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뇌 속에 있는 지도와 GPS, 그리고 내비게이션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받았다. 정확히는 뇌 속에 있는 장소세포(place cell)와 격자세포(grid cell)를 발견한 공로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존 오키프 교수와 노르웨이 과학기술대(NUST) 에드바르드 모세르, 마이브리트 모세르 부부 교수에게 돌아갔다.
존 오키프 교수는 캐나다 맥길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UCL로 자리를 옮겨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살아 있는 쥐의 해마에 전극을 삽입했다. 그리고는 쥐가 길을 탐색하고 움직일 때 해마의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측정했다. 쥐가 특정 위치에 도달하자 조용히 있던 해마 신경세포가 갑자기 전기신호를 냈다. 공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세포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는 이 세포를 ‘장소세포’라고 불렀다.

오키프 교수에게 전기신호 측정 기술을 직접 배운 모세르 부부는 해마에 정보를 전달하는 기관이 내비피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2004년에는 내비피질에도 해마의 장소세포처럼 특정 장소에 가면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 신경세포는 장소세포와 달리 하나의 넓은 공간을 혼자서 처리했다. 넓은 원형 박스 안에서 쥐를 돌아다니게 하고 전기신호를 측정했더니 하나의 내비피질 세포가 여러 장소에서 전기신호를 나타냈다. 각각의 장소세포가 이순신 동상, 경복궁 등을 하나씩만 맡았던 반면 내비피질 세포는 광화문 전체를 혼자 책임진 것이다.

모세르 부부는 2005년 하나의 내비피질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만드는 지점들이 일정한 간격과 각도를 두고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 지점들을 이어보니 각 선이 60˚를 유지하며 6개의 정삼각형들로 이뤄진 매우 정교한 정육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장소세포에서는 볼 수 없던 격자무늬다. 모세르 부부는 이 세포를 격자세포라고 이름 지었다. 정육각형 모양의 격자세포 신호패턴은 수학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실제로 벌집은 정육각형이 붙여진 모양인데, 이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어 가장 많은 꿀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격자세포도 최소의 격자세포 지점으로 최대한 많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계산하기 위해 정육각형의 배열을 이용한다.
장소세포와 격자세포의 발견은 뇌가 전기신호를 이용해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열었다. 현재는 컴퓨터와 수학을 이용해 뇌의 인지능력과 위치 정보처리 과정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임상에서는 치매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가장 먼저 손상이 오는 영역이 내비피질이다. 알츠하이머의 대표적인 초기 증상이 바로 길을 헤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심사 당일, 오키프 교수는 7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 풋내기였던 나의 논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인상 깊었던 점은 자신의 이론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실험 결과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와 동등하게 토론에 임하던 모습이다. 3시간 가까운 심사를 마치고 최종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에게 오키프 교수가 다가와 “축하하네. 자네는 이제 박사야”라고 다정한 표정으로 말해 주던 모습은 수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생생하다.
축하 파티에서 샴페인을 따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오키프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며 “샴페인을 딸 때는 코르크가 아닌 병을 돌려야 안전하게 열 수 있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트 있는 그의 모습과 코르크 마개 앞에 쩔쩔대는 필자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현재는 고려대 신경계산연구실에서 장소세포와 격자세포를 활용한 전기 생리학실험을 하며 세포들이 어떻게 장소 정보가 담긴 신경신호를 만드는지 연구하고 있다. 어떻게 장소 기억이 해마의 시냅스에 저장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또 알츠하이머에 걸린 장소세포와 격자세포의 전기신호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연구해 알츠하이머의 원인도 찾고 있다. 세포의 모양과 반응을 수리적으로 모사하는 컴퓨터 모델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런 연구는 향후 길을 찾는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다.
쥐와 사람 뇌에서 장소와 격자세포가 발견됐지만, 이는 단지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장소 정보처리를 위한 신경신호가 어떻게 생성되고, 장소와 격자세포가 장소 정보처리에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뇌 과학자뿐만 아니라 해부학자, 생리학자, 공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