루스류와 인시시보사우루스를 통해 공룡이 다양한 서식지에서 다양한 먹이 습성을 갖고 있었다는 더 큰 열린 사고를 갖게 됐다.

지금까지 랴오닝성 지역에서 발견된 공룡을 살펴봤다. 이곳에 살았던 공룡의 친구들은 어땠을까.

익룡은 공룡과 함께 중생대를 구성하는 주요한 그룹이다. 공룡의 알과 알 속의 새끼 화석은 세계에서 많이 발견됐지만 최근까지 익룡의 알은 발견된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익룡이 알을 낳았는지 새끼를 낳았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랴오닝성은 놀랍게도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2004년 알 속에 부화되지 못한 채로 화석이 된 익룡의 새끼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태아의 뼈를 조사해본 결과 오르니토케이루스류에 속하는 익룡으로 이 뼈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분명 알껍데기였다. 연이어 발견된 또 다른 익룡알은 공룡알과 달리 거북알처럼 가죽질의 껍데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죽질의 알껍데기는 화석이 되기 어렵다. 이것이 왜 오랫동안 익룡의 알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다. 랴오닝성 화석지의 특수한 조건 때문에 익룡의 부드러운 알껍데기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알 속에서 부화되지 않은 채 죽은 익룡의 태아 화석은 다 자란 익룡 골격의 정확한 축소판이다. 이는 부화한 익룡의 새끼가 공룡이나 새처럼 미숙한 것이 아니라 조숙한 새끼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익룡은 부화되자마자 어미의 보살핌 없이 제 살길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랴오닝성의 화석지에서는 원시 새 화석이 깃털공룡이 발견되기 전부터 풍부하게 보고됐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공자새(Confuciusornis)로 이미 수백 개체가 발굴됐다. 공자새는 이빨 없는 부리를 가진 가장 오래된 새로 수컷과 암컷이 꼬리 깃털에 의해 확연히 구분된다. 공자새 외에도 다양한 원시 새들이 발굴됐다. 2002년 발견된 사페오르니스(Sapeornis)는 중생대에 발견된 새 중 가장 크며 제홀로르니스(Jeholornis)는 현생 새와 달리 공룡처럼 매우 긴 꼬리를 가졌고 뱃속에서 수십 개의 씨가 발견됐다. 중생대 새들이 열매를 먹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중생대는 파충류의 시대였지만 포유류의 긴 역사가 숨어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랴오닝성에서 2002년 보고된 에오마이아(Eomaia scansoria)는 태반을 가진 포유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태반류의 기원이 1억2500만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화석은 올해 1월 네이처에 발표된 레페노마무스(Repenomamus robustus)라는 포유류다. 이 화석의 뱃속에는 13cm 크기의 공룡 프시타코사우루스(Psittacosaurus)의 새끼뼈가 있었다.
 

랴오닝성에서 발견된 익룡알 화석. 새끼가 부화되지 못한 채로 알 속에서화석이 됐다.


공룡 잡아먹은 포유류

공룡시대의 포유류는 크기가 작고 많이 번성하지 않아 항상 생태계의 약자로 밤에 활동하는 보잘것없는 동물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개 정도 크기의 레페노마무스는 포유류가 매번 잡아먹힌 것이 아니라 때로는 포유류도 작은 공룡을 잡아먹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줬다. 중생대의 생태계도 오늘날과 같이 치열한 생존경쟁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발견이었다.

고등한 척추동물과 함께 발견되는 수많은 물고기와 양서류, 곤충 화석과 더불어 식물 화석도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르는 은행의 조상 화석이 발견되며,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속씨식물(꽃피는 식물)로 추정되는 아르케프루크투스(Archaefructus sinensis)가 발견됐다. 이는 꽃피는 식물이 얕은 민물가에서 처음 진화해 점차 육지로 퍼져나갔음을 암시한다.

이렇듯 엄청난 발견이 이뤄지고 있는 랴오닝성 지역은 도대체 과거에는 어떤 환경이었을까. 랴오닝성 화석지의 이시안(Yixian) 지층은 1억2500만년 전인 전기 백악기무렵 풍부한 동식물이 사는 숲과 호수에서 형성됐다. 기후는 따뜻하고 건조했으며 때로 주위에 화산이 분출하면서 시커먼 화산재가 하늘을 덮었다. 화산폭발에서 나온 유독 가스는 주위의 많은 동식물을 죽였다. 죽은 동식물은 화산재에 빠르게 묻히거나 연못 또는 호수 바닥의 고운 입자의 퇴적물 속에 묻혀 피부조직이나 깃털 같은 미세한 구조를 보존할 수 있었다.

호숫가에는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작은 연못과 강 주위에는 오늘과 비슷한 개구리, 거북, 물고기가 살았다. 그러나 현재와 다른 동물이 있었다. 오래 전에 멸종한 공룡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식물들과 커다란 곤충, 그리고 현생 포유류와는 사뭇 다른 포유류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랴오닝성의 이시안 지층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생대 지층인 경상누층군의 시대와 일치한다. 강과 호수 지층으로 주로 구성된 점도 비슷하며 화산 활동의 영향을 받은 것도 일치한다. 지질 시대의 환경이 같은 우리나라에서도 곧 랴오닝성처럼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화석이 발견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은 바로 랴오닝성의 보물들이 우리가 잃어버린 영토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 고구려!

공룡의 족보

공룡은 크게 용반류와 조반류로 나눌 수 있다. 1887년 씰리가 나눈 기준으로 골반 구조에 따라 나뉜다. 씰리는 용반류를 도마뱀 골반류, 조반류를 새 골반형으로 나눴는데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두 그룹의 가장 큰 차이점은 치골의 위치다. 용반류의 치골은 앞쪽으로 뻗어 있지만 조반류는 뒤쪽을 향해 뻗어 있다. 용반류는 둘째 앞발가락이 가장 길며 움켜질 수 있는 앞발을 가진다. 용반류중 목긴공룡을 포함한 용각류의 앞발은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더 커지고, 육식공룡인 수각류의 앞발은 공격용으로 다양하게 변하다 날개로 진화하기도 했다(새의 치골은 처음에 앞으로 향하다 다시 뒤로 향하게 변했다). 조반류는 아래턱에 앞아래턱뼈가 진화했다. 모든 조반류 공룡은 초식성이며 방어와 자기과시, 먹이 습성에 따라 특이한 모양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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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융남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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