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5cm(갈릴레이) 3.3cm(뉴턴) 126cm(허셜) 2.5m(후커) 5m(헤일) 10m(케크) 30m….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망원경은 천문학자의 욕심만큼이나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도 초대형망원경 중 하나인 구경 25m짜리 거대마젤란망원경 개발에 참여한다고 하는데….

“천문학자들은 신비스런 우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는 열정만 갖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려는 욕심을 갖고 연구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망원경에 몹시 민감하다. 즉 자기 망원경이 가장 좋은 망원경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경쟁의식으로 최고의 망원경을 만들어왔다.” 이는 호주의 천문학자 프레드 왓슨이 쓴 책 ‘망원경으로 떠나는 400년의 여행’ 중 일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망원경. 요물단지 같은 망원경이 처음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전쟁에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군이 뭘 하고 있는지 알면 승리할 방법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망원경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은 없다. 대신 달을 보니 울퉁불퉁하다거나, 토성엔 ‘띠’가 있다거나, 목성에 달이 있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그 기록을 시작으로 4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망원경으로 발견한 우주의 모습은 언제나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갈릴레이가 만들어 사용했던 망원경은 지금 기준에서 보면 애들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구경은 작고, 시야는 좁고 선명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가장자리에는 무지개빛 무늬가 생기는 조잡한 망원경이었다. 그 뒤 수많은 사람들이 긴 세월에 걸쳐 더 큰 망원경, 더 선명한 망원경을 만들었다. 그들 중에는 뉴턴도 있었고, 허셜도 있었다.

천체망원경은 언제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신 기술의 집합체였다. 전기의 힘으로 망원경을 움직일 수 있고 우주를 사진에 담을 수 있게 되자 망원경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더 크고 더 정교한 망원경을 만들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주를 향한 인류의 지적 호기심이 더해져 예술의 경지에 이른 망원경들이 속속 제작됐다. 1917년에 완성돼 미국 윌슨산에 세워진 구경 2.5m 후커 망원경, 1948년 미국 팔로마산에 위용을 드러낸 구경 5m 헤일 망원경은 20세기 천문학을 연 기념비적인 망원경들이다. 그 뒤 망원경은 점차 대형화됐고 최근엔 구경 30m급 망원경을 건설하겠다는 계획까지 나왔다. 대형망원경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대기 방해와 반사경 무게를 넘어
천체망원경의 성능은 얼마나 어두운 천체를 얼마나 자세히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모두 망원경의 구경으로 결정된다. 왜냐하면 구경이 클수록 많은 빛을 모을 수 있어 더 희미한 천체를 볼 수 있고 또한 분해능이 좋아져 더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가 자기 망원경의 크기에 울고 웃는 까닭이고, 천문학자를 ‘구경병 환자’라 부르는 이유다.

어두운 천체를 볼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만일 모든 은하의 밝기가 똑같다면, 어두운 은하는 밝은 은하에 비해 우리에게 더 멀리 있을 것이다. 또 멀리 떨어진 은하에서 오는 빛은 가까이 있는 은하에서 오는 빛보다 더 오래전의 빛이다. 즉 더 어두운 은하는 우주 초기에 생성된 더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끝, 즉 우주가 처음 탄생하던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크고 강력한 망원경을 원한다. 하지만 무작정 더 큰 망원경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술이 문제고 효과가 의문이고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4~5m급 망원경이 제작된 뒤 1990년대 10m급 케크(Keck) 망원경이 탄생하기까지 망원경의 구경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여기에는 몇몇 이유가 있었다. 첫째, 망원경의 구경이 커질수록 많은 빛을 모을 수 있지만 분해능은 제자리걸음이다. 분해능의 한계는 지구 대기가 결정한다. 아지랑이 넘어 물체가 흔들려 보이듯, 공기의 움직임으로 천체의 영상이 흔들리는 시상효과 때문이다.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는 이런 효과가 작아 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망원경을 보통 높은 산꼭대기에 설치하는 이유다. 물론 대기가 없는 우주보다 좋을 수야 없는 노릇이다.

둘째, 지상에 설치한 망원경은 가시광선이나 일부 적외선만 관측할 수 있다. 지구 대기가 천체에서 내놓는 자외선과 상당부분의 적외선을 흡수해 지상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망원경 제작비용이다. 구경이 커지면 반사경의 무게가 늘고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더 견고한 반사경 받침대(미러셀)가 필요해 망원경이 엄청나게 무거워진다. 망원경 가격이 대략 구경의 3제곱에 비례하는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구경이 커지면 망원경 길이도 커져 망원경이 들어가는 돔의 건설비용도 늘고 무거운 것을 구동시키기 위한 전기사용량이 증가해 운영비도 함께 는다.

지상에서 우주망원경 분해능 구현
1970년대 후반부터 지상망원경 개발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영국이 하와이에 적외선 망원경을 건설하기로 계획했다가 소요예산의 절반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 이때부터 망원경 개발 예산을 대폭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망원경 무게는 대부분 주경이 차지하므로 주경을 얇게 만들 방법을 고안했다.

망원경 주경이 커지면 망원경 위치에 따라 미치는 중력이 달라져 주경 모양이 약간씩 찌그러진다. 그동안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경을 두껍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무게가 급속히 증가했다. 영국 천문학자들은 거울을 얇게 하는 대신 이 거울을 받쳐줄 받침대(미러셀)를 새로운 방법으로 제작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경 받침대에 피스 톤과 같은 형태의 강력한 액추에이터들을 배치해 주경에 적절한 힘을 가하면 중력에 의해 일그러진 주경을 원상태로 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능동광학’이라는 이 기술을 처음 적용한 망원경은 1989년 유럽남반구천문대(ESO)가 완성한 구경 3.6m ‘뉴테크놀로지망원경’(NTT)이다. 그 뒤 능동광학기술은 현대 대형망원경의 필수요소가 됐다.

