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은 1960년대 전후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사람들의 식단을 건강에 가장 좋은 식단으로 꼽았다. 그들은 현미 같은 곡물이 들어간 빵, 파스타, 쌀, 과일, 콩, 야채, 치즈, 요거트, 올리브 오일을 매일 먹었다. 생선, 계란, 사탕, 닭이나 오리고기는 1주일에 한번, 붉은색 고기류는 그보다 덜 먹었다. 당시 그들은 이웃 나라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고 한다.
식습관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례는 이 외에도 많다. 1970년대 핀란드 남자는 심장질환에 걸리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그들의 식단은 우유, 치즈, 소금기 많은 음식이 대부분이었고, 과일과 채소 섭취는 극히 적었다. 핀란드는 30년 동안 자국민의 식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재는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당시의 1/4로 떨어졌다.
다행히 우리나라 식단은 서양에 비해 ‘뚱뚱해질 우려’가 덜하다. 손숙미 교수는 “같은 열량의 식단이라도 한식이 양식에 비해 배부른 느낌이 더 크고 오래 간다”고 말한다. 단 짜게 먹진 말아야 한다. 반찬이 짜면 열량이 높은 밥을 많이 먹게 돼 체중조절이 어려울 뿐 아니라 체내에서 염분을 희석시키기 위해 수분을 내보내지 않아 몸이 붓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방을 완전히 없애는 식품은 없다. 박용우 교수는 “운동하지 않고 먹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다이어트가 불가능하다”고 일축한다. 지방은 대사과정에서 글리세롤과 지방산으로 분해되는데, 글리세롤은 간에 저장되고 지방산은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지방산이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않으면 체내에 쌓여 비만의 원인이 된다. 식품이 지방을 감소시킨다는 얘기는 지방산이 쌓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두 얼굴의 식품
식품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먹으면 열량을 높여 살을 찌우는가 하면, 먹어야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기초대사량이 늘어나므로 뚱뚱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저열량 식사를 하면 우리 몸은 ‘에너지 절약장치’를 가동한다. 생존하기 위해 기초대사량을 줄여 에너지를 덜 쓴다는 얘기다. 온몸이 ‘깍쟁이’가 되는 셈. 이렇게 기초대사량이 줄어든 상태에서는 같은 열량의 음식을 먹더라도 더 살이 찐다.
여성이 출산이나 폐경 후 살이 찌는 것도 기초대사량이 떨어졌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2월 24일자에 따르면 북극지방에 사는 한 부족은 전통적으로 고기를 많이 먹는데도 혈중 지질 농도가 낮아 심장질환 발생 위험이 적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미국 노스웨스턴대 인류학자 윌리엄 레오나드 박사는 “극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인체가 기초대사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환경이나 인종 등에 따라 비만으로 질병이 발생하는 정도가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체질량지수’(BMI)가 25를 넘으면 과체중, 30을 넘으면 비만으로 정의한다. 체질량지수 30 이상이면 고지혈증, 당뇨, 고혈압, 관절염 같은 질병이 나타난다는 얘기.
그러나 동양인들은 체질량지수가 25만 넘어도 이 같은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서양인보다 체격이 작기 때문이란다. 또 동양인의 유전자가 에너지를 아껴 쓰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다. 최근 수세기 동안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이 굶주려 살아왔기에 가능한 에너지를 적게 쓰고 많이 저장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생존에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치면 연비가 좋은 제품이 살아남은 셈.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체질량지수 25 이상을 비만으로 보고 있다. 또 서양에서는 허리둘레가 남자 102cm, 여자 88cm 이상이면 복부비만이나, 우리나라는 남자 90cm, 여자 80cm 이상이 복부비만이다.
고탄수화물 식사가 복부비만 불러
국외 연구논문에 따르면 같은 체질량지수에서도 동양 여성이 서양 여성보다 복부비만과 고지혈증이 많다고 한다.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심층분석에 참여한 손숙미 교수는 “국내 여성의 경우 곡류 위주의 탄수화물 식사를 많이 할수록 복부비만이 많았다”며 “고탄수화물 식사가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켜 복부에 지방을 축적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영양학계에서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65:15:20의 비율로 섭취하는 게 좋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 조사로 탄수화물 섭취 비율을 좀더 낮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영양학자들은 여러가지 식품 성분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특정 성분이 체중조절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이를 추출, 농축해 다량 섭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성분이 갖고 있을지도 모를 독성이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품으로 섭취해야 함께 들어있는 다른 성분이 그런 나쁜 효과를 가려줄 수 있다는 것.
결국 살 빼는데는 ‘왕도’가 없다. 골고루 먹고 운동하는 게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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