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04. 유전자 부실하면 몸조심해 살아 남는다

유전자 검사로 암 예방하는 시대

 

사고나 역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현대인은 유전자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질병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질병유전자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사고나 역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현대인은 유전자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질병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질병유전자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11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32세의 비키 존스는 3시간에 걸쳐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유방은 양쪽 모두 멀쩡했다는 것. 도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여성의 상징’을 희생하는 결단을 내리게 했을까.

존스가 아직 어렸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41살이란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5년 전 그녀의 언니 역시 36살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아직까지 투병중이다.

“난 아이들이 내가 어머니를 기억하듯 나를 기억하게 하고싶지 않습니다.”

암이 퍼져 양팔까지 절단했던 말년의 어머니 모습을 그녀는 여전히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과연 존스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가. 아니면 암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이 부른 어이없는 자해행위인가.

“이런 수술을 완전히 넌센스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일부 유방암의 경우 유전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도 경솔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서울대 의대 유방종양외과 노동영 교수의 설명이다. 유방암의 5-10% 정도는 확실히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한다. 17번 염색체에 있는 BRCA1 유전자와 13번 염색체에 있는 BRCA2 유전자가 대표적인 유방암 관련 유전자다.

돌연변이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중년 이후 유방암이 생길 확률이 아주 높다. 의사들은 존스가 수술하지 않을 경우 그녀 일생 중 암이 생길 확률을 50-60%로 예측했다. 수술을 할 경우에는 1% 내외로 크게 낮아진다.

암의 90%는 환경 영향
 

식생활은 암발생 원인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도 고기 소비가 늘면서 비만과 대장암 등 서구형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식생활은 암발생 원인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도 고기 소비가 늘면서 비만과 대장암 등 서구형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암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암발생 원인 가운데 유전적 요인은 10% 정도이고 90%는 흡연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암은 세포내 유전자 돌연변이가 누적된 결과다. 다만 이런 돌연변이는 일생동안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그 빈도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인체는 세포가 적시적소에서 분열하고 소멸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세포의 분열을 촉진하는 종양유전자와 중지시키는 종양억제유전자의 정교한 협력작용을 통해 통제된다. 유전적이든 환경 요인이든 이들 유전자가 망가지면 세포분열이 제멋대로 일어나 암조직이 생긴다. 이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난다.

대장암을 예로 들어보자. 먼저 APC종양억제유전자가 돌연변이로 망가지면 대장 점막에 폴립이라는 돌기가 생긴다. 다음단계로 RAS종양유전자가 돌연변이로 활동이 왕성해지면 돌기가 종양으로 발전한다. 이때 TP53이란 종양억제유전자까지 돌연변이로 작동이 멈추면 암이 걷잡을 수 없이 자란다. 화학요법이나 방사능요법도 잘 듣지 않는 치명적인 암의 대부분은 이미 TP53까지 망가진 상태다.

이처럼 암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니라 수십년에 걸친 삶의 궤적이 유전자에 반영된 결과다. 따라서 개인의 노력으로 암의 발생을 막거나 적어도 발병시기를 늦출 수 있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태어나도 유방암이 걸리지 않는 경우는 이후의 진행과정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게놈 연구가 급진전하면서 인체의 모든 유전자를 심어놓은 DNA칩이 나오고 있다. 아직까지는 모든 유전자의 기능이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환자에 적용할 단계는 아니다. 앞으로 이들의 역할이 밝혀지면 DNA칩으로 정기검진을 받는 사람들의 유전자 발현 유형을 분석해 현재 암이 있는지 여부뿐 아니라 추후 암이 발생할 가능성을 정밀하게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만, 게으름 문제만은 아니다
 

DNA 전기영동법으로 비만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고 있다.DNA 전기영동법으로 비만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고 있다.


“체중계는 눈에 보이는 양심으로 육체뿐 아니라 인격을 잰다.”

미국의 작가 크리스틴 터휸 헤릭은 1917년 출간된 ‘살 빼고 잘 살기’ 란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체중계의 숫자가 낮을수록 영혼은 더 고귀하다. 헤릭의 생각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뚱뚱함을 게으름이나 음식 앞에서의 무절제, 즉 의지박약과 연관짓는다.

최근 들어 비만은 지구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세계 인구 중 대략 17억명이 과체중이며 이로 인한 합병증이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식품을 먹지 않고 못배기게 하는 자극적인 광고, 정적인 생활습관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뚱뚱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비만은 현대인의 불가피한 운명인가.

“물론 칼로리 과잉과 운동부족이 평균체중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비만이 되는 것은 아니죠.”

비만과 당뇨전문가인 서울대 의대 박경수 교수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미국으로 이민간 일본인 중에는 순식간에 비만이 된 사람이 많다. 담백한 일본음식에 비해 기름지고 양이 많은 미국음식이 원인이다. 그런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이민자 가운데 비만이 된 사람들은 특정한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세포가 자라는데 관여하는 피파감마(PPARγ ) 단백질은 두가지 유형이 있다. 12번째 아미노산이 프롤린(Pro)인 경우와 알라닌(Ala)인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아미노산이 하나만 틀려도 단백질의 활성에 큰 차이가 난다. 프롤린 유형의 활성은 알라닌 유형의 2.5배나 된다. 따라서 프롤린 유형의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은 영양과잉시 더 쉽게 살이 찐다.

