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다. 화성에 설치된 정조 과학기지에서 지구로 귀환할 날이 두어 달 가량 남았을 때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이 문장을 떠올렸다. 나도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내가 초조해진 이유를 설명하자면 1년 전, 그러니까 2039년 7월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지구를 떠나올 때 내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였다. 우선 정조 과학기지의 대원들이 먹을 충분한 양의 신선한 농작물을 생산할 것.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화성에서 상추, 케일, 가지, 마리골드, 무, 배추 등을 재배했다.
얼마 전엔 직접 재배한 농작물로 김치를 담그기까지 했으니 한국인으로서 채소로 할 일은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식량을 만들어낸다는 역할 덕일까, 정조 과학기지 내에서 나는 아주 사랑받는 대원이 됐다. 지나가던 대원들이 괜스레 내게 간식을 찔러 주는 일도 빈번했다.
문제는 두 번째 임무였다. 화성 표면에서 생존이 가능한 고등식물을 선별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진척 속도가 더뎠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먼저 테스트한 작물은 감자였다. 임무 초기에 정조 과학기지의 대원들과 지구에 있는 화성연구소의 연구원들에게 간단한 설문 조사를 통해 화성에서 꼭 키웠으면 하는 작물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모두가 화성에서는 감자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화성에서 감자가 손쉽게 자라리란 생각은 금물
‘화성=감자’란 공식이 생긴 건 아무래도 2015년 개봉한 영화 ‘마션’의 역할이 크다. 화성에 낙오된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재배하는 장면이 유명해진 탓이다. 나부터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때 ‘아, 전공 잘 골랐다’는 생각에 뿌듯했으니까. 그러나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과거 미국의 연구진이 실제로 화성 토양 모사체에서 감자를 재배한 결과, 감자는 밀도가 높은 토양에서 잘 자라지 못하고, 자라더라도 메추리알만 한 볼품없는 모습이었다는 보고를 접한 적이 있다.
물론 이 연구를 잘 알고 있던 나는 화성 토양에 마리골드를 비롯해 그간 키운 다양한 식물의 잔해를 투입해 유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유기물을 이용해 개량한 화성 토양에서 큼직한 감자를 얻을 수 있었다. 화성의 흙으로 실내에서 감자를 기르는 문제는 거의 해결이 된 듯했다. 하지만 화성 표면으로 들고 나간 감자 모종은 낮은 기압과 기온을 버티지 못하고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렸다. 퍼석하게 마른 감자 잎을 본 대원들마다 실망감에 아쉬움이 담긴 말들을 쏟아냈다.
화성의 자전축은 지구와 비슷하게 기울어져 있어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구와 다른 것은 화성이 태양을 공전하는데 687일이 걸리기 때문에 각 계절이 두 배 가량 길다는 점이다. 여름철이라도 화성의 적도 부근은 낮 기온이 21℃ 수준이고, 밤에는 약 영하 110℃까지 낮아진다. 지구처럼 풍성한 대기가 있었다면 기온의 일교차를 줄여줬겠지만, 화성의 대기는 지구 대기압의 1%도 안 되는 희박한 수준이다.
화성처럼 기압이 낮은 환경에서는 인체의 정상 온도인 36.5℃보다 낮은 온도에서 물이 끓어 버린다. 우리가 흔히 아는 물의 끓는점 100℃는 외부 압력이 1기압(101.325kPa)일 경우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화성의 경우 평균 대기압이 0.636kPa로, 이 기압 조건에서 물은 영하 5℃ 정도에서 끓는다. 때문에 인간은 화성 표면에서 맨 몸으로 생존할 수 없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1986년 프랑스 연구진이 화성 표면 대기압보다 10배 정도 높은 진공 상태를 만들고 보리를 키운 실험에서도 보리는 잘 자라지 않았다. 게다가 지구와 달리 오존층이 없는 화성엔 많은 양의 자외선과 방사선이 쏟아지고 있다.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감자에게 유리덮개를 선물하다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 ‘어린 왕자’에서는 자신이 사는 작은 별에 싹튼 바오밥나무 세 그루를 방치했다가 별이 산산조각 나 버린 게으름뱅이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왕자는 주인공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의 별을 지키기 위해 바오밥나무 싹을 잘라먹을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내게는 거친 환경에서도 쑥쑥 자라 별을 산산조각 낼 바오밥나무가 외려 절실했다.
