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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자급하는 도시를 건설하라

빗물부터 오줌까지 다시 쓴다

가뭄 8개월. 하늘도, 대지도, 메마른 하늘만 원망하며 한숨짓던 강원도 태백시 주민들의 눈물도 말랐다. 지난 2월 한두 차례 비가 내렸지만 목마름을 해갈(解渴)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주민들은 제한급수로 물을 아껴 쓰고 생수업체에서 공급받은 생수로 근근이 버텼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 ‘세미라미스’는 도시의 물 자급률*을 100%로 끌어올려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한다. 지구는 외부와 고립된 거대한 우주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수백만 광년 떨어진 다른 은하를 향해 여행한다면 우주선에서 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물을 ‘물 쓰듯’ 펑펑 쓰거나 오염된 물을 우주선 밖으로 모두 배출해 버린다면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자멸할 것이 분명하다. 우주선은 한정된 양의 물을 싣고 있고 도중에 새로 물을 보충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주선 내부의 물을 자체 순환시켜 이용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물 자급률


물 자급률이란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물의 양을 전체 물 사용량으로 나눈 수치를 말한다.

 


생활하수에도 등급이 있다?


눈부신 햇살 사이로 보이는 ‘공중정원’(空中庭園)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퍼진다. 화려한 꽃과 아름다운 나무로 뒤덮였던 ‘세미라미스’는 그 높이가 약 105m로 30층 건물만큼 높이 솟아 있어 공중정원이라 불렸다. 고대도시 신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만든 세미라미스는 지금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남쪽 약 90km 지점에 있었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곳에 어떻게 공중정원을 만들었을까. 정원의 맨 꼭대기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든 뒤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끌어 올려 그 물을 차례로 재활용했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 ‘세미라미스’에서도 물 부족 현상을, 세탁실, 화장실, 욕실, 주방에서 사용하고 배출되는 생활하수를 재활용해 해결한다. 생활하수를 재활용하기 위해 발생장소와 고형물질의 농도, 질소(N)와 인(P) 등의 비율에 따라 블랙워터, 옐로워터, 그레이워터로 구분해 관리한다.

블랙워터는 고형물이 차지하는 무게가 전체의 20%가 넘고 질소와 인 같은 영양염류가 많아 오염도가 가장 높다. 화장실에서 배출되는 대변이나 라면국물과 같은 음식물 쓰레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소변은 그 색 때문에 옐로워터라고 불리며, 고형물은 없고 일반적으로 물 95%, 질소 1%, 인 0.1%, 칼륨 0.25%로 구성된다. 화장실에서 사용하거나 청소하는 데 쓴 물은 그레이워터라고 한다. 그레이워터는 고형물이 거의 없고 인의 함량이 특히 높다. 비누나 세제의 주성분이 계면활성제와 인산염이기 때문이다. 옷을 세탁한 물, 목욕이나 샤워에 사용한 물, 주방하수의 일부도 그레이워터로 분류할 수 있다.

물을 수질 등급에 따라 분류해 배출하면 물 자급률을 30~40% 높일 수 있다. 정수하는 데 드는 시간을 3분의 2 정도 줄여 도시에 물을 빠르게 순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수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60% 줄어든다.

현재 가정에서 나오는 하수는 오염도와 관계없이 한꺼번에 배출한 뒤 같이 정수하는 방식이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에서는 오염도가 높은 대변과 소변을 분리해 배출하고, 생활하수도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포함된 고농도 오수와 유기물 함량이 낮은 저농도 오수로 각각 나눠 배출하게 될 것이다.

 


나를 물로 보지 마
유엔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지난 1993년부터 우리나라를 ‘ 물부족국가 ’로 분류했다. 이 연구소는 우리나라 국민 1명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1993년 1470m3, 2000년 1488m3, 2025년에는 1200~1327m3로 줄어 물부족국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강우량의 70%가 장마철에 집중된다. 지역과 해마다 강우량 차이도 심하다. 물부족국가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을 공급할 때도 등급을 나눠서 각각 다른 수도관으로 공급하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탁기나 화장실에서 쓰는 물이 먹는 물만큼 깨끗할 필요는 없다. 마시는 물과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물은 가장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세탁이나 목욕, 화장실이나 청소, 조경에 쓰는 물은 덜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수도관을 분리한다.

