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 1, 0. 발사!”
1992년 8월 11일 프랑스령 남미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한국의 우리별 1호가 아리안로켓에 실려 우주로 떠났다. 48.6kg짜리 소형위성 우리별은 발사 후 23분 36초 만에 로켓에서 정상적으로 분리됐고 12시간 뒤 대전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첫 신호를 보내왔다. ‘한국판 스푸트니크’가 성공적으로 탄생했음을 알리는 축하메시지였던 셈이다.
한국은 이렇게 러시아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지 35년 뒤에야 세계에서 22번째로 위성 보유국이 됐다. 그것도 남의 땅에서 남의 로켓을 빌려. 뿐만 아니라 위성은 영국에서 영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제작했기에 일부에서는 ‘남의 별’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우리별 1호를 제작한 우리 젊은 과학기술자들은 우리 기술로 무장해 우리별 2·3호, 과학기술위성 1·2호를 잇달아 개발했고, 급기야 소형위성을 동남아시아와 중동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15년 전 최초의 위성을 발사한 한국은 소형위성 분야에서 위성 선진국을 놀라게 하는 ‘스푸트니크 쇼크’를 일으키고 있다.
위성 기술 배운 영국 서리대 능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개발할 영국 유학생을 모집합니다.” 1989년 여름방학 KAIST 게시판에 붙은 이 공고를 보고 KAIST 1기 졸업생이 몰려들었고 이들 가운데 5명이 최종 선발됐다. 이 5명이 그해 10월 영국 서리대로 유학을 떠나면서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우리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듬해에는 KAIST 내에 인공위성연구센터도 설립됐다.
우리별 1호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젊은이들은 모두 인공위성에 미쳐 있었다. 영국 유학시절 밥을 먹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험실로 달려갔고, 문제가 안 풀려 끙끙거리다 잠들었을 때 꿈속에서 ‘산신령의 계시’를 받기도 했다. 영국 교수들이 얘기하는 위성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휴지통을 뒤져가며 설명 자료를 찾아 기술을 익혔다.
3년간의 고생 끝에 우리 연구진은 영국 서리대 연구진에게서 기술을 배우며 우리별 1호를 개발했고 우주에 띄우는데도 성공했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진은 우리 힘으로 우리별 2호를 개발했다.
제대로 위성기술을 익혔는지 하나씩 확인하고 위성부품의 국산화비율을 높였다. 부품 1만2000개 가운데 800여개를 국산품으로 썼다. 47.5kg의 우리별 2호는 1993년 9월 발사에 성공했고 한반도를 촬영한 컬러사진도 보내왔다.
6년쯤 뒤인 1999년 5월 인도의 샤르기지에서 발사한 110kg짜리 우리별 3호는 ‘진짜 우리별’이었다. 영국 서리대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며 100% 토종 기술로 제작했기 때문. 설계부터 독자적이었으며 3축 자세 제어시스템을 채택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구경 10cm의 위성카메라는 13.5m의 해상도로 지구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며, 폭 50km에 길이 1000km의 사진까지 촬영해 삼성이 만든 10GB 대용량 반도체메모리에 저장했다가 고속으로 영상자료를 전송할 수 있었다. 우리별 프로젝트를 총지휘한 최순달 박사에 따르면 우리별 3호를 개발한 기술력만큼은 소형위성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영국 서리대 유학파 1기로 우리별 1·2·3호를 개발하는데 참여했던 쎄트렉아이 장현석 부사장은 “영국 서리대의 위성 연구 총책임자였던 마틴 스위팅 교수는 우리더러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며 “특히 영상기술 면에서는 우리가 기술을 배웠던 서리대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별 3호가 당시 세계의 소형위성 가운데 가장 앞섰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소형위성, 동남아와 중동으로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소형위성 개발을 이끌어온 인공위성연구센터는 우리별 3호를 발사한 뒤부터 힘든 시련에 부딪쳤다. 최순달 박사의 자서전 ‘48년 후 이 아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립니다’에 따르면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위성기술 수준이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다 보니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위성 개발의 주도권을 뺏기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인공위성연구센터의 문을 닫고 연구원들을 항우연에서 흡수한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원들은 난상토론 끝에 “이럴 바에야 정부 돈을 받지 않고 우리끼리 해보자”며 뜻을 모았다. 인공위성연구센터에 몸담았던 일부 교수와 연구원 20여명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각자 사재를 털어 2000년 1월 인공위성 제조 벤처기업 ‘쎄트렉아이’를 세웠다. 쎄트렉아이는 우리별 개발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을 이용해 100kg 내외의 소형위성 시장을 주요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 러시아 같은 우주개발 선진국이 대형위성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찾아낸 틈새시장이다.
첫 성과는 2001년에 나왔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1500만달러 규모의 소형관측위성 1대를 수주했던 것. 말레이시아 총리의 이름을 따 ‘라작샛’이라 불리는 이 위성은 개발을 마치고 내년 초 발사만 기다리고 있다. 2.5m 해상도의 카메라가 실린 200kg짜리 라작샛은 한국이 수출한 첫 위성이다. 국내 관련 전문가들은 큰기관도 못한 일을 조그만 벤처회사에서 하다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쎄트렉아이는 지난해 5월 중동의 한 국가에서 관측위성 1대를 추가로 수주했다. 2003년 태국에 위성자세제어용 부품을 공급했고 터키와 싱가포르에는 해상도 10m의 전자광학카메라를 수출했다. 아리랑 2호의 위성영상 수신처리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장 부사장은 “현재 소형위성 시장의 리더는 영국 서리대가 주축이 돼 세운 SSTL사”라며 “우리는 소형위성 시장에서 SSTL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쎄트렉아이의 매출목표는 200억원이다.
