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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수학은 과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보통은 이론을 증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연구 방향이나 방법 등을 통째로 바꿔 놓기도 합니다. 최근에 수학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볼까요?

 

 

 

수학에서 ‘영감’ 받는 물리학


2016년 노벨 물리학상 시상식에 낯선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수상 업적을 소개하는데 복잡한 공식이 아닌 베이글과 프레즐이 등장했기 때문이지요. 시상식에 참여한 관객은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과학자조차 어리둥절했을 거예요.

 

노벨상이 아닌 필즈상 시상식이었다면 베이글을 들고 나온 의도를 쉽게 눈치 챘을지도 모릅니다. 베이글과 커피잔은 ‘위상수학’을 설명할 때 나오는 단골메뉴거든요. 시상식에 베이글이 등장한건 수상자가 위상수학을 물리학에 접목해 양자홀 효과가 일어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규명했기 때문이에요.

 

양자홀 효과는 1978년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우스 폰 클리칭이 발견한 효과로, 종이같이 얇은 2차원 물질의 전기 전도도가 정수 값만 갖는 현상이에요. 수상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사울레스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는 위상수학 이론을 이용해 양자홀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설명했어요.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구멍의 개수 같은 ‘위상적불변량’에만 주목하는 위상수학을 잘 접목한 거지요.

 

물리학자가 위상수학을 수학자 뺨치게 잘 알아서 이런 업적을 세운 건 아니어요. 실제로는 ‘이 새로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수학 공식을 어떻게 찾지?’라고 고민하고 있는데, 수학자가 ‘어? 그거 내가 30년 전에 찾아 놨는데?’라고 하는 식이지요. 최근에는 물리학자도 위상수학을 잘 알아서 물리와 접목한 연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이렇습니다.

 

물리학자가 실험을 통해 발견한 현상에 관심이 있다면 수학자는 일반적인 법칙을 찾기 때문이에요. 만약 수학자에게 ‘2m짜리 끈으로 정사각형을 만들면 넓이가 몇이지?’라고 물으면 답을 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am짜리 끈으로 만들었을 때 넓이를 구하는 공식까지 찾는다거나, 정사각형이 아닌 정삼각형, 정오각형을 만들었을 때의 넓이도 구하려고 할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정오각형의 넓이가 필요한 사람은 이미 만들어 놓은 공식을 가지고 바로 구하게 되는 거죠. 노벨상 수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이전에는 새롭게 관찰한 현상이 새로운 물리 이론을 만드는 원동력이었다면, 지금은 수학이 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미리 위상수학을 공부하는 물리학자도 있다고 해요.

 

전산화학 연구로 처음 노벨 화학상을 받은 존 포플(왼쪽)과 월터 콘(오른쪽).

 

 

실험도 수학으로 대신


화학자는 주변에 있는 다양한 물질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화학자’ 하면 보통 실험 도구가 가득한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화학 물질을 섞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지요.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 앞에 앉은 모습을 떠올려도 괜찮을 거예요.

 

199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존 포플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화학과 교수와 월터 콘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캠퍼스 물리학과 교수는 화학 분야에서 업적을 낸 학자치곤 이력이 독특합니다. 포플 교수는 수학 박사 학위를 받고난 뒤 화학자가 됐고, 콘 교수는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거든요.

 

두 교수는 화학 분야에서 최초로 ‘전산화학’에 관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어요. 전산화학은 분자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분자의 에너지 변화나 안정성 같은 화학적 성질을 계산하는 분야예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면 직접 실험을 하지 않아도 분자의 물리, 화학적인 성질을 알 수 있고 화학 반응 뒤에 어떤 분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지요.

 

 

 

원자와 원자의 결합 관계를 행렬로 나타내면 분자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고, 정규분포나 수치해석을 이용하면 화학적 성질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산화학은 수많은 수학 이론이 필요해요. 단백질 같은 고분자는 수만 개의 원자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계산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하지요.

 

전산화학 분야에서 수학자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어요. 요즘 컴퓨터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복잡한 화학 반응을 나타내려면 더 빠른 계산이 필요하지요. 최근 전산화학을 활발히 연구하는 린 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수학과 교수는 이런 계산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알고리듬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차세대 생존 지침서, 수학


영화 ‘메이즈 러너’는 변종 바이러스의 항체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실험에 참가하게 된 주인공들의 이야기예요. 최근 실제로 변종 바이러스나 전염병이 퍼지고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걸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같진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 과학의 최대 관심사가 ‘생명’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수학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곳이 바로 생명과 관련한 분야예요. ‘수리생물학’이라고 하는데, 사람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뿐 아니라 의료, 유전, 전염병, 동물, 생태계 등 생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수학을 활용하지요.

 

생명과 관련된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제약 조건이 많아요. 새로 개발한 약의 효능을 알아보겠다고 무분별하게 사람에게 먹일 수도 없고, 전염병이 퍼지는 과정을 알기 위해 일부러 병을 퍼뜨릴 수도 없으니까요. 수리생물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제약 조건을 극복할 수 있고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수리생물학의 핵심은 미분방정식이나 확률방정식, 그리고 통계방정식을 이용한 모델링입니다. 어떤 현상과 관련된 변수를 설정하고 실험 데이터를 이용해 방정식을 만들지요. 초기 조건이 바뀌면 방정식의 해가 바뀌는 것처럼 모델링을할 때도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정식이 나옵니다. 이런 방정식의 해를 정확하게 구하는 경우는 없지만, 어떤 변수가 해에 큰 영향을 주는지는 파악할 수 있어요.

 

수리생물학은 앞으로 맞춤형 진료나 암 치료분야에서도 많이 활약할 전망입니다. 같은 치료를 하더라도 환자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환자의 신체 상태를 고려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암 치료의 경우,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장비에 의존해 암세포를 제거하는데, 해상도가 충분히 높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놓치기 쉬워요. 환자 데이터와 수리 모델링을 이용하면 보이지 않는 부분을 미리 예측해서 암의 재발율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아직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수리생물학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만큼 여러 전문가와의 협업이 중요해요. 수리 모델을 그림이나 영상으로 나타내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결과를 해석하려면 생물학자나 의사도 필요하지요.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고, 다양한 분야와 협업이 활발해지면 수학을 이용해 불치병도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필즈상 받는 과학, 노벨상 받는 수학

Part 1. 과학을 완성한 수학

Part 2. 수학, 과학을 바꾸다!

Part 3. 루카스 수학 석좌 교수, 스티븐 호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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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호 수학동아 정보

  • 김우현 기자(mnchoo@donga.com)
  • 도움

    김우연(KAIST 화학과 교수), 김양진(건국대학교 수학과 교수), 정은옥(건국대학교 수학과 교수), 한정훈(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기타

    [일러스트] 김대호, lemarr
  • 참고자료

    김원기 ‘필즈상 이야기’, 피터 보울러·이완 리스 모러스 ‘현대과학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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