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에어백, 카메라 오토포커싱 장치, 초음파 진단기, 가스레인지의 공통점은? 압력을 가하면 전기가 나오고 전기를 흘리면 진동하는 ‘마법의 돌’ 압전체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압전체가 일으키는 효과(압전효과)는 1880년 프랑스의 피에르 퀴리와 자크 퀴리 형제가 발견했다.
최근 압전효과는 마이크로세계를 넘어 나노세계를 지배할 마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압전효과를 이용한 나노발전기가 개발돼, 입고 걷기만 해도 휴대전화나 MP3 플레이어가 충전되는 옷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또 몸속을 떠돌며 암세포를 탐지해 약물을 전달하는 나노로봇에 꾸준히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0순위 후보가 바로 압전형 나노발전기다. 압전효과가 펼치는 마법의 세계에 빠져보자.
“형, 이 돌에 압력을 가하니까 전기가 발생해!”
1880년 프랑스의 피에르 퀴리와 형인 자크 퀴리는 다양한 결정(結晶, crystal)에 압력을 가하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석영, 전기석, 로셸염, 토파즈 등의 결정에 일정한 방향으로 충격을 줬을 때 전기가 생기는 현상(압전효과)을 처음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1년 뒤 그 반대효과도 확인했다. 이번엔 전기를 흘리자 결정의 길이가 변했던 것. 피에르 퀴리는 노벨상을 2번이나 받은 마리 퀴리의 남편으로 유명하지만 압전기(壓電氣, piezoelectricity)를 발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올해 5월은 피에르 퀴리가 탄생한 지 150주년이 된다.
압전기는 처음 발견된 뒤 수십 년간은 실험실에서 호기심의 대상으로 머물렀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잠수함용 초음파 탐지기를 개발하는 데 쓰였다. 그 뒤 압전효과는 가스레인지부터 카메라, 휴대전화, 자동차, 가습기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 사용되고 있다.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압전효과의 세계에 빠져보자.
초음파로 부리는 요술 “딸각!”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려고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작은 스파크가 일어난다. 가스 화력 조절손잡이 안쪽에는 흔히 ‘딱딱이’라고 부르는 압전 점화기가 달려 있다. 점화기를 누르면 전기 스파크가 발생하는데, 내부에 있는 압전체를 순간적으로 때려 높은 전압의 전기를 만든다.
버저나 스피커를 제작하는 데 압전체를 쓰기도 한다. 소리나 음성 신호에 해당하는 전기를 압전체에 흘려 주면 압전체가 진동하면서 소리를 발생시키는 원리다. 이와는 반대로 압전체가 음성이나 소리의 떨림을 받으면 그에 맞춰 전기가 생긴다. 이를 적용한 물건이 마이크로폰이나 수중청음기(hydrophone)다. 수중청음기는 잠수함에서 바닷속에 있는 적 잠수함의 소리를 엿듣거나 해양 생물의 소리를 듣기 위해 사용한다. 여러 개를 조합하면 도달하는 소리의 시간차를 바탕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도 파악할 수 있다.
압전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동할 수 있기 때문에 초음파를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압전체가 들어간 초음파 진동기는 아주 빠르게 떨면서 물을 잘게 부수어 수증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습기에 쓰인다. 압전체를 이용해 물속에서 발생시킨 초음파로 의료기기를 소독하거나 안경, 식기를 씻어내는 초음파 세척기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압전체는 의료용 초음파 진단기, 잠수함 초음파 탐지기나 어업용 어군 탐지기 등에도 쓰인다. 이들은 압전체에서 만든 초음파를 쐈다가 뱃속 장기, 잠수함, 물고기 떼에 부딪혀서 반사해 오는 메아리(초음파)를 받는 원리다. 받은 초음파를 전기 신호로 바꿔 인식할 때도 압전체가 사용된다.