만약 가정하수에서 소변과 대변을 분리해 배출하면 하수에서 질소와 인을 분리하는 공정인 고도처리를 전체 하수에서 하지 않아도 된다. 고도처리는 인을 흡수해 몸에 축적하는 ‘인축적 미생물’(PAO)을 이용해 하수에 포함된 인을 제거하고 탈질미생물을 이용해 질소를 배출하는 공정인데,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렇게 분리 배출한 블랙워터는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과정인 퇴비화를 거쳐 비료성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옐로워터도 대변과 함께 퇴비로 쓰거나 질소를 회수해 비료로 만든다.

그레이워터는 미생물로 유기물을 제거한 뒤 약품이나 다른 미생물로 질소와 인을 제거한다. 끝으로 자외선이나 오존으로 살균소독해 다시 화장실용수, 청소용수, 정원용수로 공급한다.

놀랍게도 블랙워터를 미세여과막과 역삼투막으로 거른 뒤, 자외선으로 살균 소독하면 마시는 물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정수업체 ‘뉴워터’는 하루 약 2억L의 하수를 정화해 물 수요의 15%를 채우고 있다.

 


빗물도 자원이다


내부의 물로 자급하는 우주선과 달리 도시에는 하늘에서 물이 떨어진다. 빗물이다. 빗물을 수자원으로 활용하면 부족한 상수 공급량을 보충할 수 있다. 지난 2월 환경부는 새로 짓는 공공건물에 빗물 이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물 재이용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가뭄이 계속되자 빗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빗물을 이용하기 위한 시스템은 빗물을 모으는 집수장치, 물탱크로 옮기는 배수관,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필터와 같은 처리장치, 물탱크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집수장치는 별도의 장치 없이 건물의 지붕을 이용한다. 빌딩처럼 지붕이 평평한 경우 물이 오래 고이면 해충이 서식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에 빗물이 잘 흐를 수 있는 각도(0.5~2˚)를 유지한다. 빗물을 옮기는 배수관은 물을 충분히 흘려보낼 수 있도록 각 지역의 강수량을 고려해 크기를 설계한다. 수직 길이는 짧은 편이 좋다. 많은 양의 빗물이 높은 곳에서 한꺼번에 떨어질 때 생기는 위치에너지로 배수관이 파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직관이 길 수밖에 없는 고층 건물에는 빗물이 떨어질 때 관이 받는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낙하지점에 일종의 에어백과 같은 충격완충장치를 설치한다.

빗물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낙하하는 빗물의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배수관에서 작은 물레방아 형태의 장치를 돌린다면 빗물 관리 시설을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배수관을 타고 내려온 빗물은 물탱크로 들어가기 전에 정화 필터를 거친다. 배관 중간에 있는 필터는 빗물에 섞여 있는 나뭇잎이나 쓰레기처럼 크기가 큰 오염물질을 걸러 밖으로 배출한다. 배수관의 끝 부분과 물탱크 사이에는 또 다른 필터를 설치한다. 여기에는 오염물질을 가라앉혀서 제거하는 침전형 필터, 물이 필터 내부를 돌며 생기는 원심력을 이용해 오염물질을 분리하며 제거하고 빗물만 여과막을 통과하도록 만든 와류형 필터를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물탱크에서 부유물이나 오염물질을 침전시켜 빗물을 다시 한 번 정화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빗물은 화장실용수나 청소용수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진다. 빗물을 세탁용수나 음용수로 사용하려면 0.1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이상의 입자를 걸러낼 수 있는 미세여과막을 통과시킨 뒤 자외선 살균과정을 거쳐야 한다.

화장실용수와 정원용수, 청소용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의 약 50%를 차지할 정도로 적지 않은 양이다. 빗물만 잘 활용해도 생활에 필요한 물의 절반을 충당할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에는 수질을 고려해 물을 공급하고 배출하는 상·하수도 시스템이 들어설 것이다. 규모 면에서는 지금처럼 하수를 한곳에 모아 처리하는 중앙 집중형 방식이 아니라 소규모 분산형 정화시설로 변할 것이다. 각 주택마다 물을 정화해 바로 사용하는 시설이 들어서면 물 자급률은 크게 올라간다. 물 자급률을 높이려면 물은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이 아니라는 개개인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물부족국가
국민 1명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1000m3 미만은 ‘물기근국가’, 1000~1700m3은 ‘물부족국가’, 1700m3 이상은 ‘물풍요국가’로 분류한다.

한무영 교수는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대건설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그 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토목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경희대를 거쳐 현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있다.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센터장으로서 전 세계에 빗물 이용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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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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