쌍둥이 연구도 비만의 유전경향이 강함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비만 상관관계는 26%이고 형제간에는 34%다. 이란성 쌍둥이는 43%이고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는 80%에 이른다.

반면 환경의 영향은 미미하다. 양부모와 입양아의 상관관계는 고작 4%이고 한 가정에서 자란 혈연관계가 없는 입양아들 사이는 1%에 불과하다. 반면 다른 가정에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들은 여전히 72%의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그렇다면 비만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안심해도 될까. 실망스럽게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근을 겪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대부분 비만이 된 사례가 보고됐다. 저체중 신생아들 역시 자라서 평균 성인보다 더 살이 찐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영양이 결핍되면 조금이라도 더 영양분을 끌어당기기 위해 관련 유전자의 발현빈도가 재조정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산모가 몸매관리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커서 비만이 될 아이를 낳는 결과로 이어진다” 며 “적당한 식사량과 운동량 속에서 유지되는 체중이 건강에 가장 좋다” 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록펠러대 신경과학자인 사라 라이보비츠 박사는 동물실험에서 자주 기름진 음식에 노출되면 점점 더 많은 지방을 원하도록 뇌가 변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운동부족 역시 뇌의 체중조절 메커니즘에 혼란을 일으킨다.

미국 위스콘신대 영양학 교수 데일 쇨러는 “육체적으로 활발히 활동할 때 뇌가 음식섭취를 가장 잘 통제한다” 며 “사람이 활동하지 않으면 식욕통제가 본능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고 설명한다. 오늘날 비만의 일정 부분은 잘못된 생활습관의 결과라는 것이다.

유전자에 불리한 직업 선택 말아야

‘벌처럼 날아서 나비처럼 쏜다’ 는 멋진 표현을 낳은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그처럼 날렵하던 그였지만 파킨슨병으로 손을 덜덜 떠는 중년이 된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알리가 이런 고약한 신경퇴행성질환에 걸린 것은 현역시절 무수히 머리에 충격을 입었기 때문이었을까.

19번 염색체에는 APOE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의 산물인 APOE 단백질은 세포에 지방을 공급하는 과정을 돕는다. APOE는 E2, E3, E4의 3가지 종류가 있다. 그런데 E4 유전자를 가질 경우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4 유전자를 하나 갖고 있을 때 발병확률은 47%, 부모로부터 모두 받았을 때는 91%에 이른다. 반면 E4가 없을 때는 20%다.

연구자들은 권투선수와 축구선수 출신 중 50세 무렵에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고 그들 중 상당수가 E4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뇌의 퇴행성질환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갖는 사람이 머리에 충격을 주는 직업을 택할 경우 발병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조만간 축구부에 들어가기에 전에 ‘유전자 적성검사’ 를 할 날이 올지 모른다.

결국 헌팅턴병처럼 일부 예외적인 유전병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유전자 변이는 우리 삶에 영향을 줄지언정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유전체에 대한 연구가 계속돼 각종 질병에 대한 우리 몸의 약점과 강점을 알게 된다면 좀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헌팅턴병, 유전자가 운명인 경우

대부분의 질병은 유전과 환경의 복합작용의 결과다. 따라서 노력한다면 발병을 피하거나 증상의 완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소용없는 유전적 질병도 적지 않다. 대부분 희귀성 질환이지만 당사자로서는 절망적이다. 이런 질환의 대표적인 예가 헌팅턴병이다.

4번염색체에는 월프-히르시혼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의 역할은 아직 모르지만 여기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헌팅턴병이라는 괴상한 질병에 걸리게 된다. 이 유전자 안에는 세개의 염기(CAG)로 된 단위가 반복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반복단위가 39개가 넘을 경우 신체적 퇴행과 경련에 시달리고, 우울과 망상 끝에 사망하는 헌팅턴병이 발병한다.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치료방법이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복단위의 숫자는 발병시기마저도 결정한다. 즉 39번 반복하면 평균 66세에 증상이 나타난다. 41번이면 54세, 42번이면 37세, 50번이면 27세에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런 돌연변이를 갖는 사람은 아무리 바른생활을 한다고 해도 발병을 늦출 수조차 없다.

미래에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된다면 이런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려줘야 할까.
‘치료방법이 없는 질병을 진단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라는 의료계의 오랜 격언이 생각난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유전자 내 인생을 얼마나 좌우하나
01. 타고난 성격, 바꾸려면 부러질수도
02. 지능, 유전의 영향 나이들수록 막강
03. 정신질환, 예측하면 막을 수 있어
04. 유전자 부실하면 몸조심해 살아 남는다
위암·간암 실체를 벗긴다

글 : 강석기 sukki@donga.com

과학동아 2004년 05월호

태그

과학동아 2004년 05월호 다른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