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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피해! 독수리가 오고 있어!”

허재원의 영장류 이야기 마지막 화 조기경보시스템


※편집자주 허재원의 영장류이야기는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 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지난 열한 차례의 연재를 통해 다양한 영장류가 각자 종 특유의 가족 체계와 사회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살펴봤다. 마지막 화에서 소개할 영장류의 사회 시스템은 그 중에서도 ‘끝판왕’이라 부를 만하다. 굉장히 고도화된, 놀라운 체계이기 때문이다. 일명 ‘알람콜’이라고 부르는 소리경보 시스템이다.

침팬지나 고릴라, 오랑우탄 등 대형 영장류를 제외한 영장류는 여러 종류의 천적들로부터 늘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그 탓에 똑똑한 영장류들은 가족이나 무리에게 천적의 출현을 알려 경고하는 소리 신호를 발전시켰다. 인간처럼 “불이야!”, “도둑이야!”, “괴물(?)이야!”라고 외칠 수는 없지만, 특정한 소리를 이용해 서로에게 언어와 유사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소리는 종에 따라 각기 다르면서, 동시에 영장류와 함께 살아온 새와도 정보를 공유할 만큼 보편적이다.


천적 종류뿐만 아니라 위치까지 알려주는 소리경보
영장류들의 소리경보 시스템은 영장류 연구 초기부터 많이 연구됐다. 가장 유명한 연구는 미국 록펠러대 현장연구센터 로버트 세이파르트 박사팀이 1980년대 학술지 ‘사이언스’와 ‘동물행동학’에 발표한 아프리카 초록 원숭이(버빗원숭이) 현장 연구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세 그룹의 초록원숭이를 약 1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소리를 녹음했다.

연구팀은 이들 원숭이가 독수리, 표범, 뱀 등 다른 종류의 포식자에 대해 각각 다른 경고 소리를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goo.gl/YyRKiA에서 들을 수 있다. PC에서만 가능). 대처법도 달랐다. 먼저 독수리가 나타났다는 경고음이 들리면 모든 원숭이들이 하늘을 주시하면서 덤불 숲 같은, 하늘이 가려진 나무 사이로 뛰어갔다. 표범이 나타났다는 경고음이 들리면 나무 위로 잽싸게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뱀이 나타났다는 경고음이 들리면, 두발로 직립한 상태에서 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연구팀은 관찰한 세 가지 소리신호와 그에 대응하는 세 가지 행동을 실험으로도 증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미리 녹음한 서로 다른 세 가지 소리신호를 야생원숭이에게 틀어줬다. 물론, 그 소리신호가 지칭하는 대상은 실제로는 출몰하지 않은 상태다. 실험 결과, 그 소리를 녹음할 때 원숭이들이 했던 정형화된 행동을 녹음된 소리에도 동일하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진행된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에서, 천적의 영상을 비디오를 통해 보여주거나 천적과 유사한 모형을 원숭이 무리 주변에 놓았을 때에 동일한 경보시스템이 발동하는 것을 관찰했다.

2013년 브라질, 영국, 스위스 과학자가 포함된 국제공동연구팀은 남미 야생의 티티원숭이를 관찰해 이들의 소리신호는 한층 더 복잡하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발표했다. 천적인 맹금류와 고양잇과 육식동물 각각에 대해 기본적인 경고음이 있는데, 그 경고음 안에 천적의 위치 정보까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연속되는 경보에서 최초로 들려오는 소리는 천적의 종류를, 그 이후에 들려오는 소리는 천적이 땅으로 접근하는지 하늘에서 접근하는지를 알려준다고 밝혔다. 소리경보를 통해 천적의 종류와 위치에 대한 복합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사례는 지금까지 티티원숭이에서 유일하게 발견됐다.