지상망원경이 우주망원경과 같은 분해능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또 다른 획기적인 기술인 ‘적응광학’이 뒤를 이었다. 적응광학은 지구 대기 때문에 왜곡되는 정도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왜곡되기 전의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망원경 광학계와 검출기 사이에 매우 얇은 거울을 두고 이 거울을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 어느 순간에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 그 거울을 어떻게 변형시키면 이 왜곡된 영상을 반듯한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지 계산하고 거울 뒤의 작은 액추에이터들에 적절한 힘을 가해 영상을 보정한다. 현재 초당 수십 번 보정해 근적외선 영역에서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 초당 보정횟수를 늘려 이보다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 영역에서도 깨끗한 영상을 재현하려고 연구 중이다.

능동광학기술로 망원경 제작비용을 절감하고 적응광학기술로 우주망원경에 버금가는 분해능을 확보할 수 있자 대형망원경 개발이 본궤도에 올랐다. 시작은 케크 망원경이었다. 미국 케크 재단은 캘리포니아지역 천문학자들이 하와이 마우나케아라는 해발 4200m 산꼭대기에 10m 망원경 두 대를 설치하려는 계획에 1억 4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하지만 지름 10m의 반사경을 한 장의 유리로 제작하는 일은 무리라, 작은 육각형 반사경 조각 36장을 모자이크하는 방법을 택했다. 능동광학기술을 이용하면 각 조각 거울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전체적으로 10m 반사경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각각 1993년과 1996년에 완성된 케크 망원경은 근적외선 관측에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조각거울을 사용한 탓에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으로 찍은 영상은 육각형 조각거울 무늬가 나타나 충분한 분해능을 얻을 수 없었다.

초대형망원경으로 우주 탄생 장면 본다?
후발주자들은 케크 망원경과 달리 조각거울이 아닌 한 장의 유리로 된 반사경을 채택했다. 유럽은 칠레에 구경 8.2m 망원경 4대를 설치하는 VLT(Very Large Telescope)계획을, 미국은 6개국과 함께 하와이와 칠레에 각각 8.2m 망원경을 하나씩 설치하는 제미니 천문대 계획을 추진했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독자적으로 8.3m 망원경을 하와이 마우나케아에 설치하는 수바루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들 망원경은 모두 비슷한 크기의 얇은 반사경에 능동광학과 적응광학 기술을 적용했다. 1999년에서 2001년 사이에 완성된 이들 망원경은 놀랄 만한 관측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적응광학을 이용한 관측에서는 분해능이 허블우주망원경과 비슷한 0.05″에 이르고 있다.

8m급 망원경 개발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천문학자들이 원하던 우주 탄생 장면을 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경 30m급은 돼야 빅뱅 이후 10억 년이 지난 뒤 처음 생겨난 은하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8m급 망원경 개발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그 뒤 진전된 새로운 기술 덕분에 30m급 망원경을 개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작에 투입되는 예산이 아깝지 않을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초대형망원경 사업들로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가 주도하는 구경 30m의 ‘30미터망원경’(TMT), 미국 카네기연구소가 주도하는 구경 25m짜리 ‘거대마젤란망원경’(GMT), 그리고 유럽이 추진하는 구경 42m의 ‘유럽초대형망원경’(E-ELT) 등이 있다. 이들은 2010년대 중·후반 30m급 망원경을 완성하려고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망원경은 우주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정확히 알아내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며 외계행성계와 생명의 탄생을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발견의 학문인 천문학에서는 어떤 망원경을 가졌는지가 경쟁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큰 망원경이 지름 1.8m에 지나지 않아 천문학 환경이 열악한 실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올해부터 구경 25m의 GMT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이 망원경은 다른 초대형망원경이 지름 2m 정도의 조각거울 수백 개를 모자이크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비해, 8.4m 반사경 7개를 하나의 반사경처럼 작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다른 초대형망원경보다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으며 실패의 위험성도 낮다는 장점이 있다. 카네기연구소를 비롯해 하버드대, 스미소니언천문대 같은 미국 내 유수의 천문학기관, 호주국립천문대 등이 참여하는 GMT 개발 프로젝트에 우리나라를 대표해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한다. 총 예산 7억 4000만 달러 중 10%인 7400만 달러를 우리나라가 부담하는 이 망원경은 2018년 칠레 라스 캄파나스에 설치될 예정이다.

망원경은 우주를 이해하려는 인류의 염원을 담은 거대한 눈이다. 우주를 이해하는 일은 인간의 정체성, 즉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정립하는 작업이다. GMT를 이용해 우리나라 천문학자가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인류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인류에 가장 가치 있는 공헌을 할 멋진 날이 말이다.

김호일 연구원은 연세대 대학원에서 식변광성 ‘알골’과 ‘SX Cas’의 광도곡선의 분석과 그 모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대형망원경그룹에서 변광천체 연구와 더불어 대형광학망원경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우주 나이 밝힌 허블우주망원경
별의 전령사, 갈릴레이
망원경, 크기를 향한 무한도전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호일 한국천문연구원 대형망원경그룹 책임연구원 기자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항공·우주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