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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자 없이 수정하는 난자 처녀생식

여성용 줄기세포 얻는 방법

아버지 없이도 자식이 태어날 수 있을까? 상식을 뒤집는 질문이다. 하지만 최근 생명과학 연구들을 보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아버지 없는 쥐’가 태어난 적이 있다. 정자 없이 난자 두 개가 만나 수정이 이뤄진 ‘처녀생식’의 결과였다. 당시 머지않아 레즈비언 커플도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될지 모른다는 추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는 정상적인 발생과정에서 처녀생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처녀생식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1월 10일 황우석 교수 논문의 진위 여부를 조사한 서울대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최종 발표에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2004년 논문의 경우 줄기세포를 처녀생식으로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체세포 복제와 처녀생식


줄기세포의 정체를 밝혀라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려면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다. 이 난자에 체세포를 이식해 전기충격을 주면 복제 수정란이 된다. 이를 4~6일간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하면 줄기세포를 추출할 수 있다. 그런데 핵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자에 전기충격을 주면 난자는 정자가 들어온 것으로 착각해 ‘우연히’ 수정란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처녀생식(단성생식)이다.

조사위는 체세포를 제공한 B씨의 혈액 미토콘드리아(세포 내 소기관)와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난자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B씨가 난자를 제공했다면 두 유전자는 같아야 한다. 실제로 검사 결과는 일치했다.

문제는 B씨 혈액과 줄기세포의 핵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다. 48개의 마커 가운데 40개만 일치하고 나머지 8개는 다르게 나온 것. 줄기세포가 정말 체세포 복제 기술로 만들어졌다면 핵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세포의 정체는 뭘까.

황 교수의 2004년 논문에는 줄기세포가 처녀생식이 아님을 입증하는 실험 결과가 나와 있다. 바로 ‘각인’ 현상을 조사한 것.

보통 수정란은 부모에게서 염색체를 하나씩 물려받는다. 같은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부모에게 받은 염색체에서 모두 발현되면 유전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어느 한쪽만 발현돼야 한다. 이 현상을 ‘각인’(imprinting)이라고 한다. 각인 현상은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의 발생 초기에 유전자 특정 부분에 메틸기가 붙어 발현을 방해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즉 부모 양쪽에게 받은 유전자 중 메틸기가 붙지 않은 쪽만 발현된다는 얘기다.

황 교수팀은 줄기세포에서 각인 현상이 나타나는 유전자 4개가 발현되는 양상을 처녀생식으로 만든 원숭이 배아줄기세포와 비교해봤다. 처녀생식 유래 원숭이 배아줄기세포는 미국 미시간주립대 동물생리학과 호세 시벨리 교수에게 얻었다. 원숭이 배아줄기세포에서는 모계에서 온 유전자만 발현된데 반해 황 교수팀 줄기세포에서는 부계와 모계가 모두 발현됐다.

조사위는 이 같은 실험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전자 검사로 처녀생식 여부를 가릴 수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다.

최근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유전학 전공 두 교수가 “조사위 최종 보고서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처녀생식의 가능성을 입증한다”는 근거를 과학동아에 제공했다.
 

정자를 냉동보관하는 장치


조사위가 보고서에 공개한 DNA지문검사 결과를 보면 각 마커마다 피크가 하나 또는 두 개 나타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받은 유전자형이 같으면 피크가 하나(동형접합, homozygote), 다르면 둘이다(이형접합, heterozygote). 일치하지 않는 8개 마커의 경우 B씨 체세포(혈액)에서는 이형접합, 줄기세포에서는 동형접합으로 나타났다. 줄기세포도 8개 마커에서 모두 이형접합이 나타나야 복제됐다는 증거가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는 ‘교차’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생식세포에서는 특이하게도 상동염색체들이 서로 자리를 맞바꾸는 일이 일어나는데, 이를 교차(crossover)라고 한다. 즉 난자에서 염색체가 제거되지 않고 처녀생식이 이뤄지면 교차가 일어난 염색체의 DNA지문이 이형접합에서 동형접합으로 변할 수 있다.

집단유전학을 전공한 다른 한 교수도 “생식세포가 분열하는 동안 염색체끼리 교차가 일어나면 동형접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또한 최종 보고서에서 직접 체세포를 이식했던 연구원이 “실험 도중 극체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 우연히 처녀생식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여성은 난소에 일정한 수의 난모세포를 갖고 태어난다. 난모세포는 자라는 동안 2번 분열해 극체 3개와 난세포 1개가 된다. 발생에 필요한 물질들이 난세포에 집중되기 때문에 난세포만 난자로 성숙하고 극체는 퇴화해서 없어진다. 황 교수팀 연구원은 난자가 극체를 정자로 착각하고 스스로 분열해 수정란이 됐을 가능성을 말한 것.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이 진술을 한) 연구원은 난자를 다루는 기술이 없었다”며 “극체를 난자에 주입한다는 것은 기술적 측면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못박았다.
 

01 인공수정하기 위해 준비된 난자와 정자. 02 정액. 1㎖에 정자가 약 6000만개나 들어있다.


치료 가능성에 좀더 신중해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분자유전학연구실의 한 연구원은 “각인 현상을 확인할 때 중요하게 쓰이는 유전자로 황 교수팀이 검사한 H19 외에 IGF2도 있다. 논문 제출 당시 황 교수팀은 이것도 검사했어야 하고, 검사한 유전자의 다형성, 메틸기가 붙은 위치 등도 모두 확인한 다음에야 처녀생식 여부를 결론 내려야 하지 않았나”라는 의견을 보내오기도 했다.

처녀생식이 발생과정 중에 미세한 유전자 수준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들이 아직 체계적으로 확립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처녀생식을 연구해왔다.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녀생식으로 생긴 배아를 배반포 단계까지 키우면 된다. 1970년대 후반 영국 에든버러대 의대에서 생쥐의 처녀생식 배아를 만들었지만 일찍 죽고 말았다. 2002년 시벨리 교수는 원숭이로 처녀생식 배아를 만든 다음 줄기세포를 얻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2004년 4월 ‘네이처’는 한국 생명공학벤처기업 마크로젠과 일본 도쿄농대 고노 도모히로 교수의 공동연구팀이 쥐에서 난자만으로 새끼를 태어나게 한 연구결과를 실었다. 연구팀은 쥐에서 덜 자란 난자를 채취한 다음 유전자를 조작해 각인 현상이 일어난 정자의 유전자처럼 ‘변장’시켰다. 이를 성숙한 난자에 결합시켜 수정란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지금까지 처녀생식이 보고된 사례가 없다. 그만큼 처녀생식을 유도하는 기술이 매우 어렵다는 얘기. 따라서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가 정말 처녀생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묘하게도 이 역시 ‘세계 최초’가 된다.

처녀생식 줄기세포는 난치병 치료에 쓰일 수 있다. 단 환자가 여성이어야 한다. 환자에서 난자를 채취해 처녀생식으로 수정란을 만든 다음 줄기세포를 얻으면 이 환자에게 이식할 때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여성용’ 줄기세포인 셈.

하지만 현재 황 교수팀이 처녀생식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내 한 줄기세포 전문가는 “설사 처녀생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의학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NA 지문검사로 확인한 처녀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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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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