100kg 과학위성에서 1kg 한누리까지
인공위성연구센터의 남은 연구원들은 분위기를 추스르고 우리별 3호를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의 첫 우주관측용 위성인 과학기술위성 1호를 개발하는데 전념했다. 2003년 9월에 발사된 이 위성은 ‘원자외선 우주망원경’(FIMS)으로 우리은하 전체를 관측하는 쾌거를 거뒀고,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논문 9편은 지난해 7월 천체물리학 분야 국제저널 ‘아스트로피지컬 저널 레터’ 특별호에 실렸다.
2005년 말 개발을 마친 100kg급 소형위성인 과학기술위성 2호는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과기부와 항우연은 내년 하반기에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우리 발사체(KSLV-1)에 실어 쏘아올릴 계획이기 때문. 과학기술위성 2호는 한국이 위성을 처음 자력으로 발사하는 뜻깊은 사건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현재 과기부는 과학기술위성 3호를 개발할 기관을 선정한 상태다. 위성본체와 핵심우주기반기술은 인공위성연구센터, 충남대, 우석대, KAIST가 개발하고 탑재체는 한국천문연구원과 공주대가 개발할 예정이다. 인공위성연구센터 이상현 시스템팀장은 “3호는 위성체 전체를 복합재로 개발하고 적외선 영상시스템과 초소형 영상분광기를 탑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항우연과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중심이 돼 3호 개발에 참여하는 기관과 대학의 연구자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처음 하는 시도다.
최근 국내에서 위성 개발의 저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예를들어 대학에서 초소형위성을 개발해온 대표적 연구실로, 2002년 과기부 국가지정연구실(NRL)로 지정된 한국항공대 우주시스템연구실이 있다. 2년여간 개발한 끝에 지난해 7월 발사한 1kg짜리 초소형위성 ‘한누리 1호’가 비록 러시아 로켓 이상으로 실패했지만, 현재 개발을 거의 마친 25kg짜리 한누리 2호가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
한누리 2호는 독수리 같은 희귀동물을 추적하고 우주 플라스마와 방사선량을 측정할 장비를 싣고 있다. 쎄트렉아이에서 개발한 별센서와 네비콤에서 개발한 우주용 GPS 수신기를 우주에서 인증하는 임무도 수행할 계획이다.
우주시스템연구실에서는 지난해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할 우주실험으로 초소형위성 발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우주인이 수kg의 초소형위성을 ISS 진행방향과 반대로 던지면 이 위성은 궤도를 돌며 우주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지구사진도 찍는 실험이었다. 한국항공대 우주시스템연구실의 책임자인 장영근 교수는 “러시아에서 엄청난 비용(150억원)을 추가로 요구해 우주인의 초소형위성 발사실험은 무산됐다”고 말했다. 현재 우주시스템연구실에서는 3kg짜리 초소형위성 ‘한누리 3호’를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러 기관과 대학에서 초소형위성을 포함한 소형위성을 개발할 능력을 키우며 인프라와 연구인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면 ‘한국발 스푸트니크 쇼크’는 계속될 것이다.
대형위성이냐, 소형위성이냐
한국은 지금까지 총 12기의 위성을 발사했다.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위성) 1·2호, 무궁화위성 1·2·3·5호, 한별위성, 우리별 1·2·3호, 과학기술위성 1호, 한누리 1호가 우주로 향했던 우리 위성이다. 또 현재 아리랑위성 3·3A·5호, 통신해양기상위성, 과학기술위성 2·3호, 한누리 2·3호 총 8기의 위성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어떤 위성을 개발하는 게 좋을까. 대형위성일까, 소형위성일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다목적실용위성5호사업단 이상률 단장은 “전자제품처럼 대형보다 소형이 좋다는 논리는 위성에 맞지 않다”며 “대형이냐, 소형이냐는 임무에 따라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국가 상공에 머물기 위해 고도 3만6000km의 정지궤도에 올려야 하는 통신방송위성은 지난 40년간 줄곧 대형화돼 왔다. 정지궤도가 제한돼 있고 위성에 가능한 한 많은 중계기를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통신방송위성은 4~6톤까지 나가고 수명도 15~20년까지 길어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통신방송위성이 아닌 아리랑위성도 점점 대형화되고 있다. 1호는 무게가 470kg이기 때문에 소형위성에 속했다. 하지만 2호(776kg)부터는 소형위성의 범위를 벗어난다. 3호는 1톤으로, 5호는 1.4톤으로 각각 개발되고 있다.
이 단장은 “위성은 대량생산을 안하니 첨단부품을 쓰기 힘들다”며 “현재 우주용 부품은 우주환경에 견디는 검증된 부품을 사용해 소형화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실용위성은 수백kg 정도는 돼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소형위성은 가격이 싸고 빨리 만들 수 있어 새로운 기술이나 장비를 개발하는데 유용하다. 정부가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에서 과학기술위성은 3호로 종료하고 그뒤 기술시험용 소형위성을 개발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기술시험위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임무를 수행하는 소형위성도 개발될 전망이다.
최근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듯이 위성에서 소형위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소형위성의 위력은 점차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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