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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정신질환, 예측하면 막을 수 있어

유전과 환경 절반씩 영향 줘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자신과 세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고차원적인 정신기능이 유지돼야 한다. 정신질환이란 이러한 능력에 일부 장애가 생겨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나가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스스로를 관리하고 돌보는 능력마저도 손상된 상태를 일컫는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과 환경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뇌의 이상이 그 밑바탕에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장애, 즉 조울병과 같은 정신병은 그 질환을 앓고 있는 개인과 가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므로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질환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한계
 

정신분석학적 치료법은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병을 치료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종종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20세기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정신질환을 보는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어릴 때의 경험에서 비롯한 심리적 갈등이 노이로제를 발생시킨다. 특히 어머니와 환자의 관계가 환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이론은 환경요인이 어떻게 병적 심리구조를 형성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심리구조와 방어기제를 치료의 대상으로 다루는 정신분석학적 치료법은 신경증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정신병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편 정신병 발병과 연관된 환경요인들은 심리적 요인보다 오히려 뇌 발달에 직접 작용하는 생리적인 것들임이 밝혀졌다. 임신 중 합병증이나 난산과 같이 태아에게 저산소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들이 그런 요인이다.

1950년대에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항정신병약물의 도입은 정신질환에 대한 약물치료 시대를 열었고, 비로소 주요 정신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 이 약물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차단함으로써 정신병 증상을 조절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신경전달 메커니즘을 통해 정신병리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활발해졌다.

약물의 작용메커니즘 연구와 더불어 신경계의 작용원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정신질환의 원인과 발병메커니즘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특히 인간게놈연구는 정신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를 밝혀내 새로운 차원의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겨 주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은 유전병인가? 정신질환이 일부 가계(家系)에 많이 발생한다는 과학적 관찰은 1백여년 전부터 이뤄져왔다. 그러나 지난 한 세기에 걸쳐 밝혀진 사실은 정신질환이 유전과 환경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며 거기에 기여하는 유전적 영향은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유전자도 정신질환의 발병 자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가족적 발생 경향이 있긴 하나, 정신질환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즉 정신질환은 단일 유전자가 아닌 다수의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형질이다. 여기에는 뇌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또는 특정한 환경자극이 주어질 때에만 해당 뇌 부위에서 형질을 발현하는 유전자도 포함돼 있으리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신경연결 부위인 시냅스를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의 기능이 저하돼 있다면, 뇌의 발달이 최고조에 이르는 청소년기까지 형성된 시냅스의 수가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시냅스의 수는 성인기로 접어들면서 자연적으로 줄어들도록 프로그램이 돼 있다. 따라서 이미 그 수가 부족하다면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비정상적으로 감소해 어떤 정신기능에 필요한 신경회로의 기능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그 기능손상이 바로 정신질환의 발병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전적으로 결정된 것은 시냅스의 형성 능력과 사춘기 이후 시냅스의 감소 속도일 것이다. 그러나 시냅스에는 후천적 요인들도 크게 작용한다. 훈련과 학습이 특정 시냅스의 수나 강도를 강화시킬 수 있으므로, 유전적으로 취약하다 할지라도 후천적 체험이 그 취약성을 보상할 수 있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뇌의 기능에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가 한 개인을 정신질환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지 발병을 바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유전되는 것은 정신질환 자체가 아니라 정신질환에 대한 취약성이다.

물론 실제 상황은 위의 예처럼 간단하지 않다. 시냅스의 형성과 제거에도 수많은 유전자와 환경요인 사이의 무수한 상호작용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병리는 시냅스의 형성과 제거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전과 환경은 정신질환의 발병에 어느 정도로 기여할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대답은 쌍둥이 연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1백% 동일하며, 이란성 쌍둥이는 형제자매와 경우와 같이 50%의 똑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성 쌍둥이보다 일란성 쌍둥이에게서 일치율이 높은 특징은 유전이 관여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정신질환인 정신분열병의 경우,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의 일치율은 각각 48%와 17%이며, 질환에 대한 유전의 기여도는 60-80% 정도로 추산된다. 조울병은 일란성 쌍둥이가 62%이고 이란성 쌍둥이는 8%이며 질환에 대한 유전의 기여도는 60% 수준으로 추산된다.

발병하면 돌이키기 어려워
 

게임이론을 연구한 존 내시는 20여년 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극적으로 회복해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로 정신분열증은 일단 발병하면 치료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이 환경요인이 직접적인 병인으로 작용하는 극히 일부 질환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연구된 자료들을 종합하면 전체적으로 유전과 환경은 각각 정신질환 발병의 절반 정도를 설명한다. 이런 경향은 뇌의 구조나 지능의 경우와 비슷하다.

정신질환에 취약한 유전자를 똑같이 가졌다 할지라도 왜 어떤 사람은 발병하고 어떤 사람은 발병하지 않는지 그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사실 발병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정신병에 취약한 소질을 지니고 있다면 정밀검사를 통해 미세한 장애가 발견될 수 있다. 실제로 정신분열병 환자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가족들에게서는 주의력, 기억력, 집행기능과 같은 인지기능의 이상이나 뇌의 구조나 기능에 미세한 이상이 관찰된다.

정신병의 발병 자체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는 데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이같은 미세한 이상과 관련된 유전자는 곧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신병의 발병에는 유전과 환경이 더 복잡하게 작용하는 데 반해, 미세한 이상에는 유전자형이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정신병의 발병 위험성이 적절히 평가된다면, 발병 후 치료가 아닌 발병 전 예방도 가능할 전망이다.

질병 예측과 예방은 의학의 궁극적 목표다. 정신분열병의 경우, 발병 후 오랜 기간이 지나면 치료에 한계가 있다. 단지 증상을 완화할 뿐 병리적 과정을 되돌리기는 어려운 것이다. 즉 발병은 이미 뇌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하며, 가장 최선의 치료도 그 변화가 더 진행되는 것을 막는 정도다.

따라서 현대 정신의학은 그런 손상이 진행되기 전 단계에 주목한다. 이미 일부 선진국에서는 정신병의 발병 예측과 예방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다. 정신분열병의 경우, 발병에 앞서 평균 2년 정도의 전구단계를 거친다. 이 단계에서는 환각이나 망상과 같은 정신분열병의 전형적인 증상은 출현하지 않지만 불안과 우울, 성격변화 같은 증상과 학업성적의 저하나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같은 기능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으로도 6개월 이내에 정신분열병이 발병할지 여부를 80-90%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 인지기능과 뇌의 상태까지 평가할 수 있다면 대단히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발병 후에 비해 극히 소량의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요법만으로도 발병이 예방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정신의학은 기본적인 인지기능장애나 뇌의 생물학적 이상에 관련된 유전자들을 찾아낼 것이다. 또한 이 유전자들이 뇌의 발달과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환경적 요인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밝혀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유전적 경향의 평가가 가능하다.

유전자 검사와 함께 기본 인지기능이나 뇌 기능 검사를 추가하면 유전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현 상태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적절한 예방치료를 행한다면 비록 유전적으로 취약한 사람이라도 발병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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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권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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