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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보다 무서운 슈퍼박테리아
폐렴과 내막염, 요로감염을 일으키는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 균. 원래 이 박테리아(세균)는 항생제에 내성을 갖지 않아 치료가 쉬울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은 잘 감염되지 않는 균이었다. 그런데 2003년 이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로 변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2005년 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미군 280명이 이 균에 감염돼 그 중 5명이 사망했고 프랑스군도 112명이 감염돼 18명이 사망했다. 이 균에 감염된 사람들은 어떤 항생제를 처방해도 낫지 않고 결국 상처부위가 악화돼 죽었다. 미군 자체 조사결과 2003년부터 2005년 5월까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한 군인 396명 중 약 10%인 40명이 이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덴마크에서는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는 슈퍼살모넬라가 독일산 칠면조 고기에서 발견돼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다. 농장에서 사육되는 가축에 무분별하게 사용된 항생제가 그 원인이었다. 이 살모넬라균은 항생제 17종 중 16개에 내성을 갖고 있었다. 이는 인류가 더 이상 환경과 식품에서도 내성균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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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떨까. 항생제 오남용으로 항생제 내성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도 이런 ‘변종’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황색포도상구균의 약 70%가 항생제 내성 MRSA이다. 유럽은 포도상구균 중 MRSA의 비율이 46%이며, 항생제 사용을 철저히 관리한 덴마크는 1.7%에 불과하다.
1966년 항생제 반코마이신이 등장하며 MRSA를 치료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996년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던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반코마이신 내성 포도상구균, VRSA)가 일본에 나타났다. 이런 슈퍼박테리아는 항생제 내성유전자를 내성이 없는 박테리아에게 전달해 또 다른 슈퍼박테리아를 탄생시킨다. 하루 빨리 슈퍼박테리아를 물리칠 슈퍼항생제를 개발하지 못하면 인류는 1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크기의 작은 박테리아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사이버 박테리아 이용해 슈퍼항생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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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슈퍼항생제를 개발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슈퍼박테리아의 약점, 즉 새로운 약물 표적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세포벽 합성을 막거나 단백질 합성 과정과 RNA 합성 과정을 방해하는 물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슈퍼박테리아에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2001년부터 필자의 연구팀은 박테리아의 물질대사 과정에 필요한 수많은 효소들 중에서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를 찾아내 항생제의 표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박테리아 하나가 수천 가지 효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박테리아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효소나 유전자를 찾는 일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가상세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가상세포에서 슈퍼박테리아를 만든 뒤 분석 프로그램으로 세포의 생존에 꼭 필요한 반응과 유전자를 찾아내 약물과 세포의 반응을 시뮬레이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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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슈퍼박테리아의 게놈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가상세포를 만든 뒤 슈퍼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유전자나 효소를 찾아 항생제의 표적으로 삼는다. 그 뒤 표적과 반응을 일으키는 화합물을 찾아내 항생제가 슈퍼박테리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이때 ‘초고속 고효율 약효 검색 시스템’(HTS)을 이용하면 수백 가지 화합물을 한꺼번에 분석해 표적과 반응하는 화합물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만일 가상세포에서 표적으로 예측한 유전자나 효소의 3차원 구조와 물리·화학적 특성이 알려져 있다면 슈퍼항생제를 쉽게 만들 수 있다.
항생제를 생산하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갖는 슈퍼항생제를 만들 수도 있다. 항생제를 생산하는 다양한 효소와 인공적으로 합성한 효소를 미생물에 집어넣어 미생물이 만드는 항생제의 구조를 바꾸거나 미생물의 항생제 합성경로를 조작해서 새로운 구조의 항생제를 개발한다.
최근 전세계에서 슈퍼박테리아를 박멸하기 위한 슈퍼항생제 개발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의 제약회사인 큐비스트 파머스티컬은 피부 감염을 치료하는 항생제 답토마이신을 생산하는 곰팡이의 유전자를 조작해 답토마이신의 생산능력과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답토마이신의 생산을 담당하는 유전자들 중 특정 위치의 DNA 염기서열을 바꾸는 방법으로 변형시켜 답토마이신의 유도체를 생산한다.
‘슈퍼 하이퍼 울트라’ 항생제
레이저로 슈퍼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됐다. 영국 런던대 마이클 윌슨 박사팀은 지난 7월 질병진단에 사용하는 레이저를 이용해 박테리아의 DNA와 세포막을 양면으로 공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윌슨 박사팀은 이 레이저 기술을 이용하면 값싸고 신속하게 슈퍼박테리아를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원곤 박사팀이 지난 1월 방선균에서 슈퍼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항균물질을 추출했다. 이 물질을 슈퍼박테리아(VRSA)에 투여했을 때 박테리아 1만 마리 당 1마리만 살아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노력 덕분에 조만간 슈퍼박테리아를 잡는 슈퍼항생제가 나올 전망이다. 그러나 언젠가 슈퍼박테리아보다 더 강력한 ‘하이퍼 울트라’박테리아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 인간이 더 강한 항생제를 사용할수록 내성균도 진화해 강해지기 때문이다. 항생제와 내성균의 끝없는 싸움, 그 승자는 누가 될까.
빠르게 병원균 검출하는 진단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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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 국내 병원에서는 감염질환을 진단할 때 감염된 환자의 혈액을 배양해 감염균을 증식시킨 뒤 균의 종류를 확인한다.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정확도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병원균을 검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 같은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가 다른 환자에게 균을 옮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자가 가진 병원균을 빠르고 정확하게 검사할 수 있는 진단키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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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에는 특정 감염균의 항원을 감지하는 단일 항체나 감염균에 감염됐을 때 생성되는 물질, 그리고 항체를 감지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 검사 물질에 균이 존재하면 칩에 특정 색이 나타나 눈으로 쉽게 감염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KAIST 대사및생물분자공학연구실은 감염질환의 원인균 44종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DNA 칩을 생명공학 벤처인 메디제네스와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팀과 함께 개발했다. DNA 칩은 감염질환 진단용 칩 안에 박테리아의 특정 DNA 염기서열과 결합할 수 있는 DNA 조각을 고정해 놓은 장치다. 박테리아마다 DNA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균에서 추출한 DNA와 칩에 심어놓은 DNA가 결합하는 위치를 살펴보면 감염균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다. 칩의 A 위치에는 대장균, B 위치에는 콜레라를 검출할 수 있는 DNA 조각이 있는 식이다. 이렇게 박테리아를 검출한 뒤 항생제 내성을 검사하면 슈퍼박테리아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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