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Part 2. 메가이터, 생태계를 바꾸고 진화를 일으키다

30년 만에 몸무게가 20% 이상 줄고 1년 일찍 산란하도록 진화한 물고기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불과 10년 만에 몸무게가 100kg 이상 늘어난 육상 포유 동물은 어떤가.
실없는 소리 같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인간의 먹이 활동으로 인해 동식물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인간은 오늘날 ‘슈퍼포식자(Superpredator)’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 인간은 기계화된 어업 기술을 이용해 매년 1억t이 넘는 물고기를 잡고 있다. 예컨대, 태평양의 먼 바다에서 참치를 잡는 원양어선들은 ‘집어장치’를 쓴다. 바다에 던져 놓는 속이 빈 부유물로, 작은 물고기들은 이 부유물을 포식자로부터 숨을 수 있는 피난처로 생각하고 모여든다. 뒤이어 이를 먹고 사는 참치 같은 큰 물고기가 모인다. 이때 어선은 그물을 내려 집어장치에 모인 물고기들을 한꺼번에 잡아 올린다.

돌고래나 상어, 바다거북 등 인간이 잘 먹지 않는 큰 해양생물까지 걸려 올라온다. 해양생태계 보호를 위해 수역마다 3~4개월간의 사용 금지기간을 두지만, 동아시아의 원양 강국들은 이런 규제를 잘 지키지 않는다.
국제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워리어’ 호는 태평양 바다를 항해하며 이런 불법 어선을 적발한다. 10월 11일 부산항에 정박한 레인보우워리어 호에서 만난 피지 출신 선원 아피살로메 와카우니시우는 “그물을 끌어올릴 때 참치만 많다면 그 어떤 생물이 걸려 올라와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참치 주낙배에서는 상어가 끌려 올라왔을 때 산 채로 지느러미를 자르기도 합니다. 지느러미가 잘린 상어는 헤엄치지 못하고 바닥으로 가라앉습니다. 결국 천천히 죽어가죠.” 상어 지느러미, 일명 ‘샥스핀’은 한 그릇에 최대 100달러를 호가하는 샥스핀 수프의 재료다.

박태현 그린피스서울 사무소 해양 캠페이너는 “집어장치를 이용하는 어업방식 때문에 참치 캔 10개를 만들 때 평균 1개 분량의 혼획물이 희생된다”며 “원하는 어종만 골라 잡을 수 있는 기술이 있지만, 집어장치가 워낙 싸고 편리하기 때문에 여전히 집어장치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어업 방식으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해양 생태계에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과 런던동물학회(ZSL)가 9월 15일 발표한 ‘해양생명 보고서’에 따르면, 해양 생물 1200종을 분석한 결과 1970년 이후 개체수가 49% 감소했다. 인간이 즐겨 먹는 물고기는 50%, 그 중에서도 특히 참치와 고등어는 무려 74%가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가 잡는 물고기 종의 90%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남획되고 있기 때문이다(유엔 식량농업기구(FAO) 2014 통계).
큰 개체를 잡는 인간의 포식 습관 때문에 해양생물의 형질도 변하고 있다. 대서양 대구(사진)는 1970년에 비해 크기는 20% 작아지고 산란시기는 1년 이상 앞당겨졌다.큰 개체를 잡는 인간의 포식 습관 때문에 해양생물의 형질도 변하고 있다. 대서양 대구(사진)는 1970년에 비해 크기는 20% 작아지고 산란시기는 1년 이상 앞당겨졌다.


크고, 빨리 자라는 물고기가 사라진다

인간의 먹이활동은 종의 형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빨리, 크게 자라는 형질이 사라지고 있다. 번식할 수 있는 성체는 두고 어린 개체 일부만 잡아먹는 야생동물과 달리, 인간은 큰 개체만 선택해 먹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빅토리아대 지리학과 크리스 다리몬트 교수팀은 인간과 기타 동물들이 다른 종의 성체를 죽이는 비율을 연구한 문헌 약 300건을 분석해 그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스’ 8월 2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다 자란 대형 육식동물을 죽이는 비율은 다른 포식자에 비해 9배이며(주로 과시용 사냥) 특히 물고기 성체를 죽이는 비율은 무려 14배에 달했다.