자동차의 수호신 “삐익 삐익…”
자동차를 일렬로 주차시키려다가 뒤차와 너무 가까워진 탓인지 경보음이 계속 난다.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걸까. 자동차 뒤범퍼를 찬찬히 살펴보니 작은 단추처럼 생긴 물체가 붙어 있다. 이것이 바로 압전체를 이용해 제작된 ‘후방 거리 경보기’(후방 감지기)다. 이 경보기는 압전체로 초음파를 만들어 보냈다가 장애물에 부딪혀 반사된 뒤 다시 압전체로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차 뒤에 있는 물체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소리로 알려주는 장치다.
요즘은 압전체가 자동차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에어백의 가속도센서나 자동차 엔진 센서에도 압전체가 들어간다. 압전체를 아주 잘 휠 수 있도록 얇게 만들면 가속될 때 변형이 일어나는데, 이때 압전체에서 생긴 전압을 측정해 가속도를 알 수 있다. 이런 가속도센서가 충돌사고를 감지해 에어백을 터뜨린다.
자동차 엔진에는 연료가 비정상적으로 연소해 출력을 떨어뜨리거나 엔진을 손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감지하는 노킹 센서에 압전체가 들어 있다. 압전체가 엔진에서 불규칙하게 생긴 충격을 전기신호로 바꿔 알려주면 엔진의 집적회로(IC)가 불규칙한 연소를 조절하는 원리다.
DSLR 오토 포커싱의 비밀 “쉬이익~”
요즘 일반인도 많이 사용하는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DSLR). 멋진 모델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며 셔터를 반쯤 누르자 렌즈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느라 분주하다. 바로 이런 오토 포커싱에 압전체는 필수! 자동으로 카메라 초점을 잡으려면 카메라 렌즈를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 압전 모터가 제격이다.
압전 모터는 압전체에 교류 전기를 가할 때 압전체가 계속 떠는 진동을 이용해 압전체 위에 놓인 물체가 원형으로 회전하거나 직선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다. DSLR에서는 렌즈 뒤에 압전 모터가 놓여 있는데, 전기를 가하면 압전 세라믹 위에 있는 로터가 회전하며 렌즈를 앞뒤로 움직인다.
DSLR에는 손떨림 방지장치가 장착돼 있는데, 이 장치에도 압전 모터가 쓰인다. 사람의 손떨림을 감지해 이 떨림과 반대 방향으로 진동을 줘 카메라의 떨림을 상쇄시키는 원리다. 압전 모터가 1초에 수천 번씩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빨리 이동하면 관성 때문에 밀리는 기존 모터보다 움직임이 정확하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카메라에도 압전 모터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길이가 3mm 정도인 압전 모터를 이용해 휴대전화 카메라의 오토 포커싱 장치와 광학 줌 장치를 개발했다. 각각 오토 포커싱 렌즈와 줌 렌즈를 압전체가 빠르게 진동하며 앞뒤로 이동시키는 원리다. 압전 모터 뒷부분에 있는 압전체들은 제자리에서 진동하며 렌즈가 걸려 있는 양쪽 기둥을 하나씩 앞뒤로 흔드는데, 앞으로 느리게, 뒤로는 빠르게 진동하도록 전기신호를 주면 렌즈는 관성에 따라 앞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이때 압전체는 1초에 수천 번씩 진동하니까 우리 눈에는 렌즈가 앞으로 움직이는 모습만 보인다.
유리창 스피커, 점자 읽는 햅틱 장치 “틱톡틱톡~”
대표적인 압전체 재료는 1950년대에 처음 발견한 ‘납-지르코늄-티타늄 복합산화물’인 Pb(Zr0.5Ti0.5)O3, 일명 PZT가 있다. 현재 PZT를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세라믹 재료가 많이 개발돼 여러 분야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독성이 있는 납(Pb)을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압전 세라믹 재료를 개발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앞으로 PZT를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가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PZT처럼 딱딱한 세라믹으로 된 압전체 외에도 PVDF라는 폴리머로 된 압전체도 개발됐다. 일명 ‘압전 필름’이라 불리는 이 압전체는 유연하게 쉽게 휘어지는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벽이나 유리창에 붙여 쓸 수 있는 얇은 스피커에 사용되고 있다.