아마도 이는 두 원숭이 종이 사는 환경과 관련돼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초록원숭이가 사는 사바나 지역은 덤불이 듬성듬성 있는, 개방된 단순한 지형이다. 반면 티티원숭이가 사는 남미의 열대우림은 키가 큰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며, 이 때문에 어두워서 땅 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즉, 환경이 복잡해서 포식자가 다양한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다. 단순히 포식자 종류만 경고해서는 포식자를 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아프리카 코뿔새는 독수리 경보음을 훔쳐 듣는다
이런 소리신호는 심지어 다른 종과도 서로 통용된다.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 연구팀은 2004년 ‘영국왕립학회보 B’에 원숭이들의 조기경보 시스템을 훔쳐 듣고 활용하는 아프리카 코뿔새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다이아나원숭이들이 표범과 독수리에 대해 두 가지 경고음을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시에, 다이아나원숭이와 같은 환경에 서식하는 아프리카 코뿔새가 공통 천적인 독수리에게 더 많이 잡아 먹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이들은 다이아나원숭이들의 경고음, 특히 독수리에 대한 경고음에 코뿔새들도 반응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코뿔새의 천적인 독수리와, 천적이 아닌 표범의 소리를 각각 녹음했다. 다이아나원숭이들의 독수리 경고음과 표범 경고음도 녹음했다. 그리고는 이를 아프리카 코뿔새에게 들려주면서 반응을 관찰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아프리카 코뿔새는 실제 독수리 소리와 다이아나원숭이의 독수리 경고음에만 주로 반응했다. 표범 소리와 표범 경고음에는 무관심했다. 아마도 아프리카 코뿔새는 오랜 경험을 통해 다이아나원숭이의 독수리 경고음이 실제 독수리와 동일한 수준의 위험이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다이아나원숭이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그만큼 정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린 개체의 실수도 잦아… 본능 vs. 교육 논쟁 불러
록펠러대 연구팀은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로 옮긴 뒤, 경고 신호에 대한 후속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실제 야생에서 소리신호를 녹음해 분석해 보니 의외로 잘못된 신호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컨대, 독수리가 아닌 단순히 큰 새일 뿐인데, 누군가가 독수리 경보를 울렸다. 표범이 아닌 초식동물이 지나갈 때 표범 경보가 발령될 때도 있었다. 연구팀은 이처럼 잘못된 신호를 내는 것이 유아기나 청소년기의 개체들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특정 소리신호에 잘못된 대처를 하는 개체들도 많았다. 독수리 경보가 울렸는데도 직립해 땅 위를 살피거나(뱀 대처법), 표범 경보가 울렸는데 하늘을 쳐다보며 덤불로 뛰어가는 행동(독수리 대처법)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역시 어린 개체였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잘못된 행동을 하는 빈도는 줄었다. 아프리카 초록원숭이들은 무리 속에서 성장하면서 점차 그 무리의 규칙과 생존방식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위험신호를 전파하고 인지하는 능력이 교육을 통해 다듬어졌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자에 기록된 정보, 즉 본능에서 이런 능력이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국 연구자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밝혀 그 결과를 2013년 학술지 ‘행동 과정’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만약 위험신호를 듣고 반응하는 것이 교육의 효과라면, 포식자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사는 무리들은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아프리카 본토와 멀리 떨어진 한 섬에서 1600년대 중반에 옮겨진 아프리카 초록원숭이 무리를 찾아 냈다. 바베이도스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섬으로, 초록원숭이의 천적이 살지 않는다.

연구팀은 실험장소 두 곳을 선정해 미리 무선스피커를 잘 숨겨 뒀다. 원숭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본토에서 녹음해 온 표범 경고 신호 두 가지와 뱀 경고신호 두 가지를 들려줬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무려 350년 동안이나 이런 경고음을 들어본 적 없었던 바베이도스의 초록원숭이들이 아프리카에 사는 동족의 표범 경고 신호를 듣고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아쉽게도 뱀 경고 신호에 대해서는 통계적으로 신뢰성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경고신호에 대한 반응이 유전자에 저장돼 있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지금까지 밝혀진 몇 가지 위험 경보 신호는 아마도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야생에서 사냥을 하거나 새끼들을 교육하는 영장류를 보고 있노라면, 의사소통 없이 저렇게 행동하기란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영장류의 대화를 모두 훔쳐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더 읽을거리
마르타 맨서 외 ‘버빗원숭이와 다른 동물의 의미 있는 의사소통’
(doi:10.1016/j.anbehav.2013.07.006)

in 과학동아 31년 기사 디라이브러리(정기독자 무료)
‘최초로 ‘빵’ 터진 그들에게 무슨 일이?ㅋㅋ’(2016.3)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603N044
‘십자매는 알고 있다’(2014.7)
 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407N032

201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허재원 선임연구원
  • 에디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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