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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지능, 유전의 영향 나이들수록 막강

학업성적과 창의성은 환경 영향 커

 

우생학의 창시자 프란시스 갈톤. 우수한 지능의 소유자가 자손을 많이 낳아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식을 두지 않았다.우생학의 창시자 프란시스 갈톤. 우수한 지능의 소유자가 자손을 많이 낳아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식을 두지 않았다.


지능이 유전되는가 하는 문제는 현대과학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여러 세기 동안 학자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찰스 다윈의 사촌으로 우생학(eugenics)의 창시자인 프란시스 갈톤은 그 해답을 찾고자 유명한 학자, 재판관, 저자, 음악가, 정치가, 종교지도자들의 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저명한 인물들의 아들 가운데 저명인사가 된 비율이 48%, 손자 가운데 저명인사가 된 비율은 14%, 증손자 가운데 저명인사가 된 비율은 3%임을 발견했다.

한 사람의 유전자는 자식에게는 1/2(50%), 손자에게는 1/4(25%), 증손자에게는 1/8(12.5%)이 전달된다. 따라서 갈톤의 발견은 저명인사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비율과 후손이 저명인사가 될 확률이 대체로 비례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에서 자행된 우생학 남용은 지능의 유전성을 진지하게 연구하는데 한동안 큰 장애가 됐다.

6번 염색체에 관련 유전자 많아
 

쌍둥이 뇌의 MRI 사진. 파란색은 상관관계가 작고 붉은색은 큼을 나타낸다. 일란성 쌍둥이(왼쪽)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상관관계가 훨씬 큼을 알 수 있다.쌍둥이 뇌의 MRI 사진. 파란색은 상관관계가 작고 붉은색은 큼을 나타낸다. 일란성 쌍둥이(왼쪽)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상관관계가 훨씬 큼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쌍둥이와 입양아 연구는 유전이 지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좀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입증했다. 쌍둥이는 유전자가 1백%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와 형제처럼 유전자를 50%만 공유하고 있는 이란성 쌍둥이가 있다.

연구자들은 IQ검사를 실시한 뒤 상관관계라는 수치로 유전의 기여도를 평가했다. 상관관계가 1백%인 경우는 동일한 것을 나타내고 0%일 경우에 서로 전혀 닮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1백%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많이 닮는 것을 뜻한다.

한 가정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들의 지능의 상관관계는 86%로 동일인이 지능검사를 두번 테스트한 결과 나타나는 87%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편 이란성 쌍둥이 사이의 상관계수는 55%, 형제는 47%, 부모 자식 사이는 40%로 훨씬 낮다. 그렇다면 태어나자마자 각각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돼 성장한 일란성 쌍둥이들은 어떨까. 이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지능의 상관관계가 76%나 됐다. 반면 같이 사는 혈연관계가 없는 입양아들은 아동기에 24%로 가정환경의 영향이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자라 청소년이 되면 상관관계가 거의 0%에 가깝게 줄어 전혀 남남인 경우와 마찬가지가 된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가정환경보다도 유전이 지능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최근 활발하게 수행되는 자기공명영상(MRI)을 통한 연구들은 지능과 관련이 있는 두뇌영역의 형태와 용량이 일란성 쌍둥이에서 이란성 쌍둥이보다 서로 훨씬 더 닮았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수행된 여러가지 쌍둥이 연구들을 종합해 청소년기의 지능에 미치는 유전의 영향을 백분율로 환산하면, 유전의 영향은 약 50%, 가정환경의 영향은 약 30%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편 쌍둥이들을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는 가정환경이 지능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만, 나이가 들수록 유전의 영향이 점차 커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일란성 쌍둥이는 나이가 들수록 지능이 점점 서로 닮아 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입양아들 역시 성장하면서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입양부모의 지능을 닮지 않고 유전자만을 물려준 친부모의 지능을 점차 닮아간다. 이런 경향은 성장할수록 내재하는 유전자들이 점점 발현되면서 환경의 영향을 압도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행동유전학자들은 지능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굴 작업에 나서고 있다. 현재 학자들이 추정하는 바로는 지능은 한두개의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매우 많은 유전자들(polygenes)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지능과 관련해서는 6번 염색체가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여기에는 학습과 기억에 영향을 주는 IGF2R 유전자와 글자의 순서를 뒤바꿔 읽거나 거꾸로 읽는 난독증과 관련된 유전자(6p21.3)가 있다. 또 최근에 발굴된 것으로서 기능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인 CTSD, CHRM2 등이 있다. 한편 치매와 같이 인지 능력의 저하와 관련된 APOE 유전자는 19번 염색체에 있다.