머지않아 압전체는 장애인을 돕거나 고성능 로봇 눈을 개발하는 데도 쓰일 전망이다. KIST에서 시각장애인이 컴퓨터 자판 하나 크기에서 점자를 읽을 수 있는 햅틱 장치를 제작했다. 9개의 압전 모터가 들어 있어 점자에 따라 9개의 점이 번갈아 돌출하는 원리다. 이 장치가 휴대전화에 장착된다면 시각장애인도 문자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또 특수한 압전 모터를 사용하면 모터 하나를 갖고 사람 눈처럼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로봇 눈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압전 모터는 반응 속도가 빠르고 기어가 필요 없이 진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작게 제작할 수 있으며 일반 모터와 달리 미끄러지지 않고 nm(나노미터, 1nm=10-9 m) 규모로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자 현미경이나 반도체 정밀가공장비처럼 아주 세밀한 움직임이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 압전체는 나노기기를 만들고 나노기술을 완성하는 데 필수인 셈이다. 마법사의 돌 같은 압전체가 창조해낼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압전효과는 물질 속 쌍극자 놀음
압전효과는 크게 정(正)압전효과와 역(逆)압전효과로 나눌 수 있다. 결정이나 세라믹 같은 압전체에 압력, 진동 같은 기계적 에너지를 가했을 때 전기가 나오는 현상을 정압전효과(1차 압전효과)라 하며, 이와 반대로 압전체에 전기를 가하면 압력이나 진동이 발생하는 현상을 역압전효과(2차 압전효과)라 한다.
그렇다면 압전효과는 왜 생길까. 압전효과가 일어나는 원리를 이해하려면 압전체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석영, 전기석 같은 천연 압전체에서는 특정방향으로 한쪽이 양(+)극성을, 반대쪽이 음(-)극성을 띠는 분극 현상이 일어난다. 압전체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쪽에 양전기를, 반대쪽에 음전기를 띠는 쌍극자(dipole)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쌍극자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해 압전체에 분극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이제 압전효과가 발생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압전체를 위아래로 당겨서 늘리면 원래보다 쌍극자들의 간격이 벌어져 압전체의 위와 아래 사이에 전위차가 생기는데, 이때 전자가 움직여 전기가 발생한다. 반면 압전체를 눌러서 찌그러뜨릴 때는 전자가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반대방향의 전기가 발생한다.
또 압전체에 전기를 걸어줄 때 역압전효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압전체에서 음전기를 띠는 쪽에 양극을 연결하고 양전기를 띠는 반대쪽에 음극을 연결하면, 쌍극자들이 양극과 음극으로 각각 끌려가 전체적으로 압전체가 늘어난다. 음전기를 띠는 쪽이 양극으로 향한 쌍극자들은 양극으로 따라가려 하고 양전기를 띠는 쪽이 음극으로 향한 쌍극자들은 음극으로 따라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연결하면, 쌍극자들은 연결된 양극과 음극에서 각각 도망가려 해 압전체가 줄어든다.
20세기 중반 이후 천연 압전체 외에 인공 압전체도 많이 쓰인다. 인공적으로 만든 압전체는 처음에 내부의 쌍극자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데, 두께 1mm당 3500V의 높은 전압을 걸어주면 쌍극자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한다. 그러면 분극이 일어나 극성을 띠면서 인공 압전체는 압전효과를 낸다.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압전체 내부에 있는 쌍극자는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라는 특수한 결정구조를 갖는 원자블록들 때문에 생성된 것이다.
윤석진 연구원은 연세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막재료연구센터 센터장으로 압전체 재료와 소자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 카메라, 점자용 햅틱 장치 등에 들어가는 초소형 압전 모터를 개발하고 있다.
송현철 연구원은 고려대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으로 PZT 압전 재료, 납이 들어가지 않은 압전 재료, 초소형 압전체 소자를 연구하고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생활 속 압력과 전기의 소통
나노로봇 움직이는 나노발전기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