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실패연구소에서는 지난 6월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이란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KAIST 학생 31명에게 3주간 자신의 일상을 관찰한 다음 실패가 벌어진 현장 또는 실패감을 떠올린 순간의 사진을 찍도록 한 겁니다. 그 결과 360여 개의 ‘실패 장면’이 모였습니다. KAIST 학생들은 언제 ‘실패했다’고 느꼈을지 함께 살펴보시죠.
같은 가지에 혼자 시든 잎
카이스트라는 좋은 학교에 있다 보니 졸업한 선배도, 동기들도 모두 우수하다. 좋은 직장, 번듯한 미래 계획, 뭐든 척척해내는 진취성. 그런 동문 사이에 있는 게 자랑스럽지만, 연구와 삶에서 실패를 만날 때마다 혼자 시들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싱싱한 잎들 사이 혼자 시든 이 노란 이파리처럼.
실패, 너무나 자명한
너무나 자명한 연구 실패다. 남의 데이터를 가져다 쓰거나 남의 코드를 변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계속 약간씩 어긋나는 회전 정보로 골머리를 앓았다. 지금은 다 해결했지만, 모니터에다 심한 욕을 열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일하다 욕하는 건 대학원생의 공통 분모인 걸까?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드세요’
강의실로 가는 길에 택배 박스에 적힌 문장을 보고 멈칫했다. 지난 몇 주간 라면과 편의점 음식만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학금이 충분하지 않기도 하고, 학생 식당까지 가서 밥을 먹을 시간이 없기도 했다. 갑자기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한심하게 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때는 큰일인줄 알았지만
오랜만에 산 새 신발이 흙탕물에 엉망이 됐다. 열심히 닦아도 끝내 지워지지 않은 작은 얼룩들이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지금, 얼룩 따위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실패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했다. 당시에는 정말 큰일인 것처럼 느껴져 힘들지만,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나도 모르게 치유될 수 있는 그런 일.
<2023년을 마무리하며 과학동아와 실패를 정리해 봅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생각보다 좋은 말입니다. 소를 잃었다고 좌절하기만 했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었겠지만, 결국 외양간을 고쳤잖아요? 결국 실패는 정면으로 마주해 자양분으로 만든다면 그걸로 오케이란 겁니다. 안혜정 KAIST 실패연구소 연구교수에게 과학동아 독자들이 어떻게 하면 실패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조언을 청했습니다. 안 교수는 “KAIST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상에서 벌어지는 실패의 순간들을 기록해 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일상에서 어떤 실패를 했는지, 어떤 성공을 했는지 목록을 적어보면 아마 성취가 더 많을 거예요. 우리는 실패를 엄청 크게 생각해서 실패에 짓눌려 있는 한편,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공은 상대적으로 자주 있는 일이라 성공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먹거든요.“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입니다. 과학동아와 함께 실패와 직면하고, 작은 성공을 축하하며 2023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