이 때문에 대서양 대구(Gadus morhua)의 성체 크기는 지난 30년 동안 20% 줄었으며, 암컷 대구는 1년이나 일찍 산란하게 됐다. 우리나라 어장도 예외는 아니다.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박사는 “국내 어장에 서식하는 조기를 관찰해 보면, 과거에는 짝짓기 경쟁에서 밀려 알을 낳지 못했던 작은 개체들이 최근 산란하는 추세”라며 “인간의 남획으로 큰 성체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크리스 다리몬트 교수는 34개의 연구 논문을 통해 인간이 먹이로 삼고 있는 바다생물 29종의 형질이 변하는 속도를 분석했다. 그런 뒤, 갈라파고스에 사는 핀치 새처럼 자연선택으로만 진화한 종, 그리고 인간이 사냥하지는 않지만 환경오염 등 다른 영향에 노출된 종과 비교 분석해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09년 1월 20일자에 발표했다. 세 그룹 가운데 ‘누가 누가 빨리 변했나?’를 분석한 셈인데, 결과는 물론 인간에게 잡아 먹혀 온 종이 월등했다. 야생 종에 비해 300%, 그리고 인간의 다른 영향을 받은 종에 비해 50% 빠른 속도로 변했다. 크기는 평균 20% 줄었고, 번식 주기는 25%씩 바뀌었다. 다리몬트 교수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대구 낚시처럼 크기가 큰 성체를 노리는 인간의 어업방식은 과시할 만한 크기가 되기 전에 알을 낳는 작은 개체들에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선택은 실제로 어류의 유전자를 변화시킨다. 2013년에 학술지 ‘첨단생태환경’에 실린 연구 논문을 보자. 영국 뱅거대 분자생태학 및 어류유전연구소의 개리 카르발호 교수팀은 형질 변화에 영향을 주는 생태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을 분리하기 위해 구피(Poecilia reticulata)를 3세대 동안 다양한 포획 조건에 노출시켰다. 성체 크기와 유전자군 변화를 측정한 결과, 수컷 구피의 몸체 크기를 결정하는 유전자들이 염색체 상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변화가 생겼다. 스웨덴 농업과학대 해양자원학과 안드레아 벨그라노 교수는 2013년 12월 5일 사이언스에 발표한 칼럼 ‘어업은 어떻게 진화에 영향을 미치나(How Fisheries Affect Evolution)’에서 “이 연구는 큰 개체를 선호하는 인간의 어업방식이 물고기의 진화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논평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거제육종센터에서 개발한 킹넙치(왼쪽). 일반 넙치에 비해 무게가 두 배 무겁다.국립수산과학원 거제육종센터에서 개발한 킹넙치(왼쪽). 일반 넙치에 비해 무게가 두 배 무겁다.

 

10월 12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기자는 사람 키보다 높은 수조에 올라섰다가 그 안에 있는 생명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허허, 횟집에서 보던 넙치와는 차원이 다르죠? 육종 기술로 개발한 킹넙치입니다.” 기자를 안내하던 박진일 연구협력과 연구사가 말했다. 수조 안에는 국립수산과학원 거제육종센터에서 개발한 길이 85.5cm, 무게 9.5kg에 달하는 거대한 넙치들이 누워 있었다. 일반 넙치는 몸 길이 67.8cm에, 무게는 그 절반도 안 되는 4.5kg 정도다. “머리 안에 전자칩을 심어서 가계도를 일일이 관리했습니다. 우량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유전자 표지도 이용했고요.”

인간의 먹이 활동으로 동식물의 형질이 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는 정점은 바로 육종이다. 육종이란 우량 식물이나 가축을 골라 상호간의 교배를 통해 훌륭한 후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훌륭한 후대’란, 당연히 인간이 원하는 형질 특성을 뜻한다. 이승수 국립축산과학원 가축개량평가과 박사는 재미있는 기록을 소개했다.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는 100필의 말을 가두고 물을 주지 않다가 3일 뒤 풀어줬다. 냇가로 달려가는 말들에게 멈추라는 나팔을 불자 단 4마리의 말만 멈췄다. 이 말을 서로 교배했는데, 이들 4마리가 현재 아라비아 말의 시조라는 내용이다. 인간은 이렇게 경험을 통해 우량한 동식물을 골라 교배시켜 왔고, 유전법칙을 활용한 과학적인 육종이 193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한우를 예로 들어 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크는 한우는 약 270만 마리 정도이며, 그 중 3분의 1이 가임 암소다. 이들을 매년 수태시키는 데 쓰이는 수소는 불과 50마리 정도다. 이를 씨수소라고 한다. 우수한 형질의 송아지를 얻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 매년 우량한 수소를 뽑아 이들의 정액을 전국의 한우 축산농가에 보급한다.