지능에 관련된 유전자가 점차 발굴됨에 따라 지능에 미치는 유전의 영향이 연령에 따라 증가하는 이유도 명확히 밝혀질 전망이다. 어떤 학자들은 지능에 관련된 여러 유전자들이 영향을 발현하는 시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즉 대머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지만, 성인이 돼서야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져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환경 영향으로 평균IQ 상승

그렇다면 환경은 인간의 지능 발달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을까? 환경이 지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은 여러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입양아 연구를 살펴보면, 입양아들은 비록 입양부모보다는 친부모들의 지능을 더욱 닮아가지만, 친부모 밑에서 커온 입양아들의 친형제들과 비교해보면, 입양아들의 평균 지능이 대체로 높은 경향을 나타낸다. 이 연구 결과는 입양가정의 높은 사회경제적 수준, 양부모들의 애정과 지적 자극 등의 양호한 양육환경이 입양아들의 지능을 평균적으로 상승시킨 효과를 가져오는 곳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지능과 관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학업성적과 창의성을 살펴보면, 유전보다는 가정환경이나 개인의 노력, 의지 등의 요소들이 더 크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지능에는 가정의 양육환경뿐 아니라, 사회 환경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뉴질랜드의 사회학자 플린은 여러 산업 국가들의 지능검사 결과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인간의 지능이 해마다 상승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능이 높아지는 속도는 국가별로 다른데, 평균적으로 10년마다 IQ가 약 3점 정도 상승된다. 특기할 사실은 언어지능보다 공간지각력에 있어서 상승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아직 인간의 지능이 해마다 높아지는 원인에 대해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산업사회에서의 학교 교육의 보급과 확대, 향상된 영양, 사회 전체에서의 지적 자극 증대 등과 같은 사회환경 요소들이 그 원인일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있다.

지능에 미치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은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타고난 능력과 소질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나서거나 심지어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때문에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차례차례 밝혀짐에 따라 앞으로 지능 연구가들은 발견된 유전자들의 기능은 물론 그 유전자들이 신체내외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쪽으로 연구의 방향이 기울어질 전망이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일련의 암호일 따름이다. 따라서 유전자는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적 특성을 직접적으로 조절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확률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성격, 지능, 행동에 관련된 유전 정보들은 성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활 적응문제, 정신지체, 정신질환의 발생을 예방·진단하고 치료하는데 활용될 것이다.

그 가장 좋은 보기로서 페닐케톤뇨증을 들 수 있다. 페닐케톤뇨증은 12번 염색체에 있는 PKU 유전자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다. 부모로부터 열성유전자를 물려받을 경우 신진대사 장애로 페닐알라닌이 뇌에 쌓여 정신지체가 유발된다. 오늘날은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해 PKU 열성인자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출생시부터 뇌가 충분히 발달할 때까지 페닐알라닌이 포함된 음식물 섭취를 억제하도록 알려준다. 그 결과 정신지체가 되는 것을 예방하고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아동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

난독증 환자들에게도 지능 유전자 연구는 기쁜 소식을 가져다줄 수 있다. 현재 난독증에 관련된 유전자가 위치하고 있는 영역으로서 6번 염색체가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 유전자들이 모두 밝혀질 경우,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검사로 난독증 환자를 미리 진단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출생 후 난독증에 걸리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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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윤미 서울대 의대 신경과학연구소 maryhur@hanafos.com

과학동아 200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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