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 A 은하를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가시광 사진과 거대 전파 어레이(VLA)로 촬영한 전파 사진을 겹쳐서 구성한 이미지. 회전축을 따라 양옆으로 분출된 분홍색 덩어리가 블랙홀 에너지다.
나는 은하를 연구한다. 그중에서도 나선은하를 주로 연구한다. 우주의 은하는 그 겉모습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납작한 원반 모양에 아름다운 나선팔이 휘감긴 나선은하, 그리고 나이 많은 별들이 둥글고 펑퍼짐하게 모인 타원은하다. 이 중 우주 진화를 더 주도하는 것은 타원은하다. 오래전 빅뱅 직후 형성된 은하들은 왜소한 타원은하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나선은하는 타원은하들이 써 내려가는 138억 년 우주의 진화 속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부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난 나선은하를 더 좋아한다. 더 예쁘니까. 정말이다. 은하들 중에서 주로 나선은하를 연구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선은하가 보기에 더 화려하고 아름다워서다. 일종의 천문학적 외모지상주의로 평생의 연구 주제를 정한 셈이다.
우주 진화의 진짜 주인공 등장
다들 둥글고 펑퍼짐할 뿐 거의 모든 타원은하의 외형은 비슷해 보인다. 누가 살짝 찌그러진 타원이고, 더 심하게 찌그러진 타원인지, 그 정도만 다르다. 그에 비해 나선은하는 저마다 특색이 선명하다. 푸른 나선팔, 분홍빛의 별 탄생 지역, 또 나선팔이 휘감기거나 주변 다른 은하들과 충돌하며 흐트러진 모습까지. 정말 제각각이다. 나선은하들 사진을 수십 장 늘어놓아도 각각 어떤 은하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반면 타원은하는 그렇지 않다. 타원은하 사진 수십 장을 나선은하들처럼 하나하나 구별해서 정확한 이름을 부르는 천문학자는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타원은하가 딱 하나 있다. 거대 타원은하 3C 348이다. 헤라클레스자리 방향으로 약 21억 광년 거리에 있다. 이 은하는 헤라클레스 A 은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물론 이 은하도 허블 우주망원경을 통해 찍은 가시광 사진으로만 보면 다른 평범한 타원은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가 많은 별들의 노랗고 붉은 빛이 둥글게 퍼져있다.
그런데 전파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순간 바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은하의 둥근 별 무리 영역을 넘어서 은하 바깥까지 양쪽으로 멀리 뻗어나가는 놀라운 거품이 나타난다! 이것은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막대한 에너지를 자신의 회전축을 따라 양옆으로 분출한 흔적이다. 헤라클레스 A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은 우리은하가 품고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보다 1000배나 무겁다(참고로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400만 배다). 이 헤라클레스 A 은하의 블랙홀은 현재까지 발견된 초거대질량 블랙홀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편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 블랙홀이 양옆으로 에너지를 토해내는 힘도 엄청나다. 자기가 속해있는 은하 경계 너머까지 흔적을 날길 정도니까. 이런 에너지 분출은 우주 진화를 주도하는 진짜 주인공이 거대한 타원은하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때는 뜨거웠던 우리 은하의 심장
재밌는 사실은 이런 모습이 우리은하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우리은하 한가운데에, 은하 원반에 대해 수직 방향으로 위아래로 둥글고 길게 뻗어나가는 거대한 거품이 있다. 이 거품은 감마선(에너지가 아주 크고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으로 우주를 관측했던 페르미 우주망원경이 2010년 발견했다. 바로 페르미 버블(Fermi Bubble)이다. 페르미 버블은 전체 규모가 5만 광년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0년, 천문학자들은 엑스선(파장 길이가 감마선과 자외선의 중간에 해당하는 전자기파)으로 우주를 관측하는 이로시타(eROSITA) 망원경에서 페르미 버블과 비슷한, 수직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또 다른 거품인 이로시타 버블을 발견했다. 엑스선으로 이뤄진 이로시타 버블은 감마선으로 관측한 페르미 버블보다 더 거대하다. 페르미 버블과 이로시타 버블, 이 거대한 거품들은 대체 어떻게 형성됐을까?
천문학자들은 우리은하도 헤라클레스 A 은하와 마찬가지로,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에너지 분출 흔적으로 이런 거품을 남겼으리라 추측해왔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은 현재 너무나 조용하다는 점이다. 난폭한 활동성을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페르미 버블과 이로시타 버블은 수억 년 전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이 아주 활발했던 시절에 만들어졌고, 그 후에 블랙홀의 활동성이 줄어들면서 지금의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추측에 따르면 우리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는 블랙홀 버전의 ‘휴화산’이다.
하지만 최근 관측을 보면 이런 가설에도 의문이 생긴다. 지구 전역의 전파망원경을 총동원해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를 직접 들여다본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匰vent Horizon Telescope) 관측에 따르면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의 회전축은 은하 원반의 회전축에 대해 최소 30도에서 최대 60도까지 굉장히 심하게 기울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만약 우리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에너지를 토해내며 현재의 버블을 만들었다면, 그 흔적이 현재 관측된 것처럼 은하 원반에 대해 위아래로 아주 깔끔한 수직 방향이리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블랙홀이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굉장히 다양하며, 이에 따라 복잡하게 변할 수 있다. 단순히 블랙홀의 회전축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가스 물질이 유입돼 들어오는 방향도 에너지 분출 방향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블랙홀의 회전축 자체는 기울어진 상태였지만 우연히 또 다른 각도로 주변 물질이 유입돼, 마침 은하 원반의 수직 방향으로 거품이 남았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는 있다.
조상들의 은하수는 더 밝았을까?
그러나 일부 천문학자들은 페르미 버블과 이로시타 버블의 기원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는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간 이로시타 버블 주변을 관측했다. 그리고 이 버블의 가장자리를 따라 질소, 산소, 그리고 네온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꽤 많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다양한 원소는 육중한 별이 진화를 끝내고 초신성으로 폭발할 때 남기는 것이다. 즉 이로시타 버블은 우리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아니라, 은하 중심부에 모여있던 1만 여 개의 초신성이 폭발하며 만든 거품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은하 중심부에선 수많은 별이 한꺼번에 탄생하고 터지면서 강력한 항성풍이 사방으로 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항성풍의 흔적이, 높은 밀도의 먼지 원반에 가로막힌 원반 방향으로는 멀리 퍼지지 못했다. 대신 뻥 뚫린 은하 원반의 위아래로 에너지가 퍼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페르미 버블과 이로시타 버블 모두가 우리은하 원반에 대해 수직 방향으로 자랐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만 년 전에 우리은하 중심부에서 진화를 마친 별들은 연달아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다. 이 당시 지구에선 우리의 먼 조상들이 땅 위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의 조상들은 중심부가 더 빛나는 은하수를 보며 살았을지 모른다.
우리은하의 심장부를 연구하는 것은 먼 외부 은하의 심장부를 연구하는 것보다 까다롭다. 지구에서 2만 5000광년 떨어진 우리은하 심장부까지의 시야를 짙은 별 먼지 원반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는 다른 은하의 중심에서 파악한 일반적 특징이 우리은하 중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리라 간접적으로 추론하는 연구가 많다. 그러나 우리은하의 심장이 뜨거웠던 과거를 직시하는 방법도 더 발전할 것이다. 인류는 느리지만 분명히 우리은하 심장 깊은 곳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필자소개
지웅배 .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은하들이 사랑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연구한다. 우주를 가이드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은하철도 999 차장을 꿈꾼다. galaxy.wb.z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