씨수소를 뽑을 때는 3개 관문을 거친다. 부모 혈통, 자기 자신의 형질, 그리고 후대의 형질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아야 한다. 최연호 국립축산과학원 가축개량국립식량과학원평가과 박사는 “인간이 원하는 소의 형질은 대부분 질적형질이 아니라 양적형질”이라고 말했다. 질적형질은 뿔의 유무나 털 색깔 등이며, 단일 유전자쌍이나 몇몇 유전자쌍의 지배를 받는다. 반면 양적형질은 몸무게, 허리둘레, 크는 속도 등이며 여러 염색체쌍에 위치한 수백~수천 개 유전자쌍의 지배를 받는다. 환경조건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구체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혈통 데이터를 기반으로 부모 혈통이 좋은 수송아지 800마리를 뽑는다. 충남 서산의 한우개량사업소에 입소시켜 같은 환경 조건에서 기른다. 성 성숙이 됐을 때 성장속도와 체형이 훌륭한 송아지 40여 마리를 고른다. 이들의 정액을 이용해 20마리씩 총 800마리의 새끼를 낳게 한다. 2년 뒤 이 새끼들을 도축해 체중, 근내지방도(마블링), 등심단면적, 등지방 두께 등을 기준으로 좋은 고기를 판별한다. 그 송아지들의 아빠 소가 드디어 유전능력이 보증된 명예로운(?) 씨수소가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 크는 소들은 18개월령 몸무게가 2000년부터 매년 평균 7.4kg씩 늘었다. 돼지(두록 종)는 90kg이 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2005년부터 매년 0.9일씩 단축됐고, 젖소는 개체당 연간 우유 생산량이 1996년부터 매년 116kg씩 늘었다. 닭의 6주차 몸무게는 매년 57.2g씩 늘었다. 초고속 압축 진화다.

 
식물도 피해갈 수 없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식인 벼를 살펴보자. 이점호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과장은 “벼를 비롯한 작물 육종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키를 줄인 것”이라며 “전세계 모든 작물은 기계수확하기 편리한 방향으로 육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작물의 키가 크면 이삭이 위에 달리면서 쓰러지기 쉽다. 쓰러져 버리면 기계수확이 불가능하다. 기계수확하기 편리한 형질이란, 키가 작고 이삭이 크게 달리면서도 이삭 무게 때문에 양쪽으로 벌어지지 않는 튼튼한 줄기다.

예컨대, 녹색혁명이라고 불리는 1977년 통일벼 개발은 재래벼에 없던 ‘단간 유전자(sd-1)’를 도입하는 과정이었다. 단간 유전자가 있으면 키는 줄어들면서 이삭 크기는 그대로인 벼가 나온다. 당시 육종학자들은 우리나라 벼로는 생산성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어서 동남아시아 벼와 교배해 새 품종을 개발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두 종류의 벼가 유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인공 교배한 뒤 후대에서 불임이 생겼다. 결정적인 해결책은 온대벼와 열대벼의 중간 종인 대만의 재래종을 중간다리로 이용한 것. 훗날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대만 벼의 sd-1 유전자가 도입된 것을 발견했다. 거듭된 육종 결과, 1930년대 120cm였던 벼의 키는 74cm까지 줄었다. 쌀 생산량은 1930년대 1헥타르(1만m2)당 2.98t에서 2000년대 7.53t까지 늘었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이삭의 성분을 바꾸기도 한다. 특정 화학 물질을 희석한 물에 벼 이삭을 담갔다가 말린 뒤 심으면 가지각색의 벼가 나온다. 4만 개 유전자를 다 건드려 놓기 때문. 이 과장은 “여기서 육종가의 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육종가가 2만 개 이상의 수많은 돌연변이 벼 중에서 팔 수 있을 만한 걸 골라냅니다. 예컨대, 소화가 잘 안 되는 전분이 10% 이상 함유된 돌연변이 벼를 발견해 다이어트 쌀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출시했어요.”

가축 육종은 인류에게 혜택이지만, 동식물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가축 육종은 인류에게 혜택이지만, 동식물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인류에겐 혜택, 하지만 그림자도 있다

다양한 형질의 동식물이 개발되는 건 인류에게는 혜택일 수 있다. 하지만 대상이 된 동식물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자연선택은 생존하기 유리한 방향으로 이뤄지지만, 육종은 오로지 인간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게 목적이기 때문. 예컨대, 가까운 친척 간 교배가 계속될 경우 유전적으로 열성인 기형 자손이 태어나는 등 ‘근교퇴화’가 일어날 수 있다. 번식능력이나 질병저항성 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근교퇴화는 근친결혼이 많았던 여러 고대 왕조의 멸망 원인으로도 꼽힌다.

최연호 박사는 “2007년쯤부터 이런 문제점이 인식되고 근친교배를 줄이는 방향으로 육종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몇 년 전 전국을 강타했던 구제역이 바로 질병저항성이 떨어진 동물들이 공장식 축산 환경을 만나면서 나타난 문제다. 그 피해는 다시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다. 인간의 지나친 먹이 활동이, 지구와 인간 스스로를 갉아 먹고 있는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인류, 지구를 먹어치우다 냉장고로 부족해?] Part 1. 전세계는 얼마나 먹나
Part 2. 메가이터, 생태계를 바꾸고 진화를 일으키다
Part 3. 몸은 메가이터가 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글 : 우아영 과학동아
이미지 출처 : 그린피스, Hans Petter field(W), 국립수산과학원 거제육종센터, GIB, 국립축산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평가과

과학동아 2015년 11월호
과학동아 2015년 11월호 다른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