극한의 환경에서 생명체를 생존하게 해주는 다양한 장치와 기술을 통틀어 생명지원시스템(LSSLife Support System)이라고 부른다. 화성 표면에 나갈 때 내가 입는 우주복부터 대원들의 생존을 위해 정조 과학기지에 설치된 모든 장비가 전부 LSS에 속한다. 임무를 위해선 화성 표면에서 식물체를 살려 두기 위한 최소한의 LSS가 필요했다.
나는 우선 3차원(3D) 프린터에 폴리카보네이트 잉크 카트리지를 끼우고 종 모양의 투명한 물체를 인쇄했다. 어린 왕자가 장미에 덮어줬던 유리 덮개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정원에서 화초를 기르는 취미를 가진 의사 A씨는 이 물건을 보자마자 용도를 간파했다. 핫 캡(hot cap)이라고 부르는 이 물건은 봄철 낮은 기온에 식물이 해를 입지 않도록 씌워주는 물건이다. 다 마신 투명한 페트병의 윗부분을 잘라서 만들 수도 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유리나 비닐과 다르게 자외선이 투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외선이 쏟아지는 화성에서 식물을 보호해 줄 수 있어 선택했다. 하지만 새로 심은 감자에 핫 캡을 씌워 줘도 밤 동안 영하의 기온은 여전히 치명적이었다.
화성 테라포밍까지 360년시작은 콩알만 한 감자부터
어느 날 엔지니어 D와 지질학자 C가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해 왔다. 다소 충격적이게도 이들의 제안 내용은 ‘조작’이었다.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에 화를 내려 하자 C가 부랴부랴 설명을 이어 나갔다.
“화산 주변에 암석 사냥을 하러 자주 갔었는데, 글쎄 어떤 사람들이 용암이 막 굳은 화산 기슭에 식물을 심고 있더라고요. 그런 곳에 식물을 심으면 죽지 않나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뭘 조작했다고 하던데 혹시 알고 있었어요?”
그들이 이야기한 것은 유전자 조작 식물이었다.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원하는 형질을 갖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거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자는 이야기는 화성 개척 계획에서 빠지지 않고 논의된다. 화성 연구소도 이미 화성에서 재배되는 식물의 유전자 변형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던 것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감사 인사로 몇 달 전에 주워서 숨겨 뒀던 특이한 돌을 지질학자에게 건네고 실험실로 뛰어갔다. 가는 길에 D의 우람한 등짝도 한 대 때려주었다.
지구의 남극에서 자라는 식물과 극한 환경에 적응한 미생물에서 얻은 저온 저항성 유전자를 감자에 도입했다. 저온 저항성 유전자가 도입된 감자는 핫 캡 안에서 야간의 저온을 며칠 동안 힘겹게 버텨 나갔다. 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빠르게 증발돼 화성의 대기 중으로 사라져 가는 물만 조금씩 감자에 공급해 줬다. 안타깝게도 감자는 콩알만 한 덩이줄기를 만들다가 모든 양분과 에너지를 소모해버리고 일찍 죽었다. 별을 쪼갤 바오밥나무를 기대했던 내겐 아쉬운 결과였다. 정조 과학기지의 대원들과 화성 연구소의 연구진들은 모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 감사한 일이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디스커버리 채널,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함께 내놓은 화성 테라포밍 계획에 의하면 화성 표면의 대기를 조성하고 온도를 높여 지구 수준으로 만드는 데 36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핫 캡 같은 간단한 구조물을 활용해 단기간이나마 유전자 조작 식물을 키워냈다는 성과는 테라포밍의 시계를 앞으로 꽤 당기는 기점이 됐다. 물론 이것도 화성의 여름철에나 가능한 일이긴 하다.
화성에서 내가 보낸 일 년의 시간은 인류의 화성 거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지금 지구의 적응시설에서 복잡한 건강검진과 지구 중력 적응 훈련을 거치고 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지만, 나의 일부는 화성에 남아 있는 기분이다. 지구에 착륙하는 순간까지도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화성에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고, 곧 그 어느 때보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집에 가면 나의 화성 생활을 정리한 글을 남길 생각이다.
집에 도착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어.”
“어서 와.”
필자소개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로 서울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식물 광합성 모델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jdhenv@yonam.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