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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인의 '미지의 유인원'] 진화의 땅에 발령된 호기심 전염주의보!

 

2400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정답을 확인한 문제

vs. 35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정답을 확인한 문제

여러분에게 이 두 가지 문제가 주어지고 둘 중 하나만 정답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어느 문제를 선택할 것인가.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성인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한 쪽에 쏠렸다. 약 65%의 참가자가 ‘좋아요’ 수가 더 많은 질문의 정답을 확인했다.

 


서로 공명하는 우리의 호기심

 

이 실험의 의의는 ‘호기심이 전염되는가’라는 연구 주제에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인간 대상 호기심 연구는 타인의 선택이나 행동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 영향을 받아 개개인의 사고, 감정, 태도, 행동 등이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는 ‘좋아요’ 수를 기반으로 실험을 진행해서, 타인의 호기심이 개인의 호기심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이런 심리적 전략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SNS에서 인기를 끄는 음식점이나 카페들은 영업 시작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진을 올리곤 한다.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이 매장들이 파는 메뉴를 알아보기도 전에 이곳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적으로 유발된’ 호기심이 전파돼 더 많은 새로운 사람들이 매장에 몰리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이미 모인 사람들의 관심을 새로운 사람들의 관심으로 확산시킨 셈이다.

 

타인의 호기심에 기반한 행동은 그 타인을 본 관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관찰자의 호기심을 제한하는 역할도 한다. 가령 SNS에서 요즘 ‘핫’하다는 카페를 보기 전에는 다른 카페들에도 관심이 생기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곳을 알고 나면 핫한 카페에 더 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즉 타인이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대상에는 나도 호기심을 갖지 않게 된다. 결국 잠재적인 좋은 정보나 영양분 높은 음식을 놓칠 확률이 커지기도 한다.

 

이런 호기심의 전염성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행동 간의 영향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인지적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기심 전염이 음식점 영업에 미치는 영향에서도 볼 수 있듯, 이런 연구 결과는 경영학, 경제학, 진화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중이다.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순도 100%’ 호기심은 측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비인간 영장류에서도 호기심의 전염성을 연구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비인간 영장류의 호기심 연구는 제약이 많다. 호기심의 전염성은 물론, 호기심 행동에 대한 기본적인 실험을 디자인하려면, 영장류가 실험에 참여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맛있는 음식 같은 ‘외적 보상’을 줘야한다.

 

그러나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외적 보상 자체가, 비인간 영장류의 호기심 기반 행동을 온전히 연구하는 것을 방해한다. 인간의 경우엔 ‘순수한’ 호기심을 측정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연구 대상자를 인터뷰하거나 설문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의 손에 마이크를 쥐어주고 그가 얼마나 호기심이 있었는지 우리 인간이 문답식 설문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비인간 영장류들이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길 기다리거나, 평소에 좋아하던 먹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기심 실험을 진행한다. 또한 낯설거나 새로운 자극(음식, 장난감 등)을 제공해 비인간 영장류들이 이 새로운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연구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연구 방식은 새로운 자극에 대한 경계 혹은 공포심을 뜻하는 ‘네오포비아’ 행동 연구에서 주로 쓰인다. 예를 들어 형광 파란색이나 아주 검은색으로 염색한 음식을 제공해서 그에 접근하는 행동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지난 5월호에서 소개한, 비인간 영장류들에게 파랗게 염색하고 검은 올리브로 장식한 감자를 주고 그 반응을 관찰한 실험도 한 예다. 하지만 이런 실험의 결과는 영장류의 인지 능력, 즉 생존과 직결된 환경 자극을 감지하는 능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영양분, 독성에 관한 판단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원하는 순수한 호기심을 측정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호기심은 사회의 연결망을 타고 퍼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실험 설계를 다양하게 변형하며 비인간 영장류의 호기심을 측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2014년 프랑스의 여러 동물원에서 함께 진행한 실험은 호기심의 전염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doi: 10.1007/s10764-014-9796-y

 

연구팀은 침팬지 24마리, 고릴라 15마리, 보르네오 오랑우탄 11마리, 수마트라 오랑우탄 10마리 등 유인원 60마리에게 익숙한 두 종류의 음식과 한 종류의 새로운 과일, 네 종류의 새로운 허브를 제공했다. 이 실험에선 새로운 자극과 익숙한 자극을 모두 사용했다. 즉 네오포비아 반응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또한 각각의 자극별로, 종별로 호기심이 어떻게 전염되는지 측정했다. 예를 들면 새로운 과일이 주어진 상황에서, 침팬지가 다른 개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침팬지가 다가가서 행동을 관찰하고 그 영향을 받는 수준을 측정했다.

 

그 결과로 사회적 교류가 가장 활발한 침팬지들이 다른 개체의 반응 행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침팬지들은 다른 개체와 20cm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이 새로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개체가 먹는 음식을 빼앗는 행동까지 보였다. 더 나아가 비인간 영장류에서는 보기 드문 행동인, 적극적인 음식 구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결과는 비인간 영장류에서 호기심과 관련된 행동이 사회적 영향에 크게 좌우되며, 사회적으로 가장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된 유인원 종에서 호기심의 전염성이 강하게 나타남을 보여준다.

 

 

호기심은 인지행동 진화를 이해하는 열쇠

 

필자는 호기심의 전염성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종합하면서, 비인간 영장류의 순수한 호기심을 행동 관찰만으로 측정할 방법을 찾고 싶어졌다. 기존의 비인간 영장류 실험들은 대부분 새로운 자극만 제공하고 끝났다. 영장류들에게 그들이 생전 본 적 없는 레고 장난감을 주며 그에 대한 반응만 측정하는 식이었다. 이런 경우 단순히 새로운 물체여서 반응을 보이는지, 영장류들이 정말 호기심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현재 필자는 비인간 영장류의 순수한 호기심을 대규모로 연구하고 있는 소피아 포스 스위스 취리히대 박사후연구원과 함께 새로운 실험을 설계하고 진행 중이다. 영장류가 혼자서 새로운 자극과 익숙한 자극에 노출된 경우와, 영장류가 다른 개체들과 함께 있는 사회적 조건에서 새로운 자극과 익숙한 자극에 노출됐을 때의 행동 등을 비교하는 실험이다. 실험 대상은 침팬지와 유치원을 다니는 인간 유아로 정했다. 이는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발달 초기 호기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대상인 까닭이다.

 

이 실험을 마치면 비슷한 조건을 바탕으로 호기심의 전염성을 밝힐 수 있는 6가지의 행동 실험을 진행하려 한다. 확정되진 않았지만, 인지행동 실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모델’ 침팬지를 훈련시키고 ‘관찰자’ 침팬지가 모델 침팬지의 행동을 보고서 영향을 받는지 실험하는 계획도 있다. 인간 유아에게도 동일한 방식의 실험을 계획 중이다.

 

호기심의 순수성과 전염성에 대한 연구는 비인간 영장류가 어떻게 복잡한 도구를 발명하고 그것을 사용하게 됐는지와 같은, 인지행동의 진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 누군가와 언젠가는 이런 진화의 비밀을 함께 풀어나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미지의 유인원’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세인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 영장류 연구팀 소속으로 스위스 로잔대 방문 연구원을 거쳤다. 현재 영장류 인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seinlee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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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세인 이화여대 행동생태연구실 